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1772

광 (한국문학전집 439)

권환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12 2 0 26 2016-07-29
애소(隘少)하고 침음(沈陰)한 실내 5·6촉밖에 안되는 전등이 높게 걸려있다. 전등 밑에는 소형의 책상 하나 그 위에는 장부같은 몇 권, 또 좌종 시계 하나 있어, 고요한 밤에 혼자 째깍거리고 있다. 방 안구석에 순옥이가 머리 위에 바느질 상자를 두고, 치마 입은 채, 이불도 없이 우제와 같이 잔다. 밖에서는 늦은 가을 바람 부는 소리가 가끔 우루우루 들린다. 덕세가 낡은 양복을 입고, 공포한 얼굴로 숨을 헐떡거리며 무대 좌편에 있는 대문 앞으로 뛰어온다. 덕세 (대문을 당겨보다가, 뚜드리며) 여보. 여보. 순옥 (무답) 덕세 (앞뒤를 도라보며, 황급하게) 여보. 순옥씨. 순옥씨. 문 좀 열어주오. 응. 문 좀 열어주어! 순옥 (무답) 덕세 여보. 순옥씨. 내 ..

다시는 안보겠소 (한국문학전집 422)

이익상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405 2 0 46 2016-07-28
영배(榮培)의 아내가 해산을 마치고, 산파도 아이를 목욕시켜놓은 뒤에 다른 데로 또 해산을 보러 갔다. 집안은 난리를 치른 뒤처럼 허청했다. 영배는 마루에서 부채를 부치고 앉았다. 그 아내는 방에 모기장을 치고 갓난아이를 곁에 누이고 드러누웠다. 해는 떨어지려면 아직도 두 시간이나 남았다. 그러나 모기장을 벌써 친 것은 파리가 너무나 꼬인 까닭에, 그것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영배는 그 안날 아침부터 오늘 낮까지 하루 동안 지낸 일이 꿈결 같았다. 그의 아내가 아이를 밴 뒤로부터 칠팔 개월 동안을 두고, 그는 매일처럼 여자의 해산에 대하여 호기심과 공포심을 아니 품은 적은 없었다. 여러 가지로 상상할 수 있는 데까지 상상해보았다. 자기가 자기를 의식하고, 자기 역시 어..

나는 보아 잘 안다 (한국문학전집 423)

이무영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302 2 0 45 2016-07-28
그가 나를 두고 간 지가 벌써 석 달이 차고 네가 세월의 빠름을 한탄한 것처럼 내가 너를 두고 마을께 공동묘지로 온 지가 오늘째 석 달 사흘이다. 사흘하고도 두 시간, 두 시간하고도 이십분이나 지났구나. 사람처럼 간사한 것이 없다는 것을 요새 와서 새삼스러이 깨닫는다. 내나 네나 우리가 서로 갈라서기만 하면 둘이 다 따라 죽거나 실진을 하리라고 생각한 우리였건마는 이렇게 이별을 한 오늘날에 너는 너대로 나는 또 나대로 살고 있구나.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그리고 목숨도 다함께 가지고 굳게 맹세한 우리건마는 언제 그런 맹세를 했더냐 싶게 너는 너대로 먹고 너대로 입고 너대로 살고 있지 않느냐? 아니 나도 마찬가지다. 네가 먹을 때에는 나도 먹었고, 네가 입을 때는 나도 ..

해후 (한국문학전집 424)

채만식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279 2 0 44 2016-07-28
마지막으로 라디오의 지하선을 비끄러매놓고 나니, 그럭저럭 대강 다 정돈은 된 것 같았다. 책장과 책상과 이불 봇짐에, 트렁크니 행담 등속을 말고도, 양복장이야 사진틀이야 족자야 라디오 세트야, 하숙 홀아비의 세간 치고는 꽤 부푼 세간이었다. 그것을 주섬주섬 뒤범벅으로 떠싣고 와서는, 전대로 다시 챙긴다, 적당히 벌여놓는다 하느라니, 언제나 이사를 할 적이면 그러하듯이, 한동안 매달려서 골몰해야 했다. 잠착하여 시간과 더불어 오래도록 잊었던 담배를 비로소 푸욱신 붙여 물고 맛있이 내뿜으면서, 방 한가운데에 가 우뚝 선 채, 휘휘 한 바퀴 돌아보았다. 칸반이라지만 집 칸살이 커서 웬만한 이칸보다도 나았다. 웃목으로 책장과 양복장을 들여세우고, 머리맡으로 책상을..

가락지 (한국문학전집 425)

이무영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16 2 0 58 2016-07-28
두루마기에‘도리우찌’(鳥打[조타])라고 불리어지던 캡을 쓰고 돈이라야 30원도 못 되는 것을 가지고 일본 유학의 길을 떠났었고 보니 정말 무모한 짓이다. 가면 어떻게든지 되려니 해서였지만 이 ‘어떻게든지’라는 것부터가 실로 비과학적인 이야기다. 그래도 나는 조금도 불안이 없이, 마치 적진을 쳐들어가는 장군처럼 대담했었다. 30전씩이나 하는 ‘벤또’라는 것도 용감하니 턱턱 사먹었고, 캐러멜도 5전짜리가 아니라 10전에 스무개짜리를 샀었다. 30원이라는 큰돈을 처음 쥐어보는 내게는 5전짜리 호떡이 6천개나 되는지라, 일종의 천문학적 숫자처럼 여겨졌던 모양이다. 30여 년 전 내가 열일곱 살 때 이야기다. 왕년의 ‘곰보 피처’가 중학 동창이었던지라, 그 김 군 ..

