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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전집190: 사각전기

봉표사(奉表使)의 일행은 오늘도 조선 나라 이(里)수로 해서는 오십리 길 밖에는 더 가지 못하였다. 날이 워낙 폭양인데다가 바람이 모래를 날리어 일행은 눈을 뜨지 못하였다. 그 뿐이 아니라 하늘과 땅이 맞닿은 듯한 평원 광야에 유록이란 간혹 있을 뿐 눈에 보인다는 것은 오직 누르고 붉은 흙빛과 모래 뿐이었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단조한 길에 일행은 멀미가 났다. 호지에 무화초(胡地無花草)하니 춘래 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글귀는 독히 왕소군의 슬픔 뿐이 아니었다. 봉표사의 말고삐를 잡는 김의동(金義童)이도 구슬같은 땀을 흘리며 은근히 후회를 마지 않았다. 『그냥 신대감(愼大監) 댁에 고생이 돼두 있을 것을, 제에기 이놈의 고생이 무슨 놈의 고생이야. 대국 들어가면 참 별유천지 비인간..
봉표사(奉表使)의 일행은 오늘도 조선 나라 이(里)수로 해서는 오십리 길 밖에는 더 가지 못하였다.

날이 워낙 폭양인데다가 바람이 모래를 날리어 일행은 눈을 뜨지 못하였다.

그 뿐이 아니라 하늘과 땅이 맞닿은 듯한 평원 광야에 유록이란 간혹 있을 뿐 눈에 보인다는 것은 오직 누르고 붉은 흙빛과 모래 뿐이었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단조한 길에 일행은 멀미가 났다.

호지에 무화초(胡地無花草)하니 춘래 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글귀는 독히 왕소군의 슬픔 뿐이 아니었다.

봉표사의 말고삐를 잡는 김의동(金義童)이도 구슬같은 땀을 흘리며 은근히 후회를 마지 않았다.

『그냥 신대감(愼大監) 댁에 고생이 돼두 있을 것을, 제에기 이놈의 고생이 무슨 놈의 고생이야. 대국 들어가면 참 별유천지 비인간이라더니, 별유천지가 아닌 건 아니라두 사람 죽일 별유천지로구나.』
윤백남(尹白南, 1888년 11월 7일 ~ 1954년 9월 29일)은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한 대한민국의 예술인이다. 배우, 극작가, 소설가, 언론인, 영화감독, 연극 제작자, 영화 제작자 등을 다양한 직업을 겸했다. 본명은 윤교중(尹敎重)이다.


충청남도 공주군 출신으로 어릴 때는 한학을 공부했다. 한성부로 올라와 신학문을 익힌 뒤 1904년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대한제국 관비 유학생으로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기도 했으나, 학비 지원이 끊겨 도쿄고등상업학교로 옮겨 졸업했다.

귀국 후 보성전문학교 강사가 되었고, 한일 합방 조약이후로 매일신보 기자가 되어 문필 생활을 시작했다. 1912년에는 조중환과 함께 한국에서 두 번째 신파극 극단인 문수성(文秀星)을 창단하여 1916년 해산될 때까지 번안 신파극을 공연하고 배우로도 활동했다. 문수성이 해체된 후 반도문예사(半島文藝社)를 설립하여 월간 잡지 《예원(藝苑)》을 발간하였다. 이기세, 이범구 등과 극단 예성좌(藝星座)를 조직하고, 1917년에는 백남(白南) 프로덕션을 창립, 여러 편의 영화를 제작·감독하여 영화계에 선구적인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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