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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사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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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12 2 0 1 2016-12-27
집 없는 사람에겐 봄과 가을처럼 서러운 시절이 없다. 간신히 집 한 칸을 얻어 들어 밑을 붙이고 삼동을 나게 되면 집이 팔렸으니 나가라, 그리하여 복덕방 순례를 또 하여 가며“가족이 간단하지요? 어린애 없지요? 단 내외분이어야 놓는다는 방은 있습니다.”하는 따위의 불유쾌한 이야기를 들어 가며 아이들이 있어도 없다 속이고 또 간신히 방 한 칸을 얻어 들고 여름을 나면 집이 팔렸으니 나가라 명령이다. 서울서 집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태반이 집으로 먹고 사는 장사치들이다.

애연사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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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09 2 0 1 2016-12-27
맛치고 담배 맛처럼 알뜰한 맛은 세상에 다시없을 것 같다. 내 생활에 있어 담배는 잊을 수 없는 하나의 벗이요, 또 좋은 스승이다. 몸이 피로하여졌을 때 담배를 한 대 피워 무는 맛이란 실로 애연가가 아니고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가까운 벗이 일찍이 이 담배 맛에서처럼 지친 심신에 위안을 준 적이 있을까. 한 대 피워 물고 고요히 앉아서 힘껏 한 모금을 들여 빨았다가 후- 내어쉬면 그 연기와 같이 피로도 몰려나와 공중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 같은 기분이 정신을 새롭게 해 준다.

문학과 건강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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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09 2 0 1 2016-12-27
저온(低溫) 생활을 하려니 일현(日鉉)이 생각이 가끔 난다. 그는 몇 해 전 내 시골 집에 머슴으로 있던 스물둘이든가, 아마 그러한 연령이었던 엄지럭 총각이었다. 백설이 펄펄 날리는 엄동에도 그는 구들에 불을 넣는 법이 없었다. 구들이 차면 병이 난다고 아무리 불을 넣고 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고 맨구들 위에다 그저 짚북데기를 약간 깔고는 그 위에서 그냥 잤다. 남의 집이라 혹 샛더미에 때마다 임의로 손을 대기가 어려워 그러지는 않을까 싶어 하루는 조부님이 이렇게도 말씀을 해 보았다.

실직기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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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41 2 0 1 2016-12-27
아침 여덟시 치는 소리를 그대로 이불 속에서 무시하고, 한껏 단잠에 취해도 출근에의 초조가 없어 좋다. 정성을 다하여 마음껏 일에 힘을 들여도 그 성의가 무시되는 데 불쾌함이 없어 좋고, 사사(私事)에 일을 쉬게 되는 주위의 사안(斜眼)에 미안을 느낄 필요가 없어 좋다. 자식들의 학비에 쪼들려도 실직을 빙자로 없다는 대답이 헐히 나와 좋고, 원고 아니 모이는 걱정, 책이 늦어질 걱정, 기사 쓸 걱정, 검열 걱정, 다 안 해도 좋다. 나는 이즘 산마(山馬)와 같이 마음이 자유를 행사한다.

침묵의 변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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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14 2 0 1 2016-12-27
억지로 못 할 건 글인가 보다. 테마의 준비만 되면 써질 것 같아도 마음의 안정과 시간의 여유가 없어도 붓은 내키지 않는다. 테마가 확정되고 마음의 안정에 시간의 여유까지 충분히 있어야 붓끝엔 흥이 실린다. 한 센텐스에 같은 부사가 곱잡아 하나만 연달리게 되어도 필흥(筆興)이 죽는 내 성벽(性癖)엔 원고 마감 기일이 박두하면 마음의 초조에 그 테마가 충분히 매만져지질 않는다. 적어도 그 기일을 4, 5일 쯤 앞두고 끝이 날 만한 예정의 시일이 내다보여야 마음이 턱 놓이고 붓이 들린다.

