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양심적인 인류가 가질수 있는 최대의 증오의 날, 1936년 6월 18일 오후 3시. 20세기 최고의 인간, 막심 고리끼는 이 세상에서의 최후의 호흡을 끊고 말았다. 68년전‘쯔아’의 황막한 대륙을 뚫고 용용(溶溶)히 흐르는 볼가 하(河)의 유역에서 황금과 전제의 증오를 일생의 운명으로 한 반역아, 페슈코프가 고고(呱呱)의 소리를 울린 지 반여(半餘) 세기, 최하층의 악압 당하는 백성의 자식으로서 암흑과 굴욕 속에서‘아라사의 의지와 힘’ 단신에 들고 근로하는 억만 대중의 최량의 요우(僚友)의 지조를 관철한 거대한 인간은 우리들 속으로부터 완전히 그의 자취를 감추고 만 것이다.
김남천 (金南天 1911 ~1953)
본명 효식(孝植). 평남 성천 출생.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도쿄[東京] 호세이[法政]대학 재학 중이던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KAPF)에 가입하였고, 안막(安漠) ·임화(林和) 등과 함께 1930년 카프 동경지부에서 발행한 《무산자(無産者)》에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1931년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으며, 여기서 김기진(金基鎭)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 볼셰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한 바 있다. 그 후, 1931년과 1934년 카프 제 1 ·2차 검거사건 때 체포되어 복역하였으며, 1935년에는 임화 ·김기진 등과 함께 카프 해소파(解消派)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