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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서한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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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78 2 0 1 2016-12-26
바람이 살랑거리니 바깥보다는 방안이 한결 좋다. 밤의 방안은 더욱이 마음에 든다. 등하(燈下)에 책상을 기대앉으면 마음이 폭 가라앉는 것이 무엇인가를 자연히 사색케 한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는 말이 있거니와 등화(燈火)를 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 겨울밤인 듯싶다. 저녁을 치르고 일순의 산책이 있은 다음 불을 켜고 고요히 방안에 들어앉으면 내 마음은 항상 무엇에 그렇게 주렸는지 공허한 마음이 저도 모르게 그 무엇인가를 찾기에 바쁘다.

심덕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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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84 2 0 1 2016-12-26
소학교도 나오지 못한 아내를 가진 친구가 있다. 무식하면 첩경 그렇게 되기 쉬울 것이거니와 소중히 하여야 할 것과 헐하게 하여야 할 것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 연중(然中)에도 질색이라고 한다. 편지 같은 것이 문간에 떨어져도 그게 광고와 분간이 가지 못해서 혼동이 되기 때문에 중요 서류를 한 번은 분실하였기에 다음부턴 광고구 편지구 문간에 떨어진 종이쪽이면 무엇이든지 주어다가 애들의 손이 가지 않는 것에 간직해 두라고 일렀더니, 그 이튿날의 정성이 가관이더란다. 의장 설합을 통으로 하나 내어선 그걸 편지를 모으는 그릇으로 쓰는 모양으로, 저녁에 회사에서 돌아오니,

계란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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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19 2 0 1 2016-12-26
전차를 타면 자리에 앉기를 그리 즐기지 않는 나이었건만 그날은 몸이 좀 피곤해서 하차할 거리도 멀고 하여 자리를 엿보아 앉았다. 그러나 일단 앉고 보니 뉘 집 심부름아이인 듯한 열셋이나 그렇게 밖에는 안 되어 보일 계집애 하나가 무엇인지 꽤 무거워 보이는 보퉁이를 조심히 두 손으로 받쳐 가슴에다가 안고 내 옆에 서서 심히 거북해한다. 짐은 놓고서 있으면 그런 거북함만은 없을 것인데 그대로 들고만 서 있을 차빌 하는 걸 보면 필시 아무 데나 막 놓아서는 안 될 무슨 그런 중요한 것이 들어 있음이 틀림없었다. “너 여기 앉고 그 보퉁이는 무릎 위에다 놓아라.”

말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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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837 2 0 1 2016-12-26
한 사람이 말 세 필을 몬다. 구공탄 스무 상자를 실은 조랑말이다. 그걸 니리니리 연해 세워 놓고는 맨 앞의 말 하나만 고삐를 붙들고 뒤엣 말들은 욕으로 위협을 하여 가며 몬다. 하루의 일이 지리할 때도 된 석양인 데다 얼었다가 녹은 길은 어지간히 진 것이 아니다. 차바퀴가 푹푹 잠겨서 말들은 그것을 끌어내기에 있는 힘을 다하는 듯이 목들을 내저으며 터벅신다. 그래도 차부(車夫)는 말의 그 걸음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 염병을 하다가 자빠질…….” 중얼거리며 돌아서더니 냅다 악 소리를 지른다.

집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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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23 2 0 1 2016-12-26
집을 사는 것처럼 곤란한 게 없다. 무슨 모양이라든가, 허우대가 좋은 그리고 굉장한 집을 택하는 데서가 아니라 실용적인 것을 찾자니 오히려 그런 게 그리 어렵다. 달포를 두고 골라 보았어도 이렇다 눈에 드는 집이 나서질 않는다. 대가는 얼마든지 무작정하고 골라 보았으면 혹 있었을는지 몰라도 내가 견준 칸수의 집으로선 근 백채를 보아 왔어도 모두 그것이 그것 같은 것들이었다. 본시 내가 있던 집을 판 것도 그 때문이었거니와 사람의 거처를 위하여 지었다는 것보다는 한 개의 상품으로 그저 돈만을 염두에 두고 지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정도의 그러한 집들이었다.

