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와 개인주의는 민족간의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며, 조선은 독립국가로 자치를 할 만큼 교육받고 계몽된 국민들이 많지 않고, 결론적으로 '이기적이고 나약한 겁쟁이'인 조선 민중은 엘리트 집단에 복종하고 봉사하면서 일본으로부터 자치권을 받아내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이 주장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안재홍, 이상재 등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홍명희, 허헌등 사회주의 계열 민족주의자들이 격노했으며, 이후 설립되는 신간회에서 기회주의자를 일체 배격한다는 강령이 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역시나 이광수는 1930년대 이후 변절의 길을 걷게 된다.
이광수는 조선,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자 작가, 시인, 문학평론가, 페미니즘 운동가, 언론인이었으며, 조선왕가의 방계혈족, 사상가, 기자, 번역가, 자유주의 운동가이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참여, 신한청년당,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고, 임정 사료편찬위원회와 독립신문 등을 맡기도 했었다. 유교적 봉건 도덕, 윤리관을 비판하였고, 여성 해방과 자유 연애론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