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의 단편소설이다.
가을은 완전히 거리를 둘러싸고 생활 속에 젖어 들고 있었다.
물든 수목이 아름답고 여자들의 치장이 눈을 끌고 과일가게 앞이 신선한 향기를 풍기게 되었다.
그 시절의 향기와 빛깔 속에서 사람은 한층 긴장되며 왕성히 하는 생활의 의욕을 느꼈다.
가을은 의욕의 시절인 듯싶었다. 줄기찬 생활에의 의욕이 세포의 구석구석에서 넘쳐 나오는 것이었다.
뜰 안의 한 포기의 나뭇가지에서도 물든 잎새들이 조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의 뜻을 일으켜주고 힘을 북돋아 주는 듯 보였다.
적어도 훈은 그 맑게 개인 오전의 가을 나무를 바라보면서 전신으로 시절의 탄력을 느끼며 솟아오르는 힘을 느꼈다.
반도영화사 사장실에서였다.
김명도와 마주 앉아 그에게서 긴한 부탁을 받으면서 문득 창 밖으로 뜰 안의 나뭇가지를 내다보노라니 알지 못할 힘이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이효석
1907∼1942. 소설가. 호는 가산(可山). 강원도 평창(平昌) 출생.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25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시 〈봄〉이 선외 가작(選外佳作)으로 뽑힌 일이 있으나 정식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한 것은 〈도시와 유령〉(1928)부터이다.
이 작품은 도시유랑민의 비참한 생활을 고발한 것으로, 그 뒤 이러한 계열의 작품들로 인하여 유진오(兪鎭午)와 더불어 카프(KAPF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진영으로부터 동반자작가(同伴者作家)라는 호칭을 듣기도 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1931년 이경원(李敬媛)과 혼인하였으나 취직을 못하여 경제적 곤란을 당하던 중 일본인 은사의 주선으로 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 취직하였다.
그러나 주위의 지탄을 받자 처가가 있는 경성(鏡城)으로 내려가 그곳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그의 초기 작품은 경향문학(傾向文學)의 성격이 짙은 〈노령근해 露嶺近海〉(1930)·〈상륙 上陸〉(1930)·〈북국사신 北國私信〉 등으로 대표된다. 생활이 비교적 안정되기 시작한 1932년경부터 그의 작품세계는 초기의 경향문학적 요소를 탈피하고 그의 진면목이라고 할 수 있는 순수문학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하여 향토적·이국적·성적 모티프(motif)를 중심으로 한 특이한 작품세계를 시적 문체로 승화시킨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오리온과 능금〉(1932)을 기점으로 하여 〈돈 豚〉(1933)·〈수탉〉(1933) 등은 이 같은 그의 문학의 전환을 분명히 나타내주는 작품들이다. 1933년에는 ‘구인회(九人會)’에 가입하여 순수문학의 방향을 더욱 분명히 하였다.
다음해에는 평양에 있던 숭실전문학교로 전임하였다. 그의 30대 전반에 해당하는 1936∼1940년 무렵은 작품 활동이 절정에 달하였을 때이다. 해마다 10여 편의 단편과 많은 산문을 발표하였으며, 〈화분 花粉〉(1939)·〈벽공무한 碧空無限〉(1940) 등 장편도 이때 집필된 것이다.
〈산〉·〈들〉·〈모밀꽃 필 무렵〉(1936)·〈석류 沸榴〉(1936)·〈성찬 聖餐〉(1937)·〈개살구〉(1937)·〈장미 병들다〉(1938)·〈해바라기〉(1938)·〈황제〉(1939)·〈여수 旅愁〉(1939) 같은 그의 대표적 단편들이 거의 이 시기의 소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