손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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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13 2 0 1 2016-12-26
종이에 손을 베였다. 보던 책을 접어서 책꽂이 위에 던진다는 게 책꽂이 뒤로 넘어가는 것 같아 넘어가기 전에 그것을 붙잡으려 저도 모르게 냅다 나가는 손이 그만 책꽂이 위에 널려져 있던 원고지 조각의 가장자리에 힘껏 부딪쳐 스쳤던 모양이다. 선뜩하기에 보니 장손가락의 둘째 마디 위에 새빨간 피가 비죽이 스미어 나온다. 알알하고 아프다. 마음과 같이 아프다. 차라리 칼에 베였던들, 그리고 상처가 좀 더 크게 났던들, 마음조차야 이렇게 피를 보는 듯이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포도주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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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99 2 0 1 2016-12-23
하루는 어떤 벗으로부터 자친(慈親)이 회갑이니 저녁이라도 같이 먹으면서 하루저녁 이야기나 하자는 청을 받았다. 그 벗은 죽마의 고우일 뿐더러 벗의 자친 또한 나를 퍽이나 사랑하여 주시는 이로, 나는 반갑게 그러마고 승낙을 하였다. 그리고는 같은 청을 받은 역시 동향 친구인 한 사람의 동무와 같이 그 시각에 대여 가기로 하고 우리는 우선 진고개 백화점으로 향하여 나섰다. 이 갑파(甲婆)에게 무슨 기념이 될 만한 그러한 물건이 없을까 그것을 물색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백화점을 두루 돌아가며 찾아보아야 눈에 띄는 그럴듯한 물건이 없었다. 과자나 쟁반 같은 것은 어떠냐는 동무의 의견도 있었으나, 그런 것들은 그저 빈손이 뭣하여 들고 가는 보통 인사에 지나지 못하는 ..

이성을 보는 눈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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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24 2 0 1 2016-12-23
알지도 못하는 여인의 뺨을 전차 안에서 갈겼다. 서투른 운전수의 운전에 차체가 모로 쏠리어 비치는 몸을 진정시킨다는 게 그만 어떻게 되었던지 앞에 앉았던 젊은 여인의 뺨에 내 손은 힘차게 부딪치고야 배겨날 수 있었다.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하였으면 태도가 천연하여야 할 것인데, 그렇지를 못하다. 불쾌의 반증일까, 아픔을 못 참아서일까, 그렇지 않으면 사람 많은 데서 맞은 뺨이 부끄러워서일까? 마음이 놓이지를 못하여 다시 한번, “과(過)히 다쳤습니까?” 그러나 힐끗 쳐다볼 뿐, 말이 없다.

구두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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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40 2 0 1 2016-12-23
구두 수선을 주었더니 뒤축에다가 어지간히는 큰 징을 한 개씩 박아 놓았다. 보기가 흉해서 빼어 버리라고 하였더니, 그런 징이래야 한동안 신게 되고, 무엇이 어쩌구 하며 수다를 피는 소리가 듣기 싫어, 그대로 신기는 신었으나, 점잖지 못하게 저벅저벅 그 징이 땅바닥에 부딪치는 금속성 소리가 심히 귀맛에 역했다. 더욱이 시멘트 포도(鋪道)의 단단한 바닥에 부딪쳐 낼 때의 그 음향이란 정말 질색이었다. 또그닥또그닥, 이건 흡사 사람은 아닌 말발굽 소리다.

이역의 달밤 (한국문학전집: 강경애 14)

강경애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29 2 0 1 2016-12-22
이 밤의 교교한 월색은 여전히 나의 작은 몸뚱어리를 눈 위에 뚜렷이 던져 준다. 두 달 전에 저 달은 내 고향서 보았건만……? 이곳은 북국. 북국의 밤은 매우 차다. 저 달빛은 나의 뺨을 후려치는 듯 차다. 그리고 사나운 바람은 몰려오다가 전선과 나뭇가지에 걸려 휙휙 소리쳐 운다. 그 소리는 나의 가슴을 몹시도 흔들어준다. 때마침 어디서 들려오는 어린애 울음 소리…… 나는 문득 이런 노래가 생각난다. 이 밤에 어린애 우네 밤새껏 우네 아마 뉘 집 애기 빈 젖을 빠나부이 밤새워 빠나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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