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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예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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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92 2 0 1 2017-01-26
들에도 한 점의 바람이 없다. 거름 썩은 논귀의 진장물 위에 두 다리를 힘없이 쭉 버드러치고 뚱뚱 떠서 헐떡이는 개구리, 나른히 시든 풀잎 위에 깃을 축 늘어뜨리고 붙어 조는 잠자리 - 보기만 하여도 기분조차 덥다. 양산으로 볕을 가리었다고는 하나 등에 업힌 손자나, 손자를 업은 할아버지나 다 같이 땀에 떴다. 턱밑에 흘러내리는 땀을 할아버지는 건성 머리를 흔들어 떨며 가랫밥 위의 고르지 못한 논두렁길을 허덕허덕 지팡이로 더듬는다.

어수선한 문단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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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43 2 0 1 2017-01-26
내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열아홉 살 적부터였으나 그때에는 무슨 소설로 일생의 직업을 삼겠다든가 문학적으로 인기를 얻어 세상에 양명을 해 보겠다든가 그러한 욕심도 조금도 없었고 그저 막연하게 소설을 짓기가 재미있어 지었고 지은 것의 활자화를 보는 것이 또 까닭 없이 좋아서 학교 공부도 여차로 집어치고 그저 소설을 짓기에 타념이 없었다. 이때로 말하면 아직 우리 문단 초창기이어서 우리 시골 문학청년으로 하여금 눈을 떠 우러러보게 만드는 이가 겨우 몇 분밖에 없었다. 소설로 이광수, 김동인, 나도향, 염상섭, 전영택, 현빙허 그리고 시인에 김억, 노자영, 김석송 등 제씨로 문단은 자리도 잡히기 전이므로 웬만치만 쓰면 발표가 문제가 없는 시절이었다.

오리알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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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86 2 0 1 2017-01-26
반 삼태기가 넘게 짊어 놓은 자갈을 만금은 지고 일어섰다. 뼈마디가 졸아드는 듯이 짐은 무겁게 내려누른다. 누르는 맛이 아침결보다 차츰 더해 오는 것은 피로에 지친 까닭인가, 발자국을 떼니 걸음까지 비친다. 그러나 만금은 지게 작대기에 몸을 실어 가며 또박또박 걸음을 옮겨짚는 다. 열 살 난 아이에게는 확실히 과중한 짐이다. 부르걷은 무릎마다 아래로 튀어질 듯이 불근거리는 두 개의 종아리, 자식의 그것을 뒤에서 좇아오며 내려다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꽤 애처로왔다. 자식의 짐을 좀 헐하게스리 자기가 좀더 갈라 였더라면…… 하는 생각도 순간 미쳤으나 그것은 애처로움에서의 정뿐이요, 이미 광주리 전이 넘도록 인 자기의 돌 광주리만 해도 목이 가슴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듯이 거북한..

부부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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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37 2 0 1 2017-01-26
하필 들어와 앉는다는 것이 그 밑이었다. 무엇이 장하다고 한 다리를 찢어져라 공중으로 들고 선 묘령의 단발양 - 서커스단의 광고 포스터 치고는 그리 추잡한 것은 나이로되, 앉아서 올려다보니 맹랑하다. “여보, 이거 치어 줘요.” 매담에게 시선을 보내며 한 손으로 포스터를 가리켰다. 눈치 빠른 긱다껄은 매담의 지시도 있기 전에 달려와 정호의 머리 윗벽에 붙은 포스터를 뗀다.

불로초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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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77 2 0 1 2017-01-27
봄밤이 곤하단 말은 늙은이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말이다. 춘곤을 느낄 기력조차 인젠 다 빠졌는지 그렇게도 고소하던 새벽잠이 날마다 줄어드는 것 같다. 어제 저녁에도 며느리가 못자리에 오리를 보고 들어와 누운 다음에도 담배를 아마, 다섯 대는 나마 태우고 누웠으나, 눈을 붙이기까지에는 자정도 훨씬 넘었을 것인데, 한 잠도 달게 들어 보지 못하고 첫닭의 울음소리에 그만 눈이 띄어 가지고선 아무리 태수를 해야 다시는 잠이 들지 않는다. 닭도 이젠 두 홰나 울었으니 머지않아 동은 트겠으나 잠시라도 눈을 좀 붙여 볼까, 눈에 힘을 주고 누웠다 못해 할아버지는 이불을 제치고 일어나 담배를 또 한 대 재여 문다.

