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희의 근심이 마침내 실현될 때는, 정희는 과히 놀라지 않았다(고 생각하였다). 정희는 그때 ‘용부(勇婦)파틸리샨의 전기(傳記)’를 읽고 있 었다. T군에 친언니와 같이 사괴던 친구가 있었으므로, 거기 성구의 일을 조사하여 달라고 편지를 하였던 그 화답이 정희가 파틸리샨의 전기를 읽을 때에 이르렀다.
그때에 파틸리샨은 에집트에서 외로이 병든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로 코자 황망히 고국을 떠났다.
‘파틸리샨도 여인이다. 그의 눈에도 따뜻한 눈물이 무론 있었을 것이다.’ 정희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 페이지에 종이를 끼우고 책을 접은 뒤에 고즈너기 편지 봉을 뜯었다.
정희는, 까딱 안 하고 그 편지를 다 읽었다. 그러고는 다시 파틸리샨 전(傳)을 폈다. 온갖 파란과 모험으로 눈이 뒤집힐 듯한 파틸리샨의 항해(航海)이야기도 한 줄기의 얽힘이 없어 정희의 머리에 들어박혔다. 정희의 머리는 편지 때문에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
파틸리샨은 에집트의 어느 해안에 닿았다. 파틸리샨은 사랑하는 사람의 병 들어 누워 있는 곳을 찾아갔다. 여위고 쇠약한 ‘그’는 해안 어느 조그만 오막살이에 토인 계집애의 간호로써 고즈너기 누워 있다. ‘그’는 파틸리 샨을 보고 적적한 웃음을 웃었다. 파틸리샨도 고즈너기 웃었다. 그리고 애인의 앞에 가까이 가서 꿇어앉았다.
초기 근대문학의 확립과정에서 문단을 주도했던 이광수류의 계몽적 교훈주의에서 벗어나, 문학의 예술성과 독자성을 바탕으로 한 본격적인 근대문학의 확립에 크게 이바지했다. 본관은 전주. 호는 금동(琴童)·금동인(琴童人)·춘사(春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