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1778

인형의 집을 나와서 (한국문학전집 387)

채만식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404 2 0 39 2016-07-12
노라는 지금으로부터 칠 년 전, 그의 나이 열아홉 살 되는 해에 변호사 현석준과 결혼을 하였다. 그때에 벌써 삼십이 넘은 장년의 남자인 현은 노라를 몹시 귀애하였다. 그는 ‘우리 종달새’니 ‘우리 다람쥐’니 하고 노라를 불렀다. 노라도 그를 극진히 사랑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결혼한 지 일년 남짓하여 첫아이 마리아를 낳던 해 현은 과로 끝에 중병이 들어 죽게 앓았다. 그 때문에 노라는 자기 친정아버지의 종신도 하지 못하였다. 그 뒤에 현의 병은 겨우 낫기는 하였으나 다만 병줄을 놓았을 뿐이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하였다. 현의 병을 정성껏 보아 주었고, 그런 뒤로부터 현 부부와 친숙하여져 줄곧 지금까지 흉허물없이 한 집안식구처럼 지내오게 된 병든 의사 남병희는 일본의..

저승길 (한국문학전집 378)

홍사용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417 2 0 29 2016-07-07
그 전 날 밤이다. 죽음을 맡아 가지고 다니는, 커다란 흑의사자(黑衣使者)가, 무거웁고 거북한 발을, 잠깐 멈추어, 음침스럽게 섰는 듯이, 어두운 밤에 싸인 병원집은, 옛날에 지겨웁고 구슬픈 죽음이 많았다. 이로는, 함춘원(含春園) 솔숲에 흐트러진 옷자락을 펄럭거리며, 끝 모르는 어둠 나라에서 꿈꾸는, 마음 약하고 몸 약한 불쌍한 무리를, 손짓해 부르는 듯하다. 한 어깨를 으쓱 틀어 출석거리며, 선술집의 굴접시처럼, 희멀뚱거리는 눈을, 두리번거리는 듯한 병원 지붕의 탑시계는, 어렴풋이 열한 점을 가리킨다. 어떻든, 밤도 흉물스러운 밤이요, 집도 음침스러운 집이다.

뺑덕이네 (한국문학전집 379)

홍사용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36 2 0 38 2016-07-07
앞집 명녀 “ (明女)는 도로 왔다지요.” “저의 아버지가 함경도까지 찾아 가서 데려오느라고 또 빚이 무척 졌다우.” “원 망할 계집애도…… 동백기름 값도 못 벌 년이지, 그게 무슨 기생이야. 해마다 몇 차례씩 괜히 왔다 갔다 지랄발광만 하니…….” “이번엔 그 데리고 갔던 절네 마누라가 너무 흉칙스러워서 그랬답니다. 같이 간 점순이 와 모두 되국놈한테로 팔아먹을 작정이었더래.” “저런…….” “그래 명녀 아버지가 찾아가니까 벌써 점순이는 어따가 팔아 버리고 절네 마누라는 어디로 뺑소니를 쳤더라는데…….” “저런, 세상에 몹쓸 년이 있나. 고 어린 것을……. 그래 저이 아버지는 그 소릴 듣고도 가만히 앉아만 있나?” “그럼 가만히 앉았지 어떡허우, 더구나 그 해보가…….”..

정총대 (한국문학전집 380)

홍사용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294 2 0 21 2016-07-07
“그래…… 어째 날더러…… 밤낮 술만 먹구…… 주정만 한다구? 음 그래 그렇게 말해야 옳단 말야……? 천하에 고약한 놈 같으니……. 제가 그래 동네 구장 좀 되기로서니…… 무슨 세도야…… 세도? 흥…… 나는 그 자식 보기 싫드라…… 아직 새파랗게 젊은 애가 대가리는 허옇게 시어 가지고……. 여보 주인 술내우 술내여. 어째 이 모양이여……. 그런데…… 시방 내가 뭐⎯ 랬겠다……? 오 옳지 그 신대가리가 나는 도무지 보기 싫어……. 제가 구장이면 그래 십 년 세도야…… 백 년 세도야! 무어 날더러 밤낮 술만 먹고 주정만 한다구……? 온 꼴같지 않아…… 무어바 ⎯ 루 제가…… 정총대선정전형위원(町總代選定詮衡委員)이라구?” “아니 그것은 어풍(御風) 형이 그렇게 곡해 만해서 들으..

회 (한국문학전집 376)

채만식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50 2 0 24 2016-07-05
한시반이 지나서야 차는 경성역에 닿는다. 중간에서 연해 더디 오는 북행을 기다려 엇갈리곤 하느라고 번번이 오래씩 충그리고 충그리고 하더니, 삼십 분이나 넘겨 이렇게 연착을 한다. 개성서 경성까지 원은 두 시간이 정한 제 시간이다. 그만 거리를 항용 삼십 분씩 사십 분씩은 늦기가 일쑤다. 요새는 직통열차고 구간열차고 모두가 시간을 안 지키기로 행습이 되었기 망정이지, 생각하면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바로 앞자리에 돌아앉았던 중스름한 양복신사 둘이가, 내릴 채비로 외투를 입노라 모자를 쓰노라 하면서, 역시 그런 이야기다. “등장 가얄까 보군!” 베레모자 신사가 혼잣말하듯 하는 소리고, 다른 국방복짜리는 마침 시계를 꺼내 보면서 “꼬옥 삼십오 분 꽈..

