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1767

십삼원 (한국문학전집 403)

최서해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38 2 0 55 2016-07-19
유원이는 자려고 불을 껐다. 유리창으로 흘러드는 훤한 전등빛에 실내는 달밤 같다. 그는 옷도 벗지 않고 그냥 이불 위에 아무렇게나 누웠다. 그러나 온갖 사념에 머리가 뜨거운 그는 졸음이 오지 않았다. 이리 궁글 저리 궁글하였다. 등에는 진땀이 뿌직뿌직 돋고 속에서는 번열이 난다. 이때에 건넌방에 있는 H가 편지를 가져왔다. 편지를 받은 유원이는 껐던 전등을 다시 켰다. 피봉을 뜯는 그의 가슴은 두근두근 울렁거렸다. 무슨 알지 못할 큰 걱정이 장차 앞에 닥쳐오려는 사람의 심리 같았다. 그리 짧지 않은 편지를 잠잠히 보던 그는 힘없이 편지를 자리 위에 던지고 왼팔을 구부려 손바닥으로 머리를 괴고 또 이불 위에 눕는다.

탈출기 (한국문학전집 404)

최서해 | 도디드 | 600원 구매
0 0 288 2 0 54 2016-07-19
김군! 수삼 차 편지는 반갑게 받았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회답하지 못하였다. 물론 군의 충정에는 나도 감사를 드리지만 그 충정을 나는 받을 수 없다. ―---박군! 나는 군의 탈가(脫家)를 찬성할 수 없다. 음험한 이역에 늙은 어머니와 어린 처자를 버리고 나선 군의 행동을 나는 찬성할 수 없다. 박군! 돌아가라.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 군의 부모와 처자가 이역 노두에서 방황하는 것을 나는 눈앞에 보는 듯싶다. 그네들이 의지할 곳은 오직 군의 품밖에 없다. 군은 그네들을 구하여야 할 것이다. 군은 군의 가정에서 동량(棟樑)이다. 동량이 없는 집이 어디 있으랴? 조그마한 고통으로 집을 버리고 나선다는 것이 의지가 굳다는 박군으로서는 너무도 박약한 소위이다...

향수 (한국문학전집 405)

최서해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255 2 0 58 2016-07-19
먼 산은 푸른 안개에 윤곽이 아른하고 담 밑에 저녁연기가 솔솔자자 흐를 때였다. 추근한 땅 위에 부드럽게 내리는 이른 봄 궂은비는 고독한 나그네의 수심을 한껏 돋운다. 전등도 켜지 않은 방 미닫이를 반쯤 열어 놓고 컴컴한 황혼 속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는 나의 몸과 마음은 농후한 자줏빛 안개 속으로 점점 스러져 들어가는 듯하였다. 나는 눈을 감고 머리를 숙였다. 기름을 붓는 듯이 미끄럽게 들리는 빗소리, 삼라만상을 소리 없이 싸고 도는 으슥한 빛, 모든 것은 끝없는 솜같이 부드러운 설움을 휩싸서 여지없는 듯하다. 그 설움은 내 옷을 추근히 적시고 온 모공(毛孔)으로 살금살금 기어 들어서 혈관을 뚫고 붉은 피를 푸르게 물들여서 내 온몸을 안팎 할것없이 속속이 싸고 도는 ..

보석반지 (한국문학전집 406)

최서해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242 2 0 45 2016-07-19
좋든지 그르든지 또는 크든지 작든지 간에 한번 젊은 가슴을 애틋이 끓게 한 사실은 좀처럼 스러지지 않는다. 나는 그 눈을 몹시 쏘던 보석반지와 그 반지의 주인공인 혜경이를 내 기억이 있는 동안에는 잊을 것 같지 않다. 내가 지금 몸을 붙여 있는 이 최목사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온 지 벌써 삼 삭이나 되었다. 철없는 어린 것들을 가르치는 것은 그리 괴로울 것이 없으나 남의 지배 하에서 기계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젊은 나로서는 여간한 고통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있는 바요 또 어떠한 고통이든지 견디어 나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잘 깨달은 나는 모든 감정을 꿀꺽꿀꺽 참고 최목사의 명령대로 하여 왔다. 최목사는 금년 서른 한 살 되는 사람이다. 그는..

기아 (한국문학전집 407)

최서해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273 2 0 45 2016-07-19
“여보!” 서재에서 무엇을을 쓰던 최순호는 그 아내 경희의 부르는 소리에 붓을 멈추었다. “여보세요. 거기 계세요.” 남편의 대답이 늦으니까 재차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으스름한 초승달 빛이 소리 없이 흐르는 뜰을 지나 순호의 서재 방으로 올려 들어오는 그 소리는 몹시 거칠다. 그러자 뒤따라, “으아 엄마―.” 하는 어린애 울음소리가 처량히 들린다. “왜 그러우.” 순호는 아내의 소리에 맞장구를 치면서 ‘교의’에서 일어섰다. “이리 좀 나와요. 누가 애를 버리고 갔어요.” 그 소리는 날카롭게 순호의 신경을 찌르르 울렸다. 순호는 교의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순호는 아주 진중한 태도로 천천히 걸어서 밖으로 나간다.

