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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쓰는 요령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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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394 2 0 1 2017-01-30
근미심차시(謹未審此時)로 시작하여 여불비상서(餘不備上書)로 끝을 맺게 되어야 편지로서 그 격식을 갖추었다고 보는 낡아빠진 투를 버리고, 서로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듯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하면 되는 것이라고 하는 데 이의는 없겠지마는 역시 형식상의 제약은 받게 되어 있는 것이 편지글이다.

별을 헨다 후기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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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87 2 0 1 2017-01-30
해방 후에 쓴 것만 모았다. 「금단(禁斷)」이 그 첫 작품이었다. 쓰고 나니 해방조선의 편모를 그것도 조그마한 그릇에다 구차하게 담아 놓은 것이 도무지 성이 차지 않아, 이왕이면 다시 한 번 써 볼까 하고 망설이던 즈음,《동아일보(東亞日報)》의 청이 있어 일언에 승낙을 하고 좀더 폭이 넓게 써 본다고 쓴 것이 「별을 헨다」였다.

꿈을 새긴다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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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20 2 0 1 2017-01-30
나는 내 마음을 가지고도 내 마음대로 살아 보지 못한다. 내가 오늘껏 사람을 속여 온 속임이 몇 속임이나 될까. 내가 오늘껏 웃어지지 않는 웃음을 웃어 온 웃음이 몇 웃음이나 될까. 내가 오늘껏 권력의 강압에 고개를 숙여 온 고개가 몇 고개나 될까. 내가 오늘껏 죄 없이 죄의식을 느껴 온 죄의식이 몇 죄의식이나 될까. 이걸 수첩에다 낱낱이 기록을 해 두었더라면 나를 좀더 아는 재미있는 계 산이었을 텐데 이걸 보통으로 살았다.

동창 앞에서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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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28 2 0 1 2017-01-30
첫 추위에 한 번 언 창이 좀체 녹질 않는다. 스토브에 불은 연일 지속되건만 대용탄(代用炭)의 기세로는 동창(冬窓)을 녹일 만한 화력을 한 번 올려 보지 못한다. 쓸쓸한 방안이다. 바람 맞은 병아리같이 어깨만 그냥 올라간다. 그러지 않아도 남의 집에 몸을 맡긴 손님처럼 자유에 가난한 마음이 오력(五力)에 자유까지 잃게 되니 도시 몸이 무거운 듯이 흥이 실리지 않는다. 그래도 웃고 지나는 친우들을 보면 해방된 백성의 면모인 것 같아 한결 마음이 풀리다가도 어느새 동창과 같이 얼어들곤 한다.

내가 사는 주변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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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85 2 0 1 2017-01-30
버스를 타고 미아리고개를 터덕이며 넘다가 길음교를 접어들 때 시선이 왼편으로 쏠리게 되면 바로 눈 아래 시멘트 기와를 인 무슨 목장지대 같은 납작한 건물들이 산으로 둘러싸인 오목한 골 안 일대에 지질펀펀하게 깔려 있음을 내려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판에다 찍어낸 듯한 그 집이 그 집 같은 꼭같은 것을 무더기로 쏟아 놓은 그래서 인가(人家)는 아닌 것 같은 생소한 건물임이 쏠린 시선에 좀더 주의를 깊게 만들 것이다.

고발당한 인간의 재판관이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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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08 2 0 1 2017-01-30
작가는 모름지기 누구나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생각이 항상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되어 있을 것이다. 자기류의 스타일은 체득하고 있을 것이니까, 이‘어떻게’라는 것은 어떻게 되리라고 알것이마는 ‘무엇’이라는 데 이르러서는 그 모색에 살점이나 톡톡히 깎이우면서 고심을 할 것이라 안다.

내 붓끝은 먼 산을 바라본다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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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58 2 0 1 2017-01-30
나는 지금 소설이란 것과 인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처음 소설이란 것을 쓰기 시작했을 때도 소설이 무엇인지 모르고 썼다. 물론 인생이란 무엇인지도 몰랐다. 소설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소설을 쓰고 있는 동안에 나는 소설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인생도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인생을 알고 소설을 쓴다고 소설을 써왔다.

고독한 세계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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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96 2 0 1 2017-01-30
나의 창작 생활은 한 폭의 슬픈 그림이다. 소복한 여인의 심정과도 같이 늘 고독하다. 내 세계는 언제든지 독자의 이해 밖에 있는 것이다. 창작을 한다고 붓을 든 지 금년까지 꼭 35년 발표한 작품수가 50에 가깝건만 그 어느 하나 이해의 대상이 되어 있음을 보지 못했다. 간혹 비평가의 붓끝이 다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했자 그것으로 그들이 완전히 이해를 하였는가 하면 그렇게 볼 수가 없었다.

무명작가 목군에게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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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52 2 0 1 2017-01-30
군(君)은 언제인가 노상에서 나를 만났을 때 발표한 작품을 내가 보았는 지 못 보았는지 그것을 말, 말끝에 은근히 경위 떠 보고 아직 보지 않았으면 한번 보아 달라는 그런 의미까지 포함된 태도를 가지더군요. 그래서 나는 군이 아마 그 작품에 자신을 가졌나,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작품이 활자화된 것을 자랑하는 철없는 자부심에선가 그 어느 것일까에 흥미를 느끼고 그 후 나는 군의 작품을 주의해 보았소.

나의 소설수업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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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34 2 0 1 2017-01-30
나의 소설 수업은 《창조》지에서 이동원의 「몽영(夢影)의 비애」를 읽으므로 시작이 된다. 그때 내 나이 16,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당에서 「대학」을 펴 놓고‘대학지도재명명덕지어지선(大學之道在明明德至於至善)’을 찾고 있을 때다. 「치악산」이니 「심청전」이니 하는 구소설을 보아오다가 그 「몽영의 비애」에서 조금도 헛놓으려고 하지 않은 진실한 묘사, 산뜻한 표현에(그때는 그렇게 보았다) 크게 감동을 받고 나도 소설을 한번 써 본다는 엉뚱한 마음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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