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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전집265: 땅속으로

내가 올 봄에 동경을 떠나 나와 S역 근처에 있는 내 집이라고 와서 보니(그 집이란 것도 실상 내 집이 아니요 내 형님 집이다) 집안 형편이 참 말이 못 된다. 식구는 십이 명 아니 십오륙 명 식구가 되는 대가족이 과히 넓지 못한 집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산다. 좁은 방구석에 어린아이들만 모여 앉은 것을 보아도 쪽박에 밥 담아 놓은 셈이다. 그 속에는 내 소생이 두어 개 끼여 있다. 그래 그 다수 식구가 무엇을 먹고 사느냐 하면 아침에는 조밥, 저녁에는 조죽, 수 좋아야 쌀밥, 어떤 때는 좁쌀깨나 섞인 풋나물죽, 그것도 끼니를 이어 가느냐 하면 그도 그렇지 못하다. 양식 있는 날이 이틀이면 없는 날이 하루, 두 끼 먹으면 한 끼 굶고 한 끼 먹으면 두 끼 굶어 대개 이 모양으로 살아 나간다. 그것도 남의..
내가 올 봄에 동경을 떠나 나와 S역 근처에 있는 내 집이라고 와서 보니(그 집이란 것도 실상 내 집이 아니요 내 형님 집이다) 집안 형편이 참 말이 못 된다. 식구는 십이 명 아니 십오륙 명 식구가 되는 대가족이 과히 넓지 못한 집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산다. 좁은 방구석에 어린아이들만 모여 앉은 것을 보아도 쪽박에 밥 담아 놓은 셈이다. 그 속에는 내 소생이 두어 개 끼여 있다.

그래 그 다수 식구가 무엇을 먹고 사느냐 하면 아침에는 조밥, 저녁에는 조죽, 수 좋아야 쌀밥, 어떤 때는 좁쌀깨나 섞인 풋나물죽, 그것도 끼니를 이어 가느냐 하면 그도 그렇지 못하다. 양식 있는 날이 이틀이면 없는 날이 하루, 두 끼 먹으면 한 끼 굶고 한 끼 먹으면 두 끼 굶어 대개 이 모양으로 살아 나간다. 그것도 남의 땅마지기나 십여 두락 얻어서 소작하는 덕택에 남에게 장릿말이나 변전량이나 얻어 오는 까닭이었다.
조명희(趙明熙, 1894 - 1942)

충북 진천에서 가난한 양반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0년 서울의 중앙 고보에 입학하였으나 1914년 봄 북경 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가출했다가 돌아오기도 함.3.1운동 참가 건으로 투옥 1919년 겨울 동경 토오요(東洋) 대학 철학과에 유학하여 시 창작과 연극활동에 관심을 보였다. 1920년 김우진과 함께 극예술연구회를 조직하여 활발한 활동 펼침. 1921년 희곡 <김영일의 사> 창작. 1924년 6월 <적로>란 필명으로 《봄 잔디밭 위에》발간. 1925년 카프에 가담하면서 자전적 소설 <땅 속으로><마음을 갈아먹는 사람들>발표.1927년에 발표된 <낙동강>은 장편적 구조를 단편의 형식에 담아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으나 일제 시대 지식인들의 고뇌와 농민 노동자들의 삶이 잘 나타나 있다. 1928년 소련으로 망명 소련 작가 동맹 원동 지부에서 활동 산문시 <짓밟힌 고려> <붉은 깃발 아래서><만주 빨치산> 등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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