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딸」은 한 여성의 태어남에서부터 자아의 각성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성성장소설로 분류될 수 있다. 20세기 초, 일본은 근대화를 부르짖으며 서구문화들을 가져왔지만 가부장제의 남성중심주의는 극복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강경애는 근대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세 여성의 삶을 통해서 여성을 억압하는 제도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제기하며 그것을 뛰어넘는 방식을 보여준다. 자아의식이 없었던 예쁜이의 삶을 통해서 남성중심주의의 제도 속에 갇혀 사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볼 수 있다. 주체의식과 경제적인 능력을 가진 산호주는 남성중심주의에서 비껴나서 미혼모로서 가정을 이룰 수 있었고 그녀의 성실한 삶은 기생들에 대한 편견을 넘어서게 한다. 구식여성이었던 옥이는 시어머니의 딸로서, 선생님의 제자로서, 남편의 아내로서 생활하다가 노동운동가의 모습에서 자신의 역할모델을 찾고, 삶의 방향을 설정한 옥이는 이혼요구의 주체자로 변모한다.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강경애는 여성의 진정한 해방은 남성중심주의적인 가정을 벗어나 사회주의운동에 참여할 때 가능해진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강경애는 여성의 억압적인 현실을 뛰어넘는 장치로 노동을 통한 사회운동의 참여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녀의 좌편향적인 사고는 작품의 범위를 1930년대 문학으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결국은 1930년대의 이데올로기를 표현하는 문학이라는 의의만 가지게 만들고 말았다. 「어머니와 딸」은 20세기 초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공간에서 우리의 여성들이 당대사회의 결혼제도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해 갔는가를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사회주의적인 관점에서 주제를 표출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음에도 가부장적 남성중심주의를 뛰어넘는 옥이에게서 여성해방의 전망을 찾을 수 있는 작품이다.
강경애(姜敬愛, 1906년 4월 20일 ∼ 1944년 4월 26일)는 일제강점기 여성 소설가, 작가, 시인, 페미니스트 운동가, 노동운동가, 언론인이다. 한때 양주동의 연인이기도 했다.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했다가 동맹 휴학과 관련하여 퇴학당하고, 이후 동덕여학교에서 1년 정도 수학했다. 1924년 문단에 데뷔하였으나 여성 작가에 대한 혹평과 외면을 당하기도 했다. 1931년에는 조선일보에 독자투고 형식으로 소설 파금을 연재하였고, 잡지 《혜성 (彗星)》에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을 발표하였다. 1927년에는 신간회, 근우회에 참여하였고, 1929년에는 근우회 장연군지부의 간부로 활동했다.
1932년에는 간도(間島)로 이주, 잡지 북향지의 동인이 되었다. 이후 1934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 《인간문제》가 히트를 쳐서 명성을 얻기도 했다. 1939년부터는 조선일보의 간도지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작가 양주동, 김좌진의 암살 의혹을 받는 김봉환의 연인이기도 했다. 필명은 '강가마'이다. 황해도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