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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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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71 2 0 1 2017-01-27
아홉시까지는 보낸다고 했는데 아홉시가 넘어서도 오는 사람이 아니다. 대접할 건 없어도 오래간만에 명절 빙자해서 한번 맞나 이야기라도 하고 싶어서 청했던 것이요, 저도 맞나고 싶어한다고 초하룻날은 그렇지 않아도 오겠다는 말이 있더라는 그 남편의 대답이었다. ‘동무가 그렇게 고생을 허구 삼팔선을 넘어왔다는데 한번 찾아 주지두 않는다구 혹 노하지나 않았나?’

악의 성격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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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91 2 0 1 2017-01-27
거의 날마다 다방에서 만나는 친구인데, 이 친구 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몇 마디의 담화 끝에 뚝불견, “선생님 댁 주소가 어디죠?” 하고 어째 좀 이상한 것 같은 태도다. 그때 건 왜 묻느냐고 하니까, “한번 찾아뵙고 싶어서요.” 하는 대답이 암만해도 좀 부자연스러웠다.

김환기 형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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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168 2 0 1 2017-01-27
형께서뿐 아니라 나 제주도에 왜 묻혀 있는지 모르겠단 말 여러 친구들한테서도 듣소. 하기야 제주는 또 제주대로 재미가 있을 테지 하는 말도 듣소. 그러나 다 내 속을 모르는 말이오. 내가 제주에 떨어질 적엔 해녀가 따는 전복이 맛도 있으려니 돌담 안에 우거진 동백꽃의 고유한 정서가 피난에 쫓긴 애달픈 심정을 어루만져도 주려니 하였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고, 그리하여 시미창일한 전복으로 고유한 정서 속에 마음껏 배 불리고 취해 보고 하리라. 그래서 짐을 아주 풀어 놓았던 것이 친구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로 억측을 빚어내게 한 것이오.

금화산령에서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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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24 2 0 1 2017-01-28
초가집 처마 끝에 고추다래가 붉게 늘어지면 산기슭은 귀뚜라미 소리에 눌은다. 이 시절이면 율정(栗亭)의 자연석 위에 고요히 걸어앉아 자연의 주악(奏樂)에 귀를 기울이고 어지러운 마음을 잊어 보는 때처럼 마음의 위안은 없었다. 장미꽃이 빨갛게 피는 봄 아침이거나 방초가 하얗게 머리를 푸는 가을 저녁이면 나는 이 율정을 잊지 못한다. 창작에 매듭진 생각도 봄 아침, 가을 저녁의 이 율정에서 풀렸고, 파리한 마음에 너그러운 살도 봄 아침, 가을저녁의 이 율정에서 쪘다. 장미꽃을 빨갛게 물드는 봄 아침의 율정, 방초 머리가 하얗게 헛나는 가을 저녁의 율정―그 어느 해나 봄과, 가을의 이 두철을 맞으며 내 고향 집 율정을 잊어 본 때가 있었을까.

권력과 아부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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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19 2 0 1 2017-01-28
어느 때나 권력 그것보다 권력에 아부하는 그 아부가 더 무섭다. 권력에는 그래도 사리의 분변이 어느 정도 따라다니기도 하지만, 아부는 맹목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일제 말기에 있어서도 소위 그 내선 일체를 부르짖던 그 정책보다 그 정책에 아부하는 그 아부배가 더 무서웠다. 자기 개인의 일시적인 영화를 위하여 혹은 자기의 신변 보장만을 위하여 혹은 사리에 눈이 어두운 이 아부의 맹종은 과연 무서운 것이었다. 거기엔 수단도 없고 방법도 없었다. 권력이 말하는 정책에 협조가 없으면 그저 비국민이라는 낙인을 찍어 놓으므로 아부의 도구를 삼는 것이 그들의 행동이었다. 이것도 일본인이 아니고 동족인 같은 혈통끼리의 행동이었음을 생각할 때, 나는 이 와중에서 벗어나던 8·15를 또한 ..

