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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 (한국문학전집: 김유정 05)

들고 나갈거라곤 인제 매함지박과 키 조각이 있을 뿐이다. 근식은 아내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전부터 미뤄오던 호포를 독촉하러 면서기가 왔던 것을 남편이라고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왜 그놈을 방으로 불러들였냐고 눈을 부르뜨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에게 감자를 구워 먹이고 있는 아내는 어이없는 일이라 기가 콕 막힌 모양이었다. 가무잡잡한 얼굴에 핏대를 올렸다. 남편을 쏘아보며 기집이 좋다기로 그래 집안 물건을 다 들어낸담 하고 여무지개 종알거린다. 이때까지 까맣게 모르는 줄만 알았더니 아내는 귀신같이 옛날에 다 안 눈치다. 아내는 자기의 속옷과 맷돌짝을 훔쳐 낸 것에 샘과 분을 못 이기어 무슨 되알진 소리가 터질 듯 하면서도 그냥 꾹 참는 모양이었다. 남편은 고만 얼굴이 화끈 닳았다. 아내는 좀 살자고 ..
들고 나갈거라곤 인제 매함지박과 키 조각이 있을 뿐이다. 근식은 아내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전부터 미뤄오던 호포를 독촉하러 면서기가 왔던 것을 남편이라고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왜 그놈을 방으로 불러들였냐고 눈을 부르뜨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에게 감자를 구워 먹이고 있는 아내는 어이없는 일이라 기가 콕 막힌 모양이었다. 가무잡잡한 얼굴에 핏대를 올렸다. 남편을 쏘아보며 기집이 좋다기로 그래 집안 물건을 다 들어낸담 하고 여무지개 종알거린다. 이때까지 까맣게 모르는 줄만 알았더니 아내는 귀신같이 옛날에 다 안 눈치다. 아내는 자기의 속옷과 맷돌짝을 훔쳐 낸 것에 샘과 분을 못 이기어 무슨 되알진 소리가 터질 듯 하면서도 그냥 꾹 참는 모양이었다. 남편은 고만 얼굴이 화끈 닳았다. 아내는 좀 살자고 고생을 무릅쓰고 바둥거리는 이판에 남편이란 사람은 속옷으로 술을 사먹었다면 어느모로 따져보든 곱지 못한 행실이다. 아내의 시선을 피할만치 몹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하지만 남편된 도리로 변명을 했지만 사내놈을 방으로 불러 들여 뭐했냐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독살이 송곳끝처럼 뾰로져서 젖 먹이던 아이를 방바닥에 쓸어 박고 발딱 일어서 제 공을 모르고 게정만 부리니까 야속한 모양에 나가버린다. 아내가 나가고 근식은 방문을 열고 가만히 밖으로 나왔다. 그는 부엌을 더듬어 들어가서 함지박을 들고 아내에게 들키지 않게 뒤란으로 뺑소니를 놓았다.
단편 소설 '소낙비'로 1935년 《조선일보》에 당선되기 2년 전에, 김유정은 「산골 나그네」라는 소설을 개벽사의 문예지 『제일선』에 발표하였다. 이 「산골 나그네」는 김유정이 춘천에 있을 때, 팔미천에서 목욕을 하고 돌아오다 길가 오막살이에 살던 돌쇠라는 사람의 집에서, 돌쇠어멈으로부터 그 집에 며칠 머물다 도망친 어떤 들병이 여자에 대하여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지은 것이었다고 한다. 같은 해에 「총각과 맹꽁이」(『신여성』 9월호), 「흙을 등지고」 등을 발표했지만, 이들 소설은 그렇게 좋은 반응을 얻어내지는 못하던 차에 1934년 말에 『조선일보』와 『조선중앙일보』, 『동아일보』등 세 개의 신문사에 나란히 소설을 응모하였고 그 가운데 『조선일보』에 응모했던 「소낙비」는 1등, 『조선중앙일보』에 응모했던 「노다지」가 가작으로 당선되면서 비로소 문단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등단한 해에 김유정은 자신의 생에 대표작이라 불릴 작품 대부분을 발표하였다. 「금 따는 콩밭」 · 「금」 · 「떡」 · 「만무방」 · 「산골」 · 「솟」 · 「봄봄」 · 「안해」 등의 단편 10편과 수필 3편이 그가 등단한 바로 그 해에 쏟아져 나왔는데, 춘천에서 보고 느꼈던 고향의 정취와 농민들의 곤궁한 생활, 그 자신의 개인적인 불행에서 체험한 감상 등이 그의 소설의 주요 모티프였다. 문단에 이름을 올린 김유정과 절친했던 문우(文友)로는 휘문고보 때부터의 동창이었던 안회남 말고도, 사직동의 매형집에 살 때부터 앞뒷집에 살며 김유정의 생활에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던 이석훈도 있었고, 이석훈의 소개로 구인회에 가입한 뒤에 알게 된 이상(李箱)도 있었다. 1937년에 똑같이 「남생이」라는 작품으로 『조선일보』에 등단한 현덕(玄德)도 김유정의 문우였다.

1934년에 김유정은 사직동에서 혜화동으로 이사하였고, 누나의 집에서 식객살이를 시작했다. 김유정에게는 무수히 많은 원고 청탁이 쏟아져 들어왔고, 김유정 자신도 약값을 벌기 위해 청탁이 오는 대로 글을 썼지만 그나마도 돈이 생기면 술값으로 써버리기 일쑤였다. 《여성》이라는 잡지에 자신이 기고했던 「어떠한 부인을 맞이할까」라는 글과 나란히 실린 박봉자(시인 박용철의 여동생)의 글을 읽게 된 김유정은 다시 얼굴도 모르는 박봉자라는 여인을 향해 무려 31통에 달하는 구애의 편지를 썼지만, 답장은 한 통도 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얼마 뒤 김유정 자신도 잘 알고 지낸 평론가 김환태와 박봉자가 약혼을 했으며 곧바로 결혼했다는 비극적인 소식만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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