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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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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50 2 0 1 2016-12-29
꽃을 여자에게 비한다면, 진달래는 이미 춘정을 잊은 스무 고개는 훨씬 넘어선 여인 같으면서도 또 정숙하여 보입니다. 그리고 확호한 인생관이 유행이라는 데는 눈도 뜰 줄 모르는, 그리하여 속세의 풍정과는 높이 담을 쌓은 점잖음이 속속들이 깃들여 있어 보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꽃은 나비를 기다려 춘정을 느끼건만 진달래는 나비도 오기 전에 산간 깊숙이 홀로 피어서 스스로 봄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포플러 나무 예찬 (한국문학전집: 김교신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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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82 2 0 1 2016-12-30
낙락장송의 우거진 경개가 장하지 아님이 아니나, 백설이 만건곤(滿乾坤)할 때 독야청청(獨也靑靑)할 만한 의열(義烈)의 사(士)가 아님을 어찌하며, 운표(雲表)에 우뚝 솟은 은행의 거수(巨樹)가 위관(偉觀)이 아님이 아니나, 인의에 기반을 세운 공부자(孔夫子)에게 경원하는 생각이 앞섬을 어찌하며, 매죽(梅竹)이 귀엽지 아님이 아니나, 시인 묵객의 취흥을 손(損)할까 저어하니, 차라리 우리는 계변(溪邊)에 반열(班列)지으며 혹은 고성(古城)에 외로이 솟은 포플라나무를 우러러보고자 하노라. 포플라는 하늘을 향하고 산다.

신경훈련 (한국문학전집: 김교신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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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04 2 0 1 2016-12-30
오랫동안 화성의 관찰에 열성스러운 어떤 소인(素人)[1] 천문학자가 탄식하였다 한다 ― 신경도 훈련해야 되겠다고. 그 뜻은 망원경을 사용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화성의 빛이 한 가지로만 보이더니 오래오래 관측을 계속한 결과로 드디어 화성이 육지에서 반사하는 광채와 그 운하라는 수면에서 발하는 빛의 구별을 ― 인식하게 되었으니 망원경이라고 곧 잘 보인다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안구의 신경이 상당히 훈련되었어야 비로소 전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빛을 인식할 만한 신경의 훈련이 선행하여야 된다.

수상록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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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15 2 0 1 2016-12-29
사람이 세상에 날 때에 일생의 필자를 그 얼굴에다 내여 박고 나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대개 그 사람의 팔자가 그 얼굴에 그려 있는 듯이 보이기는 한다. 붙음 붙음이 괴롭게 정리되고, 번듯하게 생긴 얼굴의 소유자는 그것이 그대로 그 사람의 복을 말하는 것 같고, 또 그와는 반대로 얼굴이 조밀작해서 어딘지 구차해 보이는 얼굴의 소유자는 아무리 해도 복은 없을 것 같게만 보인다.

율정기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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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33 2 0 1 2016-12-29
인제 버들잎이 완전히 푸르른 걸 보니 밤나무 잎에도 살이 한참 오르고 있을 것 같다. 버들 뒤에 잎이 푸르른 나무가 하필 밤나무뿐이랴만 버들잎이 푸르면 나는 내 고향집 정원의 그 늙은 밤나무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그것은 몇 백 년이나 되었는지 팔순의 노인네들까지 자기의 어렸을 시절에도 역시 그저 지금이나 다름없는 모양으로 그렇더라고 하는, 언제 어느 때에 심어졌는지 그 유래조차 알 수 없는 그러한 연령을 가진 밤나무다. 어떠한 나무든지 아름드리로 굵게 되면 그 보이는 품이 사람으로 비해 보면 많은 수양에 단련이 된 그러한 학자같이 침착하고 장중한 맛이 있어 보이거니와, 이 밤나무야말로 사상이 일관된 철학자같이 숭엄하게, 무겁게, 그리고 거룩하게 보였다.

