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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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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978 2 0 1 2016-12-30
취미에 따라서 제각기 다르기는 할 것이로되 여름 과실로는 아무래도 수박이 왕좌(王座)를 차지해야 할 것이다. 맛으로 친다 해도 수박이 참외나 다른 그 어떤 과실에 질 배 없겠으나 그 생긴 품위로 해서라도 참외나 그런 그 어떤 다른 과실이 수박을 따를 수 없을 것이다. 그 중후한 몸집에 대모(玳瑁)무늬의 엄숙하고 점잖은 빛깔이 우선 교양과 덕을 높이 쌓은 차림새 같은 그러한 고상한 인상을 주거니와, 감미한 맛을 새빨갛게 가득히 지닌 그 속심은 이 교양과 덕의 상징이라 아니 볼 수 없다.

전승지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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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197 2 0 1 2016-12-30
파리와 싸운다. 밥상을 들여다 놓으면 뚜껑을 열기가 바쁘게 달려들어 먼저 맛을 보며 돌아가는 놈이 파리다. 불결한 배설을 정한 데 없이 아무 데나 되는대로 갈겨 내는 놈이 또 파리다. 그러나 이런 것들쯤은 그대도 괜찮다. 책을 들고 누운 얼굴 위에 날아 들어 자꾸만 피부를 간질이며 방해를 하는 때처럼 미운 것은 없다. 시인 하이네는 바로 죽기 직전에 사랑하는 애인을 가리켜 “나의 파리여!”하고 불렀다거니와, 병석에 누운 자기의 주위를 떠나지 않고 언제나 빙잉빙 돌아가는 것이 마치 파리와 같아서 그렇게 불렀는지 어쨌든 애인을 파리라고 불렀다니 이 시인은 파리가 그처럼 좋았을까. 파리일레 책과의 친밀히 알뜰히 이어지지 못하고 모처럼 가라앉혀 책속에 파묻힌 정신..

여름의 미각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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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36 2 0 1 2016-12-30
여름은 채소를 먹을 수 있어 좋다. 시금치, 쑥갓, 쌈, 얼마나 미각을 돋우는 대상인가. 새파란 기름이 튀여지게 살진 싱싱한 이파리를 마늘장에 꾹 찍어 아구아구 씹는 맛 더욱이 그것이 찬밥일 때에는 더할 수 없는 진미가 혀끝에 일층 돋운다. 그러나 같은 쌈, 같은 쑥갓이로되, 서울의 그것은 흐뭇이 마음을 당기는 것이 아니다. 팔기 위하여 다량으로 뜯어다 쌓고 며칠씩이나 묵혀 가며 시들음 방지(防止)로 물을 뿌려선 그 빛을 낸다. 여기 미각이 동할 리 없다.

조어찬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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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02 2 0 1 2016-12-30
나는 낚시질를 좋아한다. 지금도 내가 만일 고향에 있는 몸이라면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이 바로 송가포반(宋哥浦畔)의 그 소위 ‘섬배미뚝’이라는 갈밭 속 회돌아진 모롱고지의 애기버들 밑에 한가히 풀방석을 깔고 앉아 바람 좇아 굽이치는 물결 위에 자리를 못 잡는 낚시 깃의 동정에서 고깃쩔을 찾아 내려고 온 정신을 시선에 모으고 있을 그러한 시간에 틀림없을 게다. 한여름의 한낮 볕이 지글지글 내려 눌러, 개구리조차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죽은 듯이 두 다리를 쭉 뻐드러지고 물 위에 두웅둥 떠도는 그러한 더위인데도 이때만은 더운 줄을 모른다.

