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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의 새 경지 (한국문학전집: 김남천 44)

지금 나는 채만식 씨 소설의 애독자의 한 사람이다. 채씨를 안 지는 10년이 가까웠지만 그때부터 애독자였던 것은 아니다. 씨는 개벽사에 있을 때에 많은 단편을 썼었고 그 뒤「인형의 집을 나와서」같은 장편도 썼으나 그 때도 나는 씨의 소설의 독자는 아니었따. 씨는 그 때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내가 소속해 있던 단체 사람들과 곧잘 논쟁을 하였고 시비를 걸었다. 설왕설래하는 논설의 주지는 어찌 되었건 물론 나의 감정도 그리 순평(順平)치는 못하였다. 그러다가「탁류」가 신문에 연재되는 것을 읽기 시작하였다.
지금 나는 채만식 씨 소설의 애독자의 한 사람이다. 채씨를 안 지는 10년이 가까웠지만 그때부터 애독자였던 것은 아니다. 씨는 개벽사에 있을 때에 많은 단편을 썼었고 그 뒤「인형의 집을 나와서」같은 장편도 썼으나 그 때도 나는 씨의 소설의 독자는 아니었따. 씨는 그 때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내가 소속해 있던 단체 사람들과 곧잘 논쟁을 하였고 시비를 걸었다. 설왕설래하는 논설의 주지는 어찌 되었건 물론 나의 감정도 그리 순평(順平)치는 못하였다. 그러다가「탁류」가 신문에 연재되는 것을 읽기 시작하였다.
김남천 (金南天 1911 ~1953)

본명 효식(孝植). 평남 성천 출생.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도쿄[東京] 호세이[法政]대학 재학 중이던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KAPF)에 가입하였고, 안막(安漠) ·임화(林和) 등과 함께 1930년 카프 동경지부에서 발행한 《무산자(無産者)》에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1931년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으며, 여기서 김기진(金基鎭)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 볼셰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한 바 있다. 그 후, 1931년과 1934년 카프 제 1 ·2차 검거사건 때 체포되어 복역하였으며, 1935년에는 임화 ·김기진 등과 함께 카프 해소파(解消派)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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