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학 초창기에 소설가의 독자성과 독창성을 강조하여 소설을 순수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데 공헌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는 김동인의 소설.
선조(宣祖) 임진의 겪은 전고미문의 국난 때문에, 삼천리강토가 한 덩어리 재로 화하고 국력이 극도로 쇠약하고, 파루폐옥만 덩더렇게 널려 있는 참담한 형태를 이룬 지 수년- 선조대왕 승하하고, 그 아드님 광해군이 즉위한 뒤에는, 이 용감한 청년왕은 무엇보다도 국도 부흥에 전력을 다하였다.
피폐된 국민의 힘으로는 좀 당하기 어렵기는 어려웠지만, 이 임금 치정 십 사년간에 이전 임진 때에 한 더미 재로 화하였던 국도는, 다시 고루 거각이 즐비하게 되고 아름다운 서울로 부활하였다.
그러나 이 임금은 국도 부흥에 전력을 쓰노라고 부왕시대부터 재상들 사이에 차차 왕성하여 가는 당쟁(黨爭)을 종어하고 억압할 겨를이 없었다.
그 결과로서 재위 겨우 십 사 년 뒤에, 재상들의 당쟁의 틈에 끼어서 용상에서 쫓겨나 배소(配所)의 달을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는 운명에 빠졌다.
그 왕의 뒤를 이어서 등극한 임금-인조대왕-은 당쟁의 여파에 밀려서 등극한 분이니만치, 당쟁을 철저히 탄압을 할 수가 없었다.
1919년 《창조》에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면서 문학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배따라기〉(1921) · 〈감자〉(1925) · 〈명문(明文)〉(1925) 등 수많은 단편을 발표하여 우리나라의 근대 단편소설의 양식을 확립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크게 단편과 장편, 평론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들은 단편소설은 자연주의적 사실주의 계열에 속하는 〈감자〉 · 〈배따라기〉 · 〈김연실전(金姸實傳)〉(1939) · 〈명문〉 · 〈태형(笞刑)〉 (1922) · 〈발가락이 닮았다〉(1932) 등과 탐미주의적 계열에 속하는 〈광염(狂炎) 소나타〉(1929) · 〈광화사〉, 그리고 민족주의적 색채를 보이고 있는 〈붉은산〉(1932) 등 다양한 작품 경향으로 구분된다. 이들은 모두 특유의 직선적이고 간결한 서술문체와 양식적 완결성이 잘 드러나 있는 순문학 지향의 작품들이다. 그러나 역사소설이나 사담 등을 포함한 후기의 장편소설들은 순문학적이기보다 상업적 · 통속적인 경향이 짙은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