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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플러 나무 예찬 (한국문학전집: 김교신 01)

김교신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63 2 0 1 2016-12-30
낙락장송의 우거진 경개가 장하지 아님이 아니나, 백설이 만건곤(滿乾坤)할 때 독야청청(獨也靑靑)할 만한 의열(義烈)의 사(士)가 아님을 어찌하며, 운표(雲表)에 우뚝 솟은 은행의 거수(巨樹)가 위관(偉觀)이 아님이 아니나, 인의에 기반을 세운 공부자(孔夫子)에게 경원하는 생각이 앞섬을 어찌하며, 매죽(梅竹)이 귀엽지 아님이 아니나, 시인 묵객의 취흥을 손(損)할까 저어하니, 차라리 우리는 계변(溪邊)에 반열(班列)지으며 혹은 고성(古城)에 외로이 솟은 포플라나무를 우러러보고자 하노라. 포플라는 하늘을 향하고 산다.

신경훈련 (한국문학전집: 김교신 02)

김교신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189 2 0 1 2016-12-30
오랫동안 화성의 관찰에 열성스러운 어떤 소인(素人)[1] 천문학자가 탄식하였다 한다 ― 신경도 훈련해야 되겠다고. 그 뜻은 망원경을 사용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화성의 빛이 한 가지로만 보이더니 오래오래 관측을 계속한 결과로 드디어 화성이 육지에서 반사하는 광채와 그 운하라는 수면에서 발하는 빛의 구별을 ― 인식하게 되었으니 망원경이라고 곧 잘 보인다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안구의 신경이 상당히 훈련되었어야 비로소 전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빛을 인식할 만한 신경의 훈련이 선행하여야 된다.

장미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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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01 2 0 1 2016-12-29
하필 꽃에 있어서뿐 아니라, 무슨 빛에 있어서나 그 어느 다른 빛보다 붉은 빛이 좀더 유혹적이거니와 같은 향기를 담은 같은 장미로되, 황장미(黃薔薇)보다는 홍장미(紅薔薇)가 한결 마음을 끈다. 황장미를 보통 여자에 비한다면 홍장미는 확실히 그것을 뛰어넘는 미인이다. 그리고 황장미는 숙성한 여인같이 점잖아 보이는 데 반하여 홍장미는 한참 시절을 자랑하는 17, 8의 처녀 같은 애교를 가졌다.

제비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28)

계용묵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226 2 0 1 2016-12-29
우중(雨中)에 미안하나, 좀 급히 와 달라는 벗의 부름을 받고 연두 끝에 우산을 벗긴다는 것이 어둠 속에 그만 제비 둥지에 손이 닿았던 모양이다. 둥지 안에서 알을 품던 제비가 파드득 날아난다. 지척도 분별할 수 없는 새까만 이 밤중에 더구나 비까지 내리는 이 밤중에 어디로 날아 났을까, 꽤 그놈이 다시 제 둥지를 찾아 들어올까, 둥지 틀 자리까지 손수 만들어 주고 고이고이 새끼를 쳐 내가기를 바라던 내 마음은 자못 불안하였다.

사연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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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79 2 0 1 2016-12-29
서울서 사자니 제비가 그립다. 봄 삼월이면 해마다 잊지 않고 내 서재(書齋) 문〔窓(창)〕앞 처마 밑에 들어와 깃을 들이고 새끼를 치던 그 제비가 그리운 것이다. 시골 있을 땐 음력 이월 그믐이 접어만 들면 나는 제비가 들어와 둥지 틀 자리를 나무 판지라든가 그러한 것으로 적당한 곳에 마련을 해 놓고는 맞아들이곤 했다. 그리고는 그놈이 아무 지장도 없이 고이고이 새끼를 쳐 내가 기를 이심으로 바라곤 했다.

정릉 일일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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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09 2 0 1 2016-12-29
정릉의 산 속은 새소리 없이도 푸르다. 물소리만이 그저 솨아솨 골짜기마다 들릴 뿐인데 산은 푸르렀다. 새소리를 무시하고도 정기만으로 푸르른 그 기개만은 장하다 아니 할 수 없으나 적어도 이만한 녹음이라면 꾀꼬리 소리 한마디 들을 수 없음이 무색하구나. 내 본래 산이나 바다의 취미를 모르거니와 오늘 내가 정릉의 녹음을 찾게 된 것도 무슨 이런 녹음의 유혹에서가 아니요, 사우(社友)들의 종용에 마지못해 따라 나섰던 길이니 그까짓 녹음이야 짙었던, 말았던 꾀꼬리야 울던, 마던 어아(於我)에 하관(下關)이리오만 그래도 이 녹음에, 이 물소리라면 꾀꼬리 소리 한마디쯤은 있어야 면목이 설 것 아닌가. 어쩌다 오다가다 숲 속을 다녀가는 밀화부리 소리 한마디 들을 수 없다.

