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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전집 128: 삼국사기 백제본기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 23년(1145년)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의 역사서다. 우리는 우리 고대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 긍정과 부정 양측면을 다 가지고 있는 삼국사기를 연구 할수밖에 없다. 우리 고대 사서의 소멸로 인하여 삼국시대의 정사로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서로는 삼국사기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국사기를 읽다보면 가슴 찌뿌등하고 답답함을 느낀다.자신의 나라를 비하하고 중국의 입장에서 기술하고 고구려 백제는 폄하하고 신라는 높이면서 편중되어 있다.본기 곳곳에 기술한 저자의 견해는 김부식의 사상이 의심스러울 정도이며 과연 김부식이 우리나라의 역사를 논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의문스럽다.아무리 중국의 눈치를 본다고는 하나 너무 심하다.혹자는 그렇게 썼기 때문에 삼국사기가 오늘날 까지 살아남을수 있었..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 23년(1145년)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의 역사서다. 우리는 우리 고대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 긍정과 부정 양측면을 다 가지고 있는 삼국사기를 연구 할수밖에 없다. 우리 고대 사서의 소멸로 인하여 삼국시대의 정사로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서로는 삼국사기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국사기를 읽다보면 가슴 찌뿌등하고 답답함을 느낀다.자신의 나라를 비하하고 중국의 입장에서 기술하고 고구려 백제는 폄하하고 신라는 높이면서 편중되어 있다.본기 곳곳에 기술한 저자의 견해는 김부식의 사상이 의심스러울 정도이며 과연 김부식이 우리나라의 역사를 논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의문스럽다.아무리 중국의 눈치를 본다고는 하나 너무 심하다.혹자는 그렇게 썼기 때문에 삼국사기가 오늘날 까지 살아남을수 있었다고 이야기 한다.현실적으로 보면 그럴수도 있겠다하는 생각을 하게도 되지만 이나라 역사 왜곡의 단초를 삼국사기가 제공했다는걸 생각하면 차라리 없었던 편이 낳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그러면 다른 사서들이 존재 했을 것이고 역사 왜곡 또한 그리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삼국사기를 이유로 다른 사서들이 모두 멸실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 하면 용맹스럽고 지혜로운 우리민족의 얼과 혼을 앗아가 버렸다는 것이다.반도 구석으로 몰아넣어 몸과 마음을 작은 나라에 약소국민으로 전락시켜 버려 사대주의가 당연시되는 관념의 틀을 고정시켜 버렸다.발해 멸망이후 1,000년동안 북벌을 주장한 사람은 묘청과 효종 두사람 뿐이다(TV 드라마 왕건에 나오던 궁예도 있었다).정신을 앗아가 버렸기 때문에 우리의 고토회복의 기치는 고사하고 감히 중국을 넘본단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고려시대의 문신. 호는 뇌천(雷川), 자는 입지(立之),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주로 삼국사기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묘청의 난을 진압하기도 했다고 한다.


5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고 고려에서도 손꼽히는 문벌 집안. 당대의 권신 이자겸하고도 맞짱을 뜰 수 있던 유일한 인물이였다[1].


사실 명문이긴 했지만 개경의 중앙귀족에 비하면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었고, 부친이나 조부나 높은 직위에 있지는 않았다. 가문이 본격적으로 위력을 떨치기 시작한 건 김부식의 5형제 때부터인데, 장남은 윤관의 여진전쟁 당시 전선에서 활약했고, 나머지도 모두 과거에 급제해서 5형제의 母는 고려에서 큰 포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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