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1772

손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15)

계용묵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224 2 0 1 2016-12-26
종이에 손을 베였다. 보던 책을 접어서 책꽂이 위에 던진다는 게 책꽂이 뒤로 넘어가는 것 같아 넘어가기 전에 그것을 붙잡으려 저도 모르게 냅다 나가는 손이 그만 책꽂이 위에 널려져 있던 원고지 조각의 가장자리에 힘껏 부딪쳐 스쳤던 모양이다. 선뜩하기에 보니 장손가락의 둘째 마디 위에 새빨간 피가 비죽이 스미어 나온다. 알알하고 아프다. 마음과 같이 아프다. 차라리 칼에 베였던들, 그리고 상처가 좀 더 크게 났던들, 마음조차야 이렇게 피를 보는 듯이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포도주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08)

계용묵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210 2 0 1 2016-12-23
하루는 어떤 벗으로부터 자친(慈親)이 회갑이니 저녁이라도 같이 먹으면서 하루저녁 이야기나 하자는 청을 받았다. 그 벗은 죽마의 고우일 뿐더러 벗의 자친 또한 나를 퍽이나 사랑하여 주시는 이로, 나는 반갑게 그러마고 승낙을 하였다. 그리고는 같은 청을 받은 역시 동향 친구인 한 사람의 동무와 같이 그 시각에 대여 가기로 하고 우리는 우선 진고개 백화점으로 향하여 나섰다. 이 갑파(甲婆)에게 무슨 기념이 될 만한 그러한 물건이 없을까 그것을 물색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백화점을 두루 돌아가며 찾아보아야 눈에 띄는 그럴듯한 물건이 없었다. 과자나 쟁반 같은 것은 어떠냐는 동무의 의견도 있었으나, 그런 것들은 그저 빈손이 뭣하여 들고 가는 보통 인사에 지나지 못하는 ..

이성을 보는 눈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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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34 2 0 1 2016-12-23
알지도 못하는 여인의 뺨을 전차 안에서 갈겼다. 서투른 운전수의 운전에 차체가 모로 쏠리어 비치는 몸을 진정시킨다는 게 그만 어떻게 되었던지 앞에 앉았던 젊은 여인의 뺨에 내 손은 힘차게 부딪치고야 배겨날 수 있었다.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하였으면 태도가 천연하여야 할 것인데, 그렇지를 못하다. 불쾌의 반증일까, 아픔을 못 참아서일까, 그렇지 않으면 사람 많은 데서 맞은 뺨이 부끄러워서일까? 마음이 놓이지를 못하여 다시 한번, “과(過)히 다쳤습니까?” 그러나 힐끗 쳐다볼 뿐, 말이 없다.

구두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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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49 2 0 1 2016-12-23
구두 수선을 주었더니 뒤축에다가 어지간히는 큰 징을 한 개씩 박아 놓았다. 보기가 흉해서 빼어 버리라고 하였더니, 그런 징이래야 한동안 신게 되고, 무엇이 어쩌구 하며 수다를 피는 소리가 듣기 싫어, 그대로 신기는 신었으나, 점잖지 못하게 저벅저벅 그 징이 땅바닥에 부딪치는 금속성 소리가 심히 귀맛에 역했다. 더욱이 시멘트 포도(鋪道)의 단단한 바닥에 부딪쳐 낼 때의 그 음향이란 정말 질색이었다. 또그닥또그닥, 이건 흡사 사람은 아닌 말발굽 소리다.

이역의 달밤 (한국문학전집: 강경애 14)

강경애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40 2 0 1 2016-12-22
이 밤의 교교한 월색은 여전히 나의 작은 몸뚱어리를 눈 위에 뚜렷이 던져 준다. 두 달 전에 저 달은 내 고향서 보았건만……? 이곳은 북국. 북국의 밤은 매우 차다. 저 달빛은 나의 뺨을 후려치는 듯 차다. 그리고 사나운 바람은 몰려오다가 전선과 나뭇가지에 걸려 휙휙 소리쳐 운다. 그 소리는 나의 가슴을 몹시도 흔들어준다. 때마침 어디서 들려오는 어린애 울음 소리…… 나는 문득 이런 노래가 생각난다. 이 밤에 어린애 우네 밤새껏 우네 아마 뉘 집 애기 빈 젖을 빠나부이 밤새워 빠나부이

나의 유년시절 (한국문학전집: 강경애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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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23 2 0 1 2016-12-22
5세에 아버지를 여읜 나는 일곱 살에 고향인 송화를 등지고 장연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어머니는 생계가 곤란하시므로 더구나 장차 의지할 아들도 없고 다만 딸자식인 나를 믿고 언제까지나 살아가실 수 없는 고로 개가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때에 의붓아버지에게는 남매가 있었으니 남아는 16,7세 가량이었으며 계집애는 내 한 살 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온 지 이틀도 지나기 전에 벌써 우리들은 싸움을 시작하였습니다.

간도의 봄 (한국문학전집: 강경애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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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10 2 0 1 2016-12-22
간도라면 듣기만 하여도 흰 눈이 산같이 쌓이고 백곰들이 떼를 지어 춤추는 황원한 광야로만 생각될 것이다. 더구나 이런 봄날에도 꽃조차 필 수 없는 그런 재미꼴 없는…… 사실에 있어 시력이 못 자랄 만큼 광야는 넓다. 그리고 꽃 필 새 없이 봄은 지나가버리고 만다. 그 대신 무연히 넓은 광야니 만큼 이 봄날이 오면 황진(黃塵)이 눈뜨기 어렵게 휘날리고 있다.

꽃송이같은 첫눈 (한국문학전집: 강경애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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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492 2 0 1 2016-12-22
오늘은 아침부터 해가 안 나는지 마치 촛불을 켜대는 것처럼 발갛게 피어오르던 우리 방 앞문이 종일 컴컴했다. 그리고 이따금식 문풍지가 우룽룽 우룽룽 했다. 잔기침 소리가 나며 마을 갔던 어머니가 들어오신다. “어머니, 어디 갔댔어?” 바느질하던 손을 멈추고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치마폭에 풍겨 들어온 산뜻한 찬 공기며 발개진 코끝.

낙관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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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61 2 0 1 2016-12-23
서화(書畵)를 좋아하는 어떤 벗이 하루는 어느 골동점에서 추사(秋史)의 초서(草書) 병풍서(屛風書) 여덟 폭(幅)을 샀다. “나 오늘 좋은 병풍서 한 틀 샀네. 돌아다니면 있긴 있군!” 그 벗은 추사(秋史)의 병풍서를 구(求)하게 된 것이 자못 만족한 모양이다. “돈 많이 주었겠군. 추사의 것이면…….” “아아니 그리 비싸지도 않아. 글쎄 그게 단 오십 원이라니깐 그래.” 추사의 병풍서 한 틀에 오십 원이란 말은 아무리 헐하게 샀다고 하더라도 당치않게 헐한 값 같으므로,

일람치마 입은 여인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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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33 2 0 1 2016-12-23
초록 저고리에 일람 치마를 입은 30대의 한 젊은 여인이, 필시 그 동생이리라, 빨간 저고리에 노랑 치마를 입은 스물이 채 되었을까 한 색시의 손목을 채 지게 위에 모로 누었다. 일견(一見) 선전(鮮展)의 낙선작품(落選作品)임이 틀림없다. 색채에 가난한 이 효자동 골목의 한낮은 이 여인의 자태로 해서 자못 화려하다. 오고가는 사람마다 그 여인에게 한 번씩 시선을 아니 던지고 가는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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