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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여성미 (한국문학전집: 김남천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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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35 2 0 1 2017-01-13
때로 용의주도한 산보인이 되어본들 어떨 것이랴. 하루는 종로 네거리에서 오후 네 시를 기점으로 하고 서서히 발을 옮기어 보았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태평통으로, 부청(府廳) 앞을 지나 장곡천청으로 빠져 나가 우편국 앞 광장에 이르렀다. 로타리를, 교통윤리의 규정대로 우편국 ─ 본정 입구 ─삼월오복점 ─ 저축은행 ─ 청목당의 순서로 좇아 한 바퀴 돌고, 남대문 옆을 거쳐 경성역에까지 와서, 드디어 경의선의 완행이 오후 여섯 시의 손님을 쏟아 놓는 것까지 구경하고 나니, 그 동안에 소비한 시간이 더도 말고 꼭 두 시간. 장안의 짧은 하루는 이미 황혼을 지나서 캄캄한 밤이었다.

십년전 (한국문학전집: 김남천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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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98 2 0 1 2017-01-13
작가생활을 의식하고 해 온 지는 불과 2, 3년래의 일이니까, 이 이야기는 작가생활의 회고라고 말할 수 없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예술운동에 발을 들여놓은 최초의 일이고, 단체생활에 관계한 처음이고 보니, 그것이 나의 문학생활에 있던 아무래도 하나의 기념할 만한 시기일 것 같다. 열아홉살 때니까 소화 4년이다. 중학 시대 『월역』동인인 한재덕 씨가(현재 조선 일보 특파원으로 평양에 있다) 동경 시외 구택(駒澤)에 있던 나를 찾아와서, 와세다 교내에서 안막 군(최승희의 부군이래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을 사귀어 가지고 함께 ‘예맹’ 동경지부에 가맹했는데, 이번 하계휴가에 동경부 소속의 극단이 조선 공연을 나가는데 동행하면 어떤가고 물었다.

살인작가 (한국문학전집: 김남천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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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75 2 0 1 2017-01-13
무서운 제목을 걸어 보긴 하였으나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적으면서 향락을 맛보는 그런 취미는 본시부터 나에게는 없다. 작가가 소용되어서 등장을 시켜놓고, 쓸 대로 써먹기는 하였으나 그대로 한구성에 처박아 두기도 무엇하고, 어디로 여행을 갔다거나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더나 버렸다고 하기는 쑥스럽고 그럴 경우에 슬쩍 눈에 띄지 않게 퇴장을 시키는 묘법은 없을 것인가. 만일 생각할 수 있는 많은 방법을 이렇게 한가할 때에 생각해 두면 후일에 쩔쩔 매지 않고 노트를 들쳐가며 하나 하나 임기(臨機)하여 적의(適意)하게 처리하련만은, 그리고 간혹 작중인물을 처치하기에 쩔쩔매고 있는 우인 작가에겐 저서로라도 ... ...

도피행 (한국문학전집: 김남천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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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75 2 0 1 2017-01-13
이 짤막한 이야기의 남녀 주인공의 이름은 ‘광식’이와 ‘안나’다. 물론 ‘광식’이가 사나이고 ‘안나’가 여자다. 광식이는 청년 소설가이요, 안 나는 종로 어떤 바의 마음 착하고 이쁘장스런 여급이다. ─ 이렇게 말해도 독자는 이 두 젊은 남녀가 알지 못할 것인가? 『조광』만 사보고 『여성』이라는 부인잡지를 사서 읽지 않은 이는 아마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실인즉 이 두 사람은 『여성』에 지금 연재되는 「애인」이라는소설의 작중인물의 이름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의 이름을 지어준 이는 「애인」의 작자 안회남 군이다. 나는 이 두 분을 잠시 빌려오려고 하는 것이다. 이 두 남녀의 창조자인 작자 안회남 군은 아와 친분 있는 분이니까, 언제 엽서로 두어 마디 “귀형의 창조물 두어 ..

활빙당 (한국문학전집: 김남천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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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26 2 0 1 2017-01-13
신년에 술 먹을 기회가 많이 생기는 것이 길한 일인지 흉한 일인지 또는 앞으로 한 해의 운이 활짝 트일 징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되 이 즈음 날로 장이 약해 가는 것 같고 이인 탓인지 숙취가 자심해서 통음한 뒷날 일, 양일간은 아무 일도 손에 대지 못하는 나로서는 위선 반가우면서도 은근히 켕기고 겁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원체 의지가 박약한 나인지라 위장이 약해지면 종차 위궤양이든가 위하수증(胃下垂症)이든가 하다 못해 소화불량이나 만성 장가답아증(腸加答兒症)이라도 얻을 것을 겁내 하면서도 더구나 내가 지은 소설의 주인공 한 분은 이 위궤양 때문에 마약 중독자로까지 전락되어 작자인 내가 의술을 넘어서... ...