이목구비 (한국문학전집 419)

정지용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246 2 0 1 2016-07-27
사나운 김승일수록 코로 맡는 힘이 날카로워 우리가 아모런 냄새도 찾어내지 못할적에도 쉐퍼 ― 드란 놈은 별안간 씩씩거리며 제꼬리를 제가 물고 뺑뺑이를 치다시피하며 땅을 호비어 파며 짖으며 달리며 하는 꼴을 보면 워낙 길들은 김승일지라도 지겹고 무서운 생각이 든다. 이상스럽게는 눈에 보히지 아니하는 도적을 맡어내는 것이다. 서령 도적이기로서니 도적놈 냄새가 따로 있을게야 있느냐 말이다. 딴 골목에서 제홀로 꼬리를 치는 암놈의 냄새를 만나도 보기 전에 맡아내며 설레고 낑낑거린다면 그것은 혹시 몰라 그럴사한 일이니 견주어 말하기에 禮답지 못하나마 사람끼리에도 그만한 후각은 說明할 수 있지 아니한가.

자식 (한국문학전집 420)

계용묵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269 2 0 1 2016-07-27
장맛비는 그대로 초록 기름인 듯하다. 연 닷새를 거푸 맞고 난 볏모는 떡잎에까지 새파란 물이 들었다. 꽂아놓고는 물을 대지 못해 뿌리도 못 박고 샛노랗게 말라들던 볏모였다. 돌보기조차 싫어 내키지 않던 논틀을 날이 들자 부터는 잊는 법이 없이 저녁마다 한 바퀴씩 돌아 들어오는 것이 주사의 유일한 취미였다. 보면 볼 때마다 다르게 싱싱 자라 오르는 기름진 꾀기였다.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다. 만득으로 둔 아들 명호의 거처에 늘 마음이 떠나보지 못하듯, 연연한 것이 놓이고, 들에 나가면 이지러진 데 없는 볏모를 보아야 마음이 가뜬하다. 명호가 아이들과 싸우는 거시 아닐까? 들고 날 때마다 엇바뀌는 생각이었다. 오늘은 논귀에는 기어이 이상이 있었다.

채색교 (한국문학전집 421)

백신애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240 2 0 32 2016-07-27
무지개 섰네, 다리놨네. 일곱 가지 채색으로 저 공중에 높이 놨네 뒤뜰에서 어린 학도들이 무지개가 선 공중을 바라보며 놀고 있다. 천돌이(千乭伊)는 무거움 짐을 문턱에 내려놓고 "제-길, 그놈의 하늘." 하고 동편 하늘 높이 무지개가 놓인 것을 원망스럽게 쳐다보며 혀를 찼다. "그 놈의 비가 오려거든 솰솰 와 버리든지, 오기 싫거든 그만 쨍쨍 가물어 버리든지." 하며 부엌에서 늙은 어머니가 튀어나오며 무지개가 선 하늘을 역시 원망하는 것이었다. "벌써 두 상이나 터지게 되니 어디 살 수 있겠소." 천돌이는 콧구멍만한 방에다 짐 뭉치를 끌고 들어갔다.

마부 (한국문학전집 414)

계용묵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250 2 0 1 2016-07-24
응팔은 한 손에 고삐를 잡은 채 말을 세우고 부러쥐었던 한 켠 손을 또 펴며 두 눈을 거기에 내려쏜다. 번쩍 하고 나타나는 오십 전짜리의 은전이 한 닢, 그것은 의연히 땀에 젖어, 손바닥 위에 놓여져 있는데, 얼마나 힘껏 부러쥐었던지 위로 닿았던 두 손가락의 한복판에 동고랗게 난 돈 자리가 좀처럼 사라지질 않는다. 이것을 본 응팔은 그 손질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이제야 겨우 발이 잡히기 시작하는 거치른 수염 속에 검푸른 입술을 무겁게 놀리며, ‘제 제레 이 이렇게 까 깎 부러쥈는 데야 어디루 빠 빠져나가?’ 하고 돈을 잃지 않은 자기의 지능을 스스로 칭찬하고 만족해하는 미소를 빙그레 짓는다.

산돼지 (한국문학전집 415)

김우진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496 2 0 1 2016-07-25
<산돼지>는 친구 조명희의 시 <봄 잔디밭 위에>에서 암시를 얻어 쓴 작품으로, 좌절당한 젊은이의 고뇌와 방황을 음울하게 그리고 있다. 특히, 그의 사상인 사회개혁을 잘 보여주며, 지극히 몽환적으로 끌고간 것이 특징이다. 그가 이 작품을 가리켜 자신의 ‘생의 행진곡’이라고 고백했듯이, 개화지식인의 임상보고서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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