주기적으로 왔던 염증의 역정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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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08 2 0 1 2017-01-28
처음으로 내가 소설에 붓을 댈 그 시절에는 아직 문단이라는 존재가 뚜렷하게 형성이 되어 있지 않았다. 시를 쓰는 사람으로 시인이 되거나, 소설쓰는 사람을 작가라거나, 그런 명칭으로도 불리우지 않고 그저 문사(文士)라는 일관된 이름으로 통칭이 되고 있었다. 그러면서 시인들은 데카당파나 상징파 이야기들을 성히 하였고, 작가는 사실주의나 자연주의 이야기 이외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주로 읽는다는 것이, 시인은 보드레르, 베르테르 등이었고, 작가는 졸라, 프로베르, 모파상 등이었다.

승차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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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27 2 0 1 2017-01-28
복잡한 십자로 같은 곳을 건너야 할 경우에 처하게 되면 나는 항상 버스나 전차를 이용해 가지고 건너간다. ‘고·스톱’이라는 것이 있어, 차를 세우고 사람을 건네 보내고 하는 신호로 안전을 도모해 주기는 하지마는 저쪽까지 채 건너가기도 전에 ‘스톱’이 ‘고’로 바뀌게 되면 진땀을 한참 개어 내어야 되기 때문이다. 정지의 신호가 회전만 되면 이제 갈 길이 허여 되었다고 차들은 그까짓 건너가던 사람들이야 어떻게 되었건, 그저 자기네들에게 허여된 자유만을 행사하는 것이 할 일이라는 듯이 눈 한 번 깜박할 여유도 주지 않고 내닫게 마련이다.

낚시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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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01 2 0 1 2017-01-28
나에게 창작 이외의 예기가 있다면 그것은 낚시질일 것이다. 창작과 같이 이십여 년을 즐겨 온 낚시질은 지금 와서는 창작보다도 오히려 나를 유혹하는 편이 더 승하다. 그 어느 한 해에는 붓도 책도 깡그리 다 놓고 해춘이 되자부터 결빙이 될 때까지 일출(日出)과 더불어 집을 떠났다가는 일몰(日沒)과 더불어 강변에 다 알뜰한 미련(未練)을 남겨 놓고 돌아오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해 본 일이 있다.

친절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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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01 2 0 1 2017-01-28
내가 열다섯 살이던 그 해 겨울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차를 타 보았다. 행동을 얌전히 가져야 하는 장가를 드는 길이었기 때문에 좀더 몸이 곤하게 되는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일곱 정거장이면 내린다는 그리 먼 거리도 아닌 것이 차는 정거장을 반(半)도 세지 못해서 몸은 지탱할 수 없이 말재었다. 무엇보다 맞받아 나오는 메스꺼움을 참을 길이 없었다. 메스꺼운 덴 동전을 입에다 물면 낫는다는 말을 어디서 얻어 들었던 기억이 있어 일 전짜리 동전 두 닢을 꺼내어 입 안에 넣고 아무리 굴려 보아도 메스꺼움은 멎지 아니하고 갈수록 더해만 왔다.

나의 취미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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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10 2 0 1 2017-01-28
고래(古來)로 낚시질을 가리켜 고상한 취미라고 일컬어 오지만 따집어 말하면 낚시질이란 잔인하기 짝이 없는 취미다. 미물이라고는 하나 살겠다고 구풀거리는 지렁이를 사정없이 동강을 쳐서 낚싯바늘로 훌뚜기를 꿴다든가 팔딱거리는 새우를 거두 절미하여 미끼로 삼는다든가하는 그 살생부터가 잔인한 행동이거니와, 이러한 살생으로서 또 다른 하나의 좀더 대규모인 살생을 도모하므로 만족을 얻자는 것이 결국은 낚시질의 본의(本意)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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