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의 단편소설 송동이.
송 서방의 아버지도 이 집 하인이었다.
송 서방은 지금 주인의 증조부 시대에 이 집에서 났다. 세 살 적에 아버지를 잃었다. 열 살 적에 어머니를 잃었다. 이리하여 천애의 고아가 된 그는 주인(지금 주인의 증조부)의 몸심부름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 옛 주인 황진사는 이 근방의 세력가요 재산가였다. 사내종과 계집종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송동이의 충직함과(좀 미련한 듯하고도) 영리함은 가장 주인 황진사의 눈에 들었다. 어린 송동이의 충직스러운 실수에 황진사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고 하였는데
김동인金東仁(1900~1951)은 1900년 평양에서 기독교 장로이자 백만장자였던 아버지 김대윤의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금동. 아버지 김대윤은 일찍이 안창호, 이승훈 등 서북 출신의 애국지사들을 집으로 초대해 구국의 방법을 토론함으로써, 소년 김동인은 자연스럽게 시국의 정세에 관심을 가졌다. 기독교 계통의 평양 숭실중학교를 중퇴하고 도일, 메이지 학원 중학부에 입학하면서 비로소 문학에 눈뜨기 시작했다. 이때 같은 학교에는 소학교 동창인 시인 주요한이 다니고 있었는데, 김동인은 문학 서적을 대량으로 구입해서 그와 돌려 보면서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한다. 메이지 학원 중학부를 졸업한 김동인은 가와바타 미술학교에 입학했다. 이때 미술학교를 선택한 것은 그림을 배우려는 것보다는 ‘미학에 대한 기초지식과 그림에 대한 개념을 얻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훗날 술회한 바 있다. 김동인이 한국 문단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19년, 19세의 나이에 자비를 들여 창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문예 동인지 '창조'를 통해서였다. 이 잡지에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후 예술을 위한 예술 혹은 예술지상주의를 표방하면서 평생 순수문학의 외길만을 고집했다. 오늘날 김동인은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순수문학자이자 단편소설의 완성자로 평가받는다. 작가 생활 30년 동안 ‘문학’ 이외에 다른 직업을 일절 가져본 적이 없는 그는 말년에는 오랜 지병인 불면증과 병마에 시달리다가 1951년 1월 6ㆍ25 전쟁이 한창인 적 치하의 서울에서 쓸쓸하게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