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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전집33: 벗기운 대금업자

김동인의 단편소설이다. "여보, 주인." 하는 소리에 전당국 주인 삼덕이는 젓가락을 놓고 이편 방으로 나왔습니다. 거기는 험상스럽게 생긴 노동자 한 명이, 무슨 커다란 보퉁이를 하나 끼고 서 있었습니다. "이것 맡고, 1원만 주우." "그게 뭐요?" "내 양복이오. 아직 멀쩡한 새 양복이오." 삼덕이는 보를 받아서 풀어보았습니다. 양복? 사실, 양복이라고 밖에는 명명할 수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걸레라 하기에는, 너무 무거웠습니다. 옷감이라기에는 벌써 가공을 한 물건이었습니다. 그것은, 낡은 스카치 양복인데, 본시는 검은빛이었던 것 같으나 벌써 흰빛에 가깝게 되었으며, 전체가 속실이 보이며 팔굽과 무릎은 커다란 구멍이 뚫린, 걸레에 가까운 양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높이 보아도, 20..
김동인의 단편소설이다.

"여보, 주인."
하는 소리에 전당국 주인 삼덕이는 젓가락을 놓고 이편 방으로 나왔습니다. 거기는 험상스럽게 생긴 노동자 한 명이, 무슨 커다란 보퉁이를 하나 끼고 서 있었습니다.
"이것 맡고, 1원만 주우."
"그게 뭐요?"
"내 양복이오. 아직 멀쩡한 새 양복이오."
삼덕이는 보를 받아서 풀어보았습니다. 양복? 사실, 양복이라고 밖에는 명명할 수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걸레라 하기에는, 너무 무거웠습니다. 옷감이라기에는 벌써 가공을 한 물건이었습니다. 그것은, 낡은 스카치 양복인데, 본시는 검은빛이었던 것 같으나 벌써 흰빛에 가깝게 되었으며, 전체가 속실이 보이며 팔굽과 무릎은 커다란 구멍이 뚫린, 걸레에 가까운 양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높이 보아도, 20전짜리 이상은 못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의리상 삼덕이는 그것을 뒤적여서 안을 보았습니다. 안은 벌써 다 찢어져 없어졌으며, 주머니만 세 개가 늘어져 있었습니다. 이것을 어이없이 잠깐 들여다본 삼덕이는, 그 양복을 다시 싸면서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저, 다른 집으로 가지고 가보시지요."
김동인 ( 金東仁 1900 ~1951)

본관 전주. 호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人) ·춘사(春士). 창씨명(創氏名) 곤토 후미히토[金東文仁]. 평남 평양 출생. 일본 도쿄[東京]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학부 졸업, 가와바타 미술학교[川端畵學校]를 중퇴하였다. 1919년 최초의 문학동인지 《창조(創造)》를 발간하는 한편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고 귀국하였으나, 출판법 위반 혐의로 일제에 체포 ·구금되어 4개월 간 투옥되었다. 출옥 후 《목숨》(1921) 《배따라기》(1921) 《감자》(1925) 《광염(狂炎) 소나타》(1929)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혁신에 공헌하였다.

이광수(李光洙)의 계몽주의적 경향에 맞서 사실주의적(寫實主義的) 수법을 사용하였으며, 1925년대 유행하던 신경향파(新傾向派) 및 프로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藝術至上主義)를 표방하고 순수문학 운동을 벌였다. 1924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30년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동아일보》에 연재, 1931년 서울 행촌동(杏村洞)으로 이사하여 《결혼식》(1931) 《발가락이 닮았다》(1932) 《광화사(狂畵師)》(1935) 등을 썼다. 1933년에는 《조선일보》에 《운현궁(雲峴宮)의 봄》을 연재하는 한편 학예부장(學藝部長)으로 입사하였으나 얼마 후 사임하였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붉은 산》 《태형》《김연실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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