조선미전단평 (한국문학전집 393)

권구현 | 도디드 | 900원 구매 | 300원 3일대여
0 0 414 2 0 75 2016-07-17
본문에 기초함에 있어 필자는 사도(斯道)에 전연 문외한이 아닌 관계상 다소의 자신과 흥미를 가진다. 그러나 평이란 것은 그 글자 자체가 이미 설명하는 바와 같이 어떠한 사견이나 주관을 떠나 제삼자적 입장에서 공정을 취하지 않아서는 아니 된다. 따라서 여기에는 그만한 수양과 포부를 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주저함을 마지않다가 이제 붓을 드는 바이다. 그리고 한가지 부언할 것은 제한된 지면 관계상 부득이 무감사급 특선품만을 위주 하겠으므로 기여(其餘)는 혹 주마간산격으로 경과할 지도 모른 다는 것이다.

고정된 시상 (한국문학전집 395)

권환 | 도디드 | 500원 구매 | 200원 5일대여
0 0 270 2 0 33 2016-07-17
예술 창조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어려운 것은 비속성과 현실성, 예술성과 비현실성의 엄격한 구별이다. 그것의 구별이 어렵고 무의식적 혼동이 너무도 쉬운데 예술가의 가장 큰 고민이 있다. 이것은 일반의 모든 예술, 또 예술가의 공통점이지만 그중에도 특히 시 또는 시인에 우심(尤甚)할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시단을 보면 왕년의 여러 가지 유파가 소이(小異)를 버리고 일치적으로 예술적인 길로 발전하고 있다. 이것은 정당한 경향이다. 시의 성장을 위한 당연한 발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보는 눈이 만일 흐리지 안었었다면 그 정당한 지향이 무의식적으로 예술성과 비현실성의 ‘용이한 혼동’을 초래 하지 안었는가 한다. 즉 ‘예술적’길을 급속도로 매진하는 동안에 어느덧..

농민문학의 제문제 (한국문학전집 396)

권환 | 도디드 | 900원 구매 | 500원 1일대여
0 0 256 2 0 20 2016-07-17
농민문학은 생산문학의 일부문으로 농민의 생산생활을 묘사하는 문학이다. 농민문학이니 물론 농민자신에 의하여 자기들의 생활을 표현한 것이 가장 진실하고 그것이 가장 , 이상적인 농민문학일 줄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히 그들은 아직 문화수준이 일반적으로 저하하여 문학적 교양과 기술을 가지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문학이라도 아직 그들의 손으로 제작하지 못하고, 혹 그들의 생활 속에서 부르는 농부가 등 같은 노래가 없는 것도 아니지마는 그것은 너무도 원시적이고, 또 그나마도 극히 빈약, 희귀하다.

목화와 콩 (한국문학전집 397)

권환 | 도디드 | 900원 구매 | 400원 1일대여
0 0 660 2 0 13 2016-07-17
내일 군청서 목화 심으러 “ 오우. 무엇을 심었든지 다 뽑아버리고 목화 심는다우” 동리 밖 느티나무 위에서 동리소임(洞里所任)의 외치는 소리가 초저녁 바람에 흘러서 흐릿하게 들린다. “뭐라고 웨는 소린가?” 두윤(斗允)이가 옆에 앉아 있는 정선달한테 물었다. “글쎄 내일 군청 사람들이 나와서 목화 안 심은 밭에 목화 심는다는 말 아니야. 감자나 콩이나 무엇을 심었든지 다 뽑아 버리고 목화 심는다는 말아니야. 그 소리야.” “응. 그 소리야. 아까 구장(區長)한테 들어서 벌써 알았어.” 등잔 밑에 누워서 이야기책 보던 재선(在善)이가 벌떡 일어났다. “아니 심어 논 곡식을 뽑아 버리고 목화를 심어!” “그러믄(그럼) 본래 군청서 심으란 걸 안 심었거든” “뭐..

속수인물화 강의 (한국문학전집 392)

권구현 | 도디드 | 900원 구매 | 300원 3일대여
0 0 291 2 0 44 2016-07-15
우주 만상 중에서 색상의 미는 물론이거니와 지(智), 정(情), 의(意)의 변화무궁한 점으로도 인간에 필적할 자 없습니다. 따라서 이 영묘(靈妙) 불가사의한 색상과 그 정서의 내용을 포착하여 이것을 예술적으로 구상화하기까지는 용이한 문제가 아닙니다. 장차 사도(斯道)에 들어와 연구를 해보면 알것이거니와 그럼으로 인물화의 묘법을 획득한 다음이면 기타의 제물상은 다소의 용심(用心)으로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는 여분의 설명은 생략하기로 하고 실제에 들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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