고독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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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15 2 0 1 2016-12-27
작가 생활에 있어 여행이 지극히 필요한 줄은 알면서도 나는 여행에 취미를 그토록 느끼지 못한다. 그리하여 특수한 사정으로서가 아닌 한에선 우금(于今)껏 여행을 위한 여행이란 단 한 번도 가져 본 일이 없다. 고독이 찰지게 두고 스며들 때에는 여행이라도 하여 보면, 시원할 듯이 문득 생각은 되면서도 차마 그것을 실행하여 그 찰지게 파고드는 고독을 아주 잊고 싶지는 않다. 고독이란 그 무슨 진리를 담은 껍데기 같게도 생각이 되면서 나를 버리지 않고 따르는 그 고독이 차라리 반갑게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원자탄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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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45 2 0 1 2016-12-27
무어라고 따집을 수 없는 허전한 마음이 나를 늘 헌책전으로 끌어낸다. 이 마음의 요구엔 아무리 친한 벗도 응할 자격이 없고, 아무리 맛나는 음식, 아무리 재미나는 오락도 인연이 멀었다. 먼지 앉고, 곰팡내 나는 그 어느 책 속에서 활자를 셈으로만이 그저 요구의 대상일 것 같아, 벗에서나, 음식에서나, 오락에서나 마찬가지로 역시 속아는 오면서도, 그래도 제일 신용이 있음직해서, 속아도 속아도 나는 이 헌책전의 유혹에만은 벗어나지 못한다.

차가사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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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17 2 0 1 2016-12-27
집 없는 사람에겐 봄과 가을처럼 서러운 시절이 없다. 간신히 집 한 칸을 얻어 들어 밑을 붙이고 삼동을 나게 되면 집이 팔렸으니 나가라, 그리하여 복덕방 순례를 또 하여 가며“가족이 간단하지요? 어린애 없지요? 단 내외분이어야 놓는다는 방은 있습니다.”하는 따위의 불유쾌한 이야기를 들어 가며 아이들이 있어도 없다 속이고 또 간신히 방 한 칸을 얻어 들고 여름을 나면 집이 팔렸으니 나가라 명령이다. 서울서 집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태반이 집으로 먹고 사는 장사치들이다.

애연사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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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14 2 0 1 2016-12-27
맛치고 담배 맛처럼 알뜰한 맛은 세상에 다시없을 것 같다. 내 생활에 있어 담배는 잊을 수 없는 하나의 벗이요, 또 좋은 스승이다. 몸이 피로하여졌을 때 담배를 한 대 피워 무는 맛이란 실로 애연가가 아니고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가까운 벗이 일찍이 이 담배 맛에서처럼 지친 심신에 위안을 준 적이 있을까. 한 대 피워 물고 고요히 앉아서 힘껏 한 모금을 들여 빨았다가 후- 내어쉬면 그 연기와 같이 피로도 몰려나와 공중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 같은 기분이 정신을 새롭게 해 준다.

문학과 건강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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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13 2 0 1 2016-12-27
저온(低溫) 생활을 하려니 일현(日鉉)이 생각이 가끔 난다. 그는 몇 해 전 내 시골 집에 머슴으로 있던 스물둘이든가, 아마 그러한 연령이었던 엄지럭 총각이었다. 백설이 펄펄 날리는 엄동에도 그는 구들에 불을 넣는 법이 없었다. 구들이 차면 병이 난다고 아무리 불을 넣고 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고 맨구들 위에다 그저 짚북데기를 약간 깔고는 그 위에서 그냥 잤다. 남의 집이라 혹 샛더미에 때마다 임의로 손을 대기가 어려워 그러지는 않을까 싶어 하루는 조부님이 이렇게도 말씀을 해 보았다.

실직기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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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48 2 0 1 2016-12-27
아침 여덟시 치는 소리를 그대로 이불 속에서 무시하고, 한껏 단잠에 취해도 출근에의 초조가 없어 좋다. 정성을 다하여 마음껏 일에 힘을 들여도 그 성의가 무시되는 데 불쾌함이 없어 좋고, 사사(私事)에 일을 쉬게 되는 주위의 사안(斜眼)에 미안을 느낄 필요가 없어 좋다. 자식들의 학비에 쪼들려도 실직을 빙자로 없다는 대답이 헐히 나와 좋고, 원고 아니 모이는 걱정, 책이 늦어질 걱정, 기사 쓸 걱정, 검열 걱정, 다 안 해도 좋다. 나는 이즘 산마(山馬)와 같이 마음이 자유를 행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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