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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 일일 (한국문학전집: 계용묵 30)

정릉의 산 속은 새소리 없이도 푸르다. 물소리만이 그저 솨아솨 골짜기마다 들릴 뿐인데 산은 푸르렀다. 새소리를 무시하고도 정기만으로 푸르른 그 기개만은 장하다 아니 할 수 없으나 적어도 이만한 녹음이라면 꾀꼬리 소리 한마디 들을 수 없음이 무색하구나. 내 본래 산이나 바다의 취미를 모르거니와 오늘 내가 정릉의 녹음을 찾게 된 것도 무슨 이런 녹음의 유혹에서가 아니요, 사우(社友)들의 종용에 마지못해 따라 나섰던 길이니 그까짓 녹음이야 짙었던, 말았던 꾀꼬리야 울던, 마던 어아(於我)에 하관(下關)이리오만 그래도 이 녹음에, 이 물소리라면 꾀꼬리 소리 한마디쯤은 있어야 면목이 설 것 아닌가. 어쩌다 오다가다 숲 속을 다녀가는 밀화부리 소리 한마디 들을 수 없다.
정릉의 산 속은 새소리 없이도 푸르다. 물소리만이 그저 솨아솨 골짜기마다 들릴 뿐인데 산은 푸르렀다. 새소리를 무시하고도 정기만으로 푸르른 그 기개만은 장하다 아니 할 수 없으나 적어도 이만한 녹음이라면 꾀꼬리 소리 한마디 들을 수 없음이 무색하구나.

내 본래 산이나 바다의 취미를 모르거니와 오늘 내가 정릉의 녹음을 찾게 된 것도 무슨 이런 녹음의 유혹에서가 아니요, 사우(社友)들의 종용에 마지못해 따라 나섰던 길이니 그까짓 녹음이야 짙었던, 말았던 꾀꼬리야 울던, 마던 어아(於我)에 하관(下關)이리오만 그래도 이 녹음에, 이 물소리라면 꾀꼬리 소리 한마디쯤은 있어야 면목이 설 것 아닌가. 어쩌다 오다가다 숲 속을 다녀가는 밀화부리 소리 한마디 들을 수 없다.
정치나 이념을 자제하고 또한 계몽적이지 않은 순수 문학을 지향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평안북도 선천군 출신이며 본관은 수안(送安)이고 아호(雅號)는 우서(雨西)이다.

그는 평안북도 선천의 대지주 집안에서 아버지 계항교(桂恒敎)의 1남 3녀 중 첫째로 출생하였다. 계용묵 그의 할아버지인 계창전(桂昌琠)은 조선 말기에 참봉을 지냈다. 아울러 계용묵에게는 이복 여동생이 3명 있었다.

삼봉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서울로 상경하여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다녔지만, 할아버지 계창전에 의해 강제로 고향으로 끌려갔다. 성인이 된 뒤 그는 청년기에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았다.

뒤늦게 일본으로 유학, 도요 대학교 철학과를 다니기도 했다.

1920년 《새소리》이라는 소년 잡지에 《글방이 깨어져》라는 습작 소설을 발표하여 소설가로 첫 등단하였고 1925년 《생장》이라는 잡지에 《부처님 검님 봄이 왔네》라는 시를 발표하여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1927년 《상환》을 《조선문단》에 발표하여 본격 소설가 등단하였다. 《최서방》, 《인두지주》 등 현실적이고 경향적인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이후 약 10여년 가까이 절필하였다. 한때 그는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1935년 인간의 애욕과 물욕을 그린 《백치 아다다》를 발표하면서부터 순수문학을 지향하였고 1942년 수필가로도 등단하였다.

비교적 작품을 많이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묘사가 정교하여 단편 소설에서는 압축된 정교미를 잘 보여주었다. 대표작으로 《병풍 속에 그린 닭》,《상아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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