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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전집208: 동자삼

재위년수(在位年數) 오십이 년이라는 고금동서에 쉽지 않은 기간을 왕위를 누린 영종(英宗)대왕의 어우(御宇)의 말엽에 가까운 날이었다. 한강, 노들 강변에 작다란 배가 한 척 떠 있었다. 그 배에는 상전인 듯한 노인 하나와 젊은 하인 하나이 있었고, 이 긴 여름날을 낚시질로 보내려는 모양으로 노옹은 낚싯대를 물에 넣고 한가히 속으로 풍월을 읊고 있었다. “오늘은 고기가 안 잡히는구나.” “모두 대감마님께서 질겁을 해서 도망했나 보옵니다.”
재위년수(在位年數) 오십이 년이라는 고금동서에 쉽지 않은 기간을 왕위를 누린 영종(英宗)대왕의 어우(御宇)의 말엽에 가까운 날이었다.

한강, 노들 강변에 작다란 배가 한 척 떠 있었다.

그 배에는 상전인 듯한 노인 하나와 젊은 하인 하나이 있었고, 이 긴 여름날을 낚시질로 보내려는 모양으로 노옹은 낚싯대를 물에 넣고 한가히 속으로 풍월을 읊고 있었다.

“오늘은 고기가 안 잡히는구나.”

“모두 대감마님께서 질겁을 해서 도망했나 보옵니다.”
김동인(金東仁, 일본식 이름: 東 文仁 히가시 후미히토 / 金東文仁 가네히가시 후미히토, 1900년 10월 2일 ~ 1951년 1월 5일)은 일제 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대한민국의 소설가, 문학평론가, 시인, 언론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仁), 춘사(春士), 만덕(萬德), 시어딤이다.

1919년의 2.8 독립 선언과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소설,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였고,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친일 전향 의혹이 있다. 해방 후에는 이광수를 제명하려는 문단과 갈등을 빚다가 1946년 우파 문인들을 규합하여 전조선문필가협회를 결성하였다. 생애 후반에는 불면증, 우울증, 중풍 등에 시달리다가 한국 전쟁 중 죽었다.

평론과 풍자에 능하였으며 한때 문인은 글만 써야된다는 신념을 갖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나타난 자유 연애와 여성 해방 운동을 반대, 비판하기도 하였다. 현대적인 문체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필명은 김만덕, 시어딤, 김시어딤, 금동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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