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창조>에 발표된 중편소설.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현실의 삶은 힘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며 일반적인 인간은 굴복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마음 속의 '약함'을 버리고 자신의 삶을 사랑이라는 '강함'을 통해 아름답게 꾸미면 그 어떤 자의 삶이라도 가치있는 것이 된다. 즉, 약함으로 인해 생기는 설움(비극성 또는 비극미)을 통하여 완결된 형식(사랑)을 추구하고 있다.
<약한 자의 슬픔>은 1919년 <개벽> 창간호에 발표된 리얼리즘 수법의 최초 단편으로 이광수의 설교조 계몽주의 작품 경향에서 벗어난, 소설 자체의 완결된 미학성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즉, 근대적인 소설의 형식과 구성을 지니고 있으며, 문학 자체의 존재 영역을 확보한 작품이다.
이전의 소설들은 특정의 심리 묘사나 성격 창조가 미약하고 객관적 서술 시점이 확보되지 않아 작품 전개에 작가가 끼어 드는 바람에 작품의 미학을 해쳤으나, 이 작품은 소설의 구조적 시점 확보를 통한 새로운 문학 양식을 창출하였기 때문에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로써 한국의 현대 문학은 새로운 전기적 요소가 형성되어 한층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동인 ( 金東仁 1900 ~1951)
본관 전주. 호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人) ·춘사(春士). 창씨명(創氏名) 곤토 후미히토[金東文仁]. 평남 평양 출생. 일본 도쿄[東京]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학부 졸업, 가와바타 미술학교[川端畵學校]를 중퇴하였다. 1919년 최초의 문학동인지 《창조(創造)》를 발간하는 한편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고 귀국하였으나, 출판법 위반 혐의로 일제에 체포 ·구금되어 4개월 간 투옥되었다. 출옥 후 《목숨》(1921) 《배따라기》(1921) 《감자》(1925) 《광염(狂炎) 소나타》(1929)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혁신에 공헌하였다.
이광수(李光洙)의 계몽주의적 경향에 맞서 사실주의적(寫實主義的) 수법을 사용하였으며, 1925년대 유행하던 신경향파(新傾向派) 및 프로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藝術至上主義)를 표방하고 순수문학 운동을 벌였다. 1924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30년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동아일보》에 연재, 1931년 서울 행촌동(杏村洞)으로 이사하여 《결혼식》(1931) 《발가락이 닮았다》(1932) 《광화사(狂畵師)》(1935) 등을 썼다. 1933년에는 《조선일보》에 《운현궁(雲峴宮)의 봄》을 연재하는 한편 학예부장(學藝部長)으로 입사하였으나 얼마 후 사임하였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붉은 산》 《태형》《김연실전》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