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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전집204: 기행

조모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전보가 온 것이 해진 무렵이여서 부득이 밤 연한 시차를 탈수밖에 없었다. 급행이면 다섯시간도 안걸리는데를 이 차는 일곱시간 이상을 잡아 먹고 평양에는 해가 물끈 솟아 올을때에야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가는 시골은 평양서도 일백 육십리나 자동차로 들어가는 성천이라는 적은 고을이다. 이차에서 내려서 성천가는 척차를 얻어 타면 오정전에 목적지에 이를수 가있다. 고단은 하지만 평양서 하룻밤 묵지 않는 것이 편리는 하다. 어데 냉면집에 들려서 어북장국이나 한그릇 사 먹고 시간 되기를 기대려서 자동차에 올르리가 생각하는 것이다.
조모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전보가 온 것이 해진 무렵이여서 부득이 밤 연한 시차를 탈수밖에 없었다. 급행이면 다섯시간도 안걸리는데를 이 차는 일곱시간 이상을 잡아 먹고 평양에는 해가 물끈 솟아 올을때에야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가는 시골은 평양서도 일백 육십리나 자동차로 들어가는 성천이라는 적은 고을이다. 이차에서 내려서 성천가는 척차를 얻어 타면 오정전에 목적지에 이를수 가있다. 고단은 하지만 평양서 하룻밤 묵지 않는 것이 편리는 하다. 어데 냉면집에 들려서 어북장국이나 한그릇 사 먹고 시간 되기를 기대려서 자동차에 올르리가 생각하는 것이다.
김남천 (金南天 1911 ~1953)

본명 효식(孝植). 평남 성천 출생.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도쿄[東京] 호세이[法政]대학 재학 중이던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KAPF)에 가입하였고, 안막(安漠) ·임화(林和) 등과 함께 1930년 카프 동경지부에서 발행한 《무산자(無産者)》에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1931년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으며, 여기서 김기진(金基鎭)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 볼셰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한 바 있다. 그 후, 1931년과 1934년 카프 제 1 ·2차 검거사건 때 체포되어 복역하였으며, 1935년에는 임화 ·김기진 등과 함께 카프 해소파(解消派)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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