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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의 흥분 (한국문학전집: 김교신 12)

얼마 전에 우리 친구 중 한 사람을 교사로 초빙할 터이니 주선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는 나 단독의 의견으로 여러 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초빙하려거든 이러한 조건으로 하라고. 거기 대한 회답의 일구(一句)가 "다소 흥분한 중에 쓴 글 같아서 도시 개의치 않았다’는 의미였다. 나는 이 일구에 이르러 등에 식은땀이 흐름을 깨달았다. 나이로 보아서도 이편이 일일(一日)의장(長)이 있고, 학력으로 보아서도 저편이 후배인 처지인데 저편은 냉정하고 침착하기 어른 같은데 이편은 열정이요, 흥분하기 어린이 같은 것이 발각된까닭이다. 적발되고 보니 과연 "다소의 흥분’만이 아니라, 다대한 흥분이었다.
얼마 전에 우리 친구 중 한 사람을 교사로 초빙할 터이니 주선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는 나 단독의 의견으로 여러 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초빙하려거든 이러한 조건으로 하라고. 거기 대한 회답의 일구(一句)가 "다소 흥분한 중에 쓴 글 같아서 도시 개의치 않았다’는 의미였다. 나는 이 일구에 이르러 등에 식은땀이 흐름을 깨달았다. 나이로 보아서도 이편이 일일(一日)의장(長)이 있고, 학력으로 보아서도 저편이 후배인 처지인데 저편은 냉정하고 침착하기 어른 같은데 이편은 열정이요, 흥분하기 어린이 같은 것이 발각된까닭이다. 적발되고 보니 과연 "다소의 흥분’만이 아니라, 다대한 흥분이었다.
순수한 ‘조선산 그리스도교’를 수립하고 교회에 매달린 교조적 신앙이 아닌 조선민족의 그리스도교를 뿌리내리는 무교회주의 신앙을 주장했다. 그의 신앙은 개인적 구제의 차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조선인 그리스도교도로서 시대의식을 명확히 지니고 조선민족의 구제와 조국 독립에까지 확대되었다. 일본 도쿄 세이소쿠 영어학교에 다니던 중, 동양선교회 성서학원 학생의 노방전도를 통해 그리스도교를 접했다. 일본 무교회운동을 창시한 우치무라 간조를 만나 성서연구회 일원이 되면서 신앙적 토대를 쌓아 갔다. 1927년 귀국, 교사가 되어 학생들에게 독립정신과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민족주의적 교육을 일관했다. 월간 종교잡지 <성서조선>을 발행하고 1930년 6월부터 가정집회 형식으로 약 10년간 성서연구회를 주도했다. 창씨개명,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동포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참된 정신과 독립정신을 계몽하다가 발진티푸스에 감염되어 1945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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