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부에 살고 있던 한 노총각 양생이라는 사람이 일찍 부모를 잃고 결혼도 못한 채 만복사 동쪽에 홀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달밤, 그는 문밖의 배나무 아래를 거닐며 외로운 자신의 심정을 시로써 읊고 있었다. 그 때 공중에서“그대가 진정 배필을 얻고자 한다면 무엇이 어려우랴.”하는 말이 들려왔다. 다음날 그는 소매 속에 저포를 간직한 채 불전에 나아가 축원하되 오늘 부처님과 저포놀이를 하여 만일 내가 지면 법연을 베풀어 치성을 드리옵기로 하고, 부처님이 지시면 나에게 아름다운 배필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였다.
축원이 끝난 뒤 그는 혼자서 저폭을 던졌다. 그가 이겼다. 그는 다시 불전에 꿇어 앉아“일이 이미 이렇게 결정되었으니 저를 속이지 마옵소서” 하고 궤 아래에 숨어서 동정을 엿보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15∼6세의 아릿다운 처녀가 불전으로 오더니 부처님께 자신의 불행을 하소연하고 축원문을 불탁 위에 놓고는 흐느껴 울었다. 그 처녀의 축원문의 내용은 왜구의 침입으로 부모 친척과 노복을 잃고 벽지에서 고독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과 배필을 하나 얻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양생은 춘정을 이기지 못하여 곧바로 뛰어나가 그녀를 대하였다. 그녀도 흔쾌히 그를 맞이해 주었다. 이렇게 하여 부부의 정을 맺은 양생의 사랑과 부모간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아가는 것이 만복사저포기의 내용이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는 매월당(梅月當) 김시습(金時習:1435∼1493)에 의해 쓰여진 우리 나라 최초의 한문체(漢文體) 단편소설로 그의 저서 <금오신화 金鰲神話>에 기록 되어있다. 김시습은 조선 6대 임금 단종 때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자신이 왕위에 오른 것을 보고 과거 시험을 포기한 채 세상을 방탕하다가 한때 중이 되기도 하였다. 그는 머리가 총명하고 박학다식 하였다고 하며, 이미 그의 나이 7살 때 시를 짓기 시작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동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가 저술한 소설들은 대개 불교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 많다. 그의 저서인 <금오신화>에는 다섯편의 소설이 있다. 즉 <만복사저포기>·<이생규장전 (李生窺墻傳)>·<취유부벽정기 醉遊浮碧亭記>·<남염부주지 南炎浮洲志>·<용궁부연록 龍宮赴宴錄>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만복사저포기>는 당시 남원 왕정동 소재 만복사를 배경으로 하여 쓰여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