장미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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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18 2 0 1 2016-12-29
하필 꽃에 있어서뿐 아니라, 무슨 빛에 있어서나 그 어느 다른 빛보다 붉은 빛이 좀더 유혹적이거니와 같은 향기를 담은 같은 장미로되, 황장미(黃薔薇)보다는 홍장미(紅薔薇)가 한결 마음을 끈다. 황장미를 보통 여자에 비한다면 홍장미는 확실히 그것을 뛰어넘는 미인이다. 그리고 황장미는 숙성한 여인같이 점잖아 보이는 데 반하여 홍장미는 한참 시절을 자랑하는 17, 8의 처녀 같은 애교를 가졌다.

제비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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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44 2 0 1 2016-12-29
우중(雨中)에 미안하나, 좀 급히 와 달라는 벗의 부름을 받고 연두 끝에 우산을 벗긴다는 것이 어둠 속에 그만 제비 둥지에 손이 닿았던 모양이다. 둥지 안에서 알을 품던 제비가 파드득 날아난다. 지척도 분별할 수 없는 새까만 이 밤중에 더구나 비까지 내리는 이 밤중에 어디로 날아 났을까, 꽤 그놈이 다시 제 둥지를 찾아 들어올까, 둥지 틀 자리까지 손수 만들어 주고 고이고이 새끼를 쳐 내가기를 바라던 내 마음은 자못 불안하였다.

사연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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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94 2 0 1 2016-12-29
서울서 사자니 제비가 그립다. 봄 삼월이면 해마다 잊지 않고 내 서재(書齋) 문〔窓(창)〕앞 처마 밑에 들어와 깃을 들이고 새끼를 치던 그 제비가 그리운 것이다. 시골 있을 땐 음력 이월 그믐이 접어만 들면 나는 제비가 들어와 둥지 틀 자리를 나무 판지라든가 그러한 것으로 적당한 곳에 마련을 해 놓고는 맞아들이곤 했다. 그리고는 그놈이 아무 지장도 없이 고이고이 새끼를 쳐 내가 기를 이심으로 바라곤 했다.

정릉 일일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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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26 2 0 1 2016-12-29
정릉의 산 속은 새소리 없이도 푸르다. 물소리만이 그저 솨아솨 골짜기마다 들릴 뿐인데 산은 푸르렀다. 새소리를 무시하고도 정기만으로 푸르른 그 기개만은 장하다 아니 할 수 없으나 적어도 이만한 녹음이라면 꾀꼬리 소리 한마디 들을 수 없음이 무색하구나. 내 본래 산이나 바다의 취미를 모르거니와 오늘 내가 정릉의 녹음을 찾게 된 것도 무슨 이런 녹음의 유혹에서가 아니요, 사우(社友)들의 종용에 마지못해 따라 나섰던 길이니 그까짓 녹음이야 짙었던, 말았던 꾀꼬리야 울던, 마던 어아(於我)에 하관(下關)이리오만 그래도 이 녹음에, 이 물소리라면 꾀꼬리 소리 한마디쯤은 있어야 면목이 설 것 아닌가. 어쩌다 오다가다 숲 속을 다녀가는 밀화부리 소리 한마디 들을 수 없다.

피서의 성격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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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99 2 0 1 2016-12-29
그 어느 해 여름 피서를 한다고 이삼 인의 벗으로 어울려 옥호동(玉壺洞) 약수(藥水)를 찾아갔던 일이 있다. 산촌의 약수치고는 설비나 경치나가 다 무던했다. 이 약수의 성능이 어떠한 것인지는 알 바 없었으나 물이 차기로는 빙수에 질 바가 없었다. 돌 틈 새로 용솟음쳐 흐르는 물을 배지로 받으면 물 위에 보얗게 어리는 안개가 보기만 하여도 땀방울이 가더든다. 게다가 심산 깊숙이서 시잉싱 줄기차게 숲 사이를 헤치고 쏟아져 내려오는 산바람이 끊임없이 몸을 어루만져 주어 셔츠 바람엔 한기까지 느낄 정도다. 다만 피서지로 결점인 것은 쭉 벌거벗고 진탕치듯 헤엄을 쳐 볼 그러한 물만이 없는 것뿐이지 시원하고 조용한 편으로 송도원(松濤園)이나 그런 것보다 오히려 좋을는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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