피서의 성격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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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80 2 0 1 2016-12-29
그 어느 해 여름 피서를 한다고 이삼 인의 벗으로 어울려 옥호동(玉壺洞) 약수(藥水)를 찾아갔던 일이 있다. 산촌의 약수치고는 설비나 경치나가 다 무던했다. 이 약수의 성능이 어떠한 것인지는 알 바 없었으나 물이 차기로는 빙수에 질 바가 없었다. 돌 틈 새로 용솟음쳐 흐르는 물을 배지로 받으면 물 위에 보얗게 어리는 안개가 보기만 하여도 땀방울이 가더든다. 게다가 심산 깊숙이서 시잉싱 줄기차게 숲 사이를 헤치고 쏟아져 내려오는 산바람이 끊임없이 몸을 어루만져 주어 셔츠 바람엔 한기까지 느낄 정도다. 다만 피서지로 결점인 것은 쭉 벌거벗고 진탕치듯 헤엄을 쳐 볼 그러한 물만이 없는 것뿐이지 시원하고 조용한 편으로 송도원(松濤園)이나 그런 것보다 오히려 좋을는지 몰랐다.

수박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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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960 2 0 1 2016-12-30
취미에 따라서 제각기 다르기는 할 것이로되 여름 과실로는 아무래도 수박이 왕좌(王座)를 차지해야 할 것이다. 맛으로 친다 해도 수박이 참외나 다른 그 어떤 과실에 질 배 없겠으나 그 생긴 품위로 해서라도 참외나 그런 그 어떤 다른 과실이 수박을 따를 수 없을 것이다. 그 중후한 몸집에 대모(玳瑁)무늬의 엄숙하고 점잖은 빛깔이 우선 교양과 덕을 높이 쌓은 차림새 같은 그러한 고상한 인상을 주거니와, 감미한 맛을 새빨갛게 가득히 지닌 그 속심은 이 교양과 덕의 상징이라 아니 볼 수 없다.

전승지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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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80 2 0 1 2016-12-30
파리와 싸운다. 밥상을 들여다 놓으면 뚜껑을 열기가 바쁘게 달려들어 먼저 맛을 보며 돌아가는 놈이 파리다. 불결한 배설을 정한 데 없이 아무 데나 되는대로 갈겨 내는 놈이 또 파리다. 그러나 이런 것들쯤은 그대도 괜찮다. 책을 들고 누운 얼굴 위에 날아 들어 자꾸만 피부를 간질이며 방해를 하는 때처럼 미운 것은 없다. 시인 하이네는 바로 죽기 직전에 사랑하는 애인을 가리켜 “나의 파리여!”하고 불렀다거니와, 병석에 누운 자기의 주위를 떠나지 않고 언제나 빙잉빙 돌아가는 것이 마치 파리와 같아서 그렇게 불렀는지 어쨌든 애인을 파리라고 불렀다니 이 시인은 파리가 그처럼 좋았을까. 파리일레 책과의 친밀히 알뜰히 이어지지 못하고 모처럼 가라앉혀 책속에 파묻힌 정신..

여름의 미각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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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18 2 0 1 2016-12-30
여름은 채소를 먹을 수 있어 좋다. 시금치, 쑥갓, 쌈, 얼마나 미각을 돋우는 대상인가. 새파란 기름이 튀여지게 살진 싱싱한 이파리를 마늘장에 꾹 찍어 아구아구 씹는 맛 더욱이 그것이 찬밥일 때에는 더할 수 없는 진미가 혀끝에 일층 돋운다. 그러나 같은 쌈, 같은 쑥갓이로되, 서울의 그것은 흐뭇이 마음을 당기는 것이 아니다. 팔기 위하여 다량으로 뜯어다 쌓고 며칠씩이나 묵혀 가며 시들음 방지(防止)로 물을 뿌려선 그 빛을 낸다. 여기 미각이 동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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