방서한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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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87 2 0 1 2016-12-26
바람이 살랑거리니 바깥보다는 방안이 한결 좋다. 밤의 방안은 더욱이 마음에 든다. 등하(燈下)에 책상을 기대앉으면 마음이 폭 가라앉는 것이 무엇인가를 자연히 사색케 한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는 말이 있거니와 등화(燈火)를 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 겨울밤인 듯싶다. 저녁을 치르고 일순의 산책이 있은 다음 불을 켜고 고요히 방안에 들어앉으면 내 마음은 항상 무엇에 그렇게 주렸는지 공허한 마음이 저도 모르게 그 무엇인가를 찾기에 바쁘다.

심덕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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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93 2 0 1 2016-12-26
소학교도 나오지 못한 아내를 가진 친구가 있다. 무식하면 첩경 그렇게 되기 쉬울 것이거니와 소중히 하여야 할 것과 헐하게 하여야 할 것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 연중(然中)에도 질색이라고 한다. 편지 같은 것이 문간에 떨어져도 그게 광고와 분간이 가지 못해서 혼동이 되기 때문에 중요 서류를 한 번은 분실하였기에 다음부턴 광고구 편지구 문간에 떨어진 종이쪽이면 무엇이든지 주어다가 애들의 손이 가지 않는 것에 간직해 두라고 일렀더니, 그 이튿날의 정성이 가관이더란다. 의장 설합을 통으로 하나 내어선 그걸 편지를 모으는 그릇으로 쓰는 모양으로, 저녁에 회사에서 돌아오니,

계란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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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29 2 0 1 2016-12-26
전차를 타면 자리에 앉기를 그리 즐기지 않는 나이었건만 그날은 몸이 좀 피곤해서 하차할 거리도 멀고 하여 자리를 엿보아 앉았다. 그러나 일단 앉고 보니 뉘 집 심부름아이인 듯한 열셋이나 그렇게 밖에는 안 되어 보일 계집애 하나가 무엇인지 꽤 무거워 보이는 보퉁이를 조심히 두 손으로 받쳐 가슴에다가 안고 내 옆에 서서 심히 거북해한다. 짐은 놓고서 있으면 그런 거북함만은 없을 것인데 그대로 들고만 서 있을 차빌 하는 걸 보면 필시 아무 데나 막 놓아서는 안 될 무슨 그런 중요한 것이 들어 있음이 틀림없었다. “너 여기 앉고 그 보퉁이는 무릎 위에다 놓아라.”

말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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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848 2 0 1 2016-12-26
한 사람이 말 세 필을 몬다. 구공탄 스무 상자를 실은 조랑말이다. 그걸 니리니리 연해 세워 놓고는 맨 앞의 말 하나만 고삐를 붙들고 뒤엣 말들은 욕으로 위협을 하여 가며 몬다. 하루의 일이 지리할 때도 된 석양인 데다 얼었다가 녹은 길은 어지간히 진 것이 아니다. 차바퀴가 푹푹 잠겨서 말들은 그것을 끌어내기에 있는 힘을 다하는 듯이 목들을 내저으며 터벅신다. 그래도 차부(車夫)는 말의 그 걸음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 염병을 하다가 자빠질…….” 중얼거리며 돌아서더니 냅다 악 소리를 지른다.

집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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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32 2 0 1 2016-12-26
집을 사는 것처럼 곤란한 게 없다. 무슨 모양이라든가, 허우대가 좋은 그리고 굉장한 집을 택하는 데서가 아니라 실용적인 것을 찾자니 오히려 그런 게 그리 어렵다. 달포를 두고 골라 보았어도 이렇다 눈에 드는 집이 나서질 않는다. 대가는 얼마든지 무작정하고 골라 보았으면 혹 있었을는지 몰라도 내가 견준 칸수의 집으로선 근 백채를 보아 왔어도 모두 그것이 그것 같은 것들이었다. 본시 내가 있던 집을 판 것도 그 때문이었거니와 사람의 거처를 위하여 지었다는 것보다는 한 개의 상품으로 그저 돈만을 염두에 두고 지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정도의 그러한 집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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