치마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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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59 2 0 1 2017-01-27
아홉시까지는 보낸다고 했는데 아홉시가 넘어서도 오는 사람이 아니다. 대접할 건 없어도 오래간만에 명절 빙자해서 한번 맞나 이야기라도 하고 싶어서 청했던 것이요, 저도 맞나고 싶어한다고 초하룻날은 그렇지 않아도 오겠다는 말이 있더라는 그 남편의 대답이었다. ‘동무가 그렇게 고생을 허구 삼팔선을 넘어왔다는데 한번 찾아 주지두 않는다구 혹 노하지나 않았나?’

악의 성격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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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79 2 0 1 2017-01-27
거의 날마다 다방에서 만나는 친구인데, 이 친구 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몇 마디의 담화 끝에 뚝불견, “선생님 댁 주소가 어디죠?” 하고 어째 좀 이상한 것 같은 태도다. 그때 건 왜 묻느냐고 하니까, “한번 찾아뵙고 싶어서요.” 하는 대답이 암만해도 좀 부자연스러웠다.

김환기 형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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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154 2 0 1 2017-01-27
형께서뿐 아니라 나 제주도에 왜 묻혀 있는지 모르겠단 말 여러 친구들한테서도 듣소. 하기야 제주는 또 제주대로 재미가 있을 테지 하는 말도 듣소. 그러나 다 내 속을 모르는 말이오. 내가 제주에 떨어질 적엔 해녀가 따는 전복이 맛도 있으려니 돌담 안에 우거진 동백꽃의 고유한 정서가 피난에 쫓긴 애달픈 심정을 어루만져도 주려니 하였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고, 그리하여 시미창일한 전복으로 고유한 정서 속에 마음껏 배 불리고 취해 보고 하리라. 그래서 짐을 아주 풀어 놓았던 것이 친구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로 억측을 빚어내게 한 것이오.

금화산령에서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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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11 2 0 1 2017-01-28
초가집 처마 끝에 고추다래가 붉게 늘어지면 산기슭은 귀뚜라미 소리에 눌은다. 이 시절이면 율정(栗亭)의 자연석 위에 고요히 걸어앉아 자연의 주악(奏樂)에 귀를 기울이고 어지러운 마음을 잊어 보는 때처럼 마음의 위안은 없었다. 장미꽃이 빨갛게 피는 봄 아침이거나 방초가 하얗게 머리를 푸는 가을 저녁이면 나는 이 율정을 잊지 못한다. 창작에 매듭진 생각도 봄 아침, 가을 저녁의 이 율정에서 풀렸고, 파리한 마음에 너그러운 살도 봄 아침, 가을저녁의 이 율정에서 쪘다. 장미꽃을 빨갛게 물드는 봄 아침의 율정, 방초 머리가 하얗게 헛나는 가을 저녁의 율정―그 어느 해나 봄과, 가을의 이 두철을 맞으며 내 고향 집 율정을 잊어 본 때가 있었을까.

권력과 아부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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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06 2 0 1 2017-01-28
어느 때나 권력 그것보다 권력에 아부하는 그 아부가 더 무섭다. 권력에는 그래도 사리의 분변이 어느 정도 따라다니기도 하지만, 아부는 맹목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일제 말기에 있어서도 소위 그 내선 일체를 부르짖던 그 정책보다 그 정책에 아부하는 그 아부배가 더 무서웠다. 자기 개인의 일시적인 영화를 위하여 혹은 자기의 신변 보장만을 위하여 혹은 사리에 눈이 어두운 이 아부의 맹종은 과연 무서운 것이었다. 거기엔 수단도 없고 방법도 없었다. 권력이 말하는 정책에 협조가 없으면 그저 비국민이라는 낙인을 찍어 놓으므로 아부의 도구를 삼는 것이 그들의 행동이었다. 이것도 일본인이 아니고 동족인 같은 혈통끼리의 행동이었음을 생각할 때, 나는 이 와중에서 벗어나던 8·15를 또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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