어느 해의 가을의 회상 (한국문학전집: 김남천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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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28 2 0 1 2017-01-13
지금으로부터 만4년 전이다. 이 해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혼란스럽고 또 이른바 액운이 함께 몰려든 해였다. 위선 정월 들어서 선처(先妻)가 아이를 낳고 9일 만에 세상을 떠났고 그래서 평양서 하던 장사니 살림이니 한 걸, 전부 헤쳐버리고 성천(成川)에 와 있었고, 6월과 10월에 양차(兩次)나 카프사건으로 전주를 다녀왔고, 어린아이들은 양처(兩處)에서 연달아 홍역과 이질을 앓고도 분경치듯 하던 해이다.

당대조선여성기질 (한국문학전집: 김남천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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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681 2 0 1 2017-01-13
처녀 명이 이번 봄에 89 전문 정도의 학교를 나와서, 사회로 가정으로 흩어졌다. 이밖에 동경이나 또는 서울 외의 곳에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이도 많을 것이요 중학교를 졸업한 채 가정으로 돌아온 분도 많을 것이므로 조선사회는 새로이 적지 않은 숫자의 고급 학문의 수업 여성을 맞이한 셈이다. 모두 20 전후의 젊은이들이매, 그들의 가슴속에는 제 각기 하나씩의 아름다운 무지개를 품고 교문을 나섰을 것이다. 이미 이 해도 반이 기울어서 그들의 무지개들이 얼마나 찬란하게 하늘을 장식하고 있는지 차츰 실험기에 들어가고 있다 할 수 있는데, 하나 하나 그것을 조사할 길이 없으니 상세한 바를 묘사할 수는 없다.

일반문화 (한국문학전집: 김남천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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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13 2 0 1 2017-01-14
일반적으로 문화의 신은 침묵하지 않을 수 없는 역사적 순간에 처하여 있다 이것은 이미 전지구가 . 역사적 회전에서 얻은 바 피치 못할 필연적인 사태이며 개중에도 극동의 지도가 당하지 않을 수 없는 역사적 운명이다. 이에 대한 분석은 수년래 특히 작년 이래 우리들의 익히 듣고 보아온 바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있어서의 이번 달의 문화현상은 역시 침체 일색이었다고 말하여버리면 문제는 지극히 간단히 처치될 것이다. 이것의 사회적 근거의 해명에 있어서도 우리는 상식적으로 운위되는 일반적인 분석으로써 충분히 이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봄이면 생각나는 이 (한국문학전집: 김남천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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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07 2 0 1 2017-01-14
어제 밤부터 오늘 아침에 걸쳐 많은 눈이 내렸다. 벌써 입춘까지 지났으니 지금을 겨울이랄 수는 없고 봄을 위하여 글쓰기고 이번이 두 번 차이니 지금은 영락없는 봄이요 나의 마음도 벌써 봄을 안은 지 오래다. 그러므로 밖에는 흰 눈이 퍼붓고 있건만 책상에 마주앉아 ‘봄이면 생각나는 곳 혹은 사람’을 기록하고 있는 데 아무런 감정의 저어(齟齬)도 느끼지 않는다. 더구나 창틈으로 새어드는 바람이 확실히 훈기를 품었고. 지금도 내리고 있는 무거운 눈은 겨울의 것이라기보다는 봄의 꽃이라는 게 실감이다. 지하실에 처박아 둔 화분을 무심결에 보았더니 그 중의 성급한 것은 벌써 신 멀건 움을 비죽이 내밀고 있다. 봄은 왔다.

부덕이 (한국문학전집: 김남천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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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99 2 0 1 2017-01-14
내가 어려서 아직 보통 학교에 다닐 적에, 우리 집에서는 부덕이라는 개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개라고 해도, 이 즈음 신식 가정에서 흔히 기르는 세파트나 불독이나 뭐 그런 양견이거나, 매사냥꾼이나 총사냥군이 길들인 사냥개거나, 그런 훌륭한 개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시골 집에서들 항용 볼 수 있는 아무렇게나 마구 생긴 그런 개입니다. 도적이나 지키고, 남은 밥찌꺼기나 치우고 심하면 아이들 뒷시중까지 보아 주는 그런 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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