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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국인의 교양 (한국문학전집: 김교신 10)

병상에 있는 형제에게 위로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 병이 무의미한 일이 아닐 것을 설명하여 보았다. 그 영을 깊게 하기 위함이라, 깨끗이 하기 위함이라, 내세의 소식을 확연히 하기 위함이라 하여 참으라 감사하라고. 그러나 성의(聖意)에 마땅하옵거든 하루속히 회복하여지이다는 것이 우리의 더 절실한 기원이었다. 병자 자신의 초조한 생각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특히 해를 바꾸고 다시 바꾸는 지리한 병자를 위로할 힘이 우리에게 갈핍(渴乏)함을 느낄 때가 한두 번만 아니었다.
병상에 있는 형제에게 위로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 병이 무의미한 일이 아닐 것을 설명하여 보았다. 그 영을 깊게 하기 위함이라, 깨끗이 하기 위함이라, 내세의 소식을 확연히 하기 위함이라 하여 참으라 감사하라고. 그러나 성의(聖意)에 마땅하옵거든 하루속히 회복하여지이다는 것이 우리의 더 절실한 기원이었다. 병자 자신의 초조한 생각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특히 해를 바꾸고 다시 바꾸는 지리한 병자를 위로할 힘이 우리에게 갈핍(渴乏)함을 느낄 때가 한두 번만 아니었다.
순수한 ‘조선산 그리스도교’를 수립하고 교회에 매달린 교조적 신앙이 아닌 조선민족의 그리스도교를 뿌리내리는 무교회주의 신앙을 주장했다. 그의 신앙은 개인적 구제의 차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조선인 그리스도교도로서 시대의식을 명확히 지니고 조선민족의 구제와 조국 독립에까지 확대되었다. 일본 도쿄 세이소쿠 영어학교에 다니던 중, 동양선교회 성서학원 학생의 노방전도를 통해 그리스도교를 접했다. 일본 무교회운동을 창시한 우치무라 간조를 만나 성서연구회 일원이 되면서 신앙적 토대를 쌓아 갔다. 1927년 귀국, 교사가 되어 학생들에게 독립정신과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민족주의적 교육을 일관했다. 월간 종교잡지 <성서조선>을 발행하고 1930년 6월부터 가정집회 형식으로 약 10년간 성서연구회를 주도했다. 창씨개명,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동포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참된 정신과 독립정신을 계몽하다가 발진티푸스에 감염되어 1945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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