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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비평과 이데올로기 (한국문학전집: 김동인 10)

작년 가을 朝鮮日報[조선일보] 지면상에서 ‘批評界[비평계]의 SOS’라 하는 제목으로 몇 사람이 붓을 잡은 것을 본 기억이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때 지면상에 나타났던 모든 SOS도 엄정한 의미 아래서 비판적으로 생겨난 SOS가 아니고 일부 작가들이 일부 소위 비평가에게 욕을 먹고 그 불쾌감 때문에 토한 한때의 분풀이에 지나지 못하였다. 조선의 문예계에 던져진 소위 비평이라는 것을 엄정하게 비판하고 문예비평의 본질을 논하여, SOS를 부르짖은 것은 없었다고 기억한다.
작년 가을 朝鮮日報[조선일보] 지면상에서 ‘批評界[비평계]의 SOS’라 하는 제목으로 몇 사람이 붓을 잡은 것을 본 기억이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때 지면상에 나타났던 모든 SOS도 엄정한 의미 아래서 비판적으로 생겨난 SOS가 아니고 일부 작가들이 일부 소위 비평가에게 욕을 먹고 그 불쾌감 때문에 토한 한때의 분풀이에 지나지 못하였다.
조선의 문예계에 던져진 소위 비평이라는 것을 엄정하게 비판하고 문예비평의 본질을 논하여, SOS를 부르짖은 것은 없었다고 기억한다.
김동인(金東仁, 일본식 이름: 東 文仁 히가시 후미히토 / 金東文仁 가네히가시 후미히토, 1900년 10월 2일 ~ 1951년 1월 5일)은 일제 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대한민국의 소설가, 문학평론가, 시인, 언론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仁), 춘사(春士), 만덕(萬德), 시어딤이다.

1919년의 2.8 독립 선언과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소설,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였고,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친일 전향 의혹이 있다. 해방 후에는 이광수를 제명하려는 문단과 갈등을 빚다가 1946년 우파 문인들을 규합하여 전조선문필가협회를 결성하였다. 생애 후반에는 불면증, 우울증, 중풍 등에 시달리다가 한국 전쟁 중 죽었다.

평론과 풍자에 능하였으며 한때 문인은 글만 써야된다는 신념을 갖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나타난 자유 연애와 여성 해방 운동을 반대, 비판하기도 하였다. 현대적인 문체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필명은 김만덕, 시어딤, 김시어딤, 금동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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