사호일단 (한국문학전집 377)

채만식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52 2 0 24 2016-07-05
잠깐 이야기가 끊기고. 모본단 보료를 깐 아랫목 문갑 앞으로, 사방침에 비스듬히 팔꿈치를 괴고 앉아서 주인 박(朴)주사는 펼쳐 든 조간신문을 제목을 훑는다. 잠잠한 채 방안은 쌍미닫이의, 납을 먹여 마노빛으로 연한 영창지가 화안 하니 아침 햇볕을 받아 눈이 부시게 밝고 쇄려하다. 주인 박주사는 방이 밝고 쇄려하듯이 사람도 또한 정갈하고 호사스런 의표와 더불어 신수가 두루 번화하다. 기름을 알맞추, 반듯이 왼편에서 갈라 빗은 짤막한 머리가 우선 단정하다. 마악 아침 소쇄를 하고 난 얼굴이 부윳이 희고 좋은 화색이다. 마흔여섯이라지만 갓 마흔에서 한두 살이 넘었다고 해도 곧이가 들리겠다. 코 밑으로 곱게 다듬어 세운 가뭇한 코밑수염이 한결 그러해 보인다. 아래..

바람은 그냥 불고 (한국문학전집 373)

계용묵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474 2 0 28 2016-07-05
산허리로 무심히 넘는 해를 등에다 지고 동쪽으로 길이 뻗은 신작로 위로 흘러내리는 오렌지빛 놀 속에 물들며 물들며 순이는 걷는다. 오늘 하루를 두고는 다시 오지 않을 이 해(年)의 마지막 넘어가는 저 해(日)가 인젠 아주 자기의 운명을 결단하여 주는 것만 같다. 저 해가 넘어가도 그이가 돌아오지 않으면 그이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그이다. 그럴진대 차라리 저 해와 함께 운명을 하고도 싶다. 저 해에 희망을 붙이고 살아오기 무릇 일 년이었다. 앞으로 기다릴 저 해가 아니었던들 자기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는지도 모른다. 생각을 하다가 순이는 또 문득 걸음을 세운다. 대체, 가면 어디까지 가자고 해도 넘어가는데 젊은 계집년이 무작정으로 이렇게 걸어만 가는 것인가..

물매미 (한국문학전집 374)

계용묵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464 2 0 27 2016-07-05
물매미 놀림은 역시 아침결보다 저녁결이 제 시절이다. 학교로 갈 때보다는 올 때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다. 아침에는 기웃거리기만 하다가 내빼던 놈들이, 돌아올 때면 그적에야 아주 제 세상인 듯이 발들을 콱 붙이고 돌라 붙는다. 오늘도 돈 천 원이나 사 놓게 된 것은 역시 오후 네 시가 지나서부터다. 지금도 어울려오던 한 패가 새로이 쭈욱 몰려들자, 물매미를 물에 띄운 양철 자배기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칸을 무수히 두고, 칸마다 번호를 써 넣은 그 번호와 꼭같은 번호를 역시 1에서 20까지 쭉 일렬로 건너쓴 종이 위에 아무렇게나 놓았던 미루꾸 갑을 집어들고, “자, 과잔 과자대루 사서 먹구두, 잘만 대서 나오면 미루꾸나, 호각이나, 건, 소청대루 그저 가져..

반점(한국문학전집 375)

채만식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31 2 0 14 2016-07-05
깊으련 하다가 채 못 깊고 새는 게 첫여름의 가냘픈 새벽이다. 밤은 대전역(大田驛) 그 근처서부터 벌써 동이 트더니, 호남선으로 선로가 갈려들어, 촌 정거장을 세넷 지나 K역을 거진 바라볼 무렵에는 연변의 농가에서 마침 연기가 겨루듯 솟아오르고, 두어 장 구름이 잠자던 동녘 수평선 위로 불그레 햇살이 퍼지기 시작한다. 차는 유축 없이 그대로 세차게 달리고…… 경희는 차창 앞으로 바투 다가앉아 눈에 들어오는 대로 바깥 풍경을 바라보기에 한동안 무심하다. 끝없이 퍼져나간 넓은 들이 창밖에서 커다랗게 회전을 한다. 들바닥에는 오늘도 날은 좋으려는지 엷은 안개가 조용히 잦아졌다. 잘 갈아서 잘 태운 마른갈이 논이 자꾸자꾸 잇대어 있는 사이사이로, 바다 ..

별을 헨다 (한국문학전집 372)

계용묵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59 2 0 43 2016-07-02
산도 상상봉 맨꼭대기에까지 추어올라 발뒤축을 돋워들고 있는 목을 다 내빼어도, 가로 놓인 앞산의 그 높은 봉은 눈 아래 정복하는 수가 없다. 하늘과 맞닿은 듯이 일망무제로 끝도 없이 빠안히 터진 바다, 산 너머 그 바다, 푸른 바다, 아아 그 바다 ! 그리운 바다. 다시 한번 발가락에 힘을 주어 지긋 뒤축을 들어본다. 금시 리가 자랐을 리 없다. 역시 눈앞에 우뚝 마주서는 그놈의 산봉우리. 「으아-」 소리나 넘겨보내도 가슴이 시원할 것같다. 목이 찢어져라 불러본다. 「으아-」 그러나 소리 또한 그 봉우리를 헤어넘지 못하고 중턱에 맞고는 저르릉 골 안을 쓸데도 없이 울리며 되돌아와 맞는 산울림이 켠 아래서 낙엽 긁기에 배 바쁜 어머니의 가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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