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향의 단편소설이다.
…동대문에서 신용산을 향해 아침 첫차를 가지고 떠난 것이 오늘 일의 시작이었다.
전차가 동구 앞에서 정거를 하려니까 처음으로 승객 두 명이 탔다. 그들은 모두 양복을 입은 신사들인데 몇 달 동안 차장의 익은 눈으로 봐서, 그들이 어젯저녁 밤새도륵 명월관에서 질탕히 놀다가 술이 취해 그대로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자다 나오는 것을 짐작케 하였다. 새벽이라 날이 몹시 신선할 뿐 아니라 서릿기운 섞인 찬바람이 불어서 트를리끈을 붙잡을 적마다 고드름을 만지는 것처럼 저리게 찬 기운이 장갑 낀 손에 스며드는 듯하다. 그들은 얼굴에 앙괭이를 그리고 무슨 부끄러운 곳을 지나가는 사람 모양으로 모자도 눈까지 눌러 쓰고 외투도 코까지 싼 후에 두 어깨는 삐죽 올라섰다. 아직 다 밝지는 않고 먼동이 터오므로 서쪽 하늘과 동쪽 하늘 두 사이 한복판을 두고서 광명과 암흑이 은연히 양색(兩色)이 졌다. 그러나 눈 오려는 날처럼 북쪽 하늘에는 회색 구름이 북악산 위를 답답하게 막아 놓았다. 운전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너른 길을 규정 외의 마력을 내서 전차를 달려 갔다. 전차는 탑동 공원 앞 정류장에 와서 섰다. 먼 곳에서는 홰를 치며 우는 닭의 소리가 새벽 서릿바람을 타고서 들려온다. 그러자 어떠한 여자 하나가 내가 서 있는 바로 차장대 층계 위에 어여쁜 발을 올려놓는 것이 보였다. 아직 탈 사람이 별로 없으리라고 지레짐작에 신호를 하였다가 그것을 보고서 다시 정지하자는 신호를 하였다. 한다리가 승강단 위에 병아리 모양으로 깡총 올라오더니 계란 같이 웅크린 여자가 툭 튀어 올라와서 내 앞을 지나는데, 머리는 어디서 어떻게 부시대기를 쳤는지 아무렇게나 홑어진 것을 아무렇게나 쪽지고, 본래부터 난잡하게 놀려고 차리고 나섰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옥양목 저고리에 무슨 치마인지 수수하게 차렸는데 손에는 비단으로 만든 지갑을 들었다. 그러고 그가 내 옆을 지날 때 일본 여자들이 차에 탈 적이나 기생들이 차에 오를 적에 나의 코에 맞히는 분냄새와 향수냄새 같은 향긋한 냄새가 찬바람에 섞이더니 나의 코에 스쳤다.
나도향(저자): 본명은 경손(慶孫), 필명은 빈(彬), 호는 도향(稻香)이다. 1917년 배재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같은 해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에 뜻을 두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학비 미조달로 귀국, 1920년 경북 안동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22년 '백조'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젊은이의 시절」「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을 발표하면서 작가활동을 시작하였다. 1926년 다시 일본으로 갔다가 귀국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타계했다. 대표작품으로는 「물레방아」「뽕」「벙어리 삼룡이」등과 장편 「환희」가 있다. 나도향의 작품들에는 본능과 물질에 대한 탐욕 때문에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객관적 사실 묘사로 그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