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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순례 경주 (한국문학전집 383)

7월 8일 아츰 경부선에 몸을 실리다. 행리로는 지팽이 하나 손가방 하나. 단출하고 가든하기 훨훨 날아갈 듯, 죽장망혜로 천리강산을 들어간다는 옛노래의 풍정과 심회도 이러하였으리라. 생각하면 여행다운 여행을 해본 지도 정말 오래간만이다. 5년이 되었는가, 10년이 되었는가. 헤어나지 못하던 공무(公務)와 속무(俗務)를 비록 일시나마 떨치고 표연히 떠나는 것만 해도 얼마나 시원하고 즐거운지. 저번 큰물 진 뒤로 빗방울이 오락가락하던 일기조차 오늘만은 훨씬 개이었다. 새맑은 하늘가엔 목단송이 같은 흰 구름이 뭉실뭉실 피어 오른다. 한강물이 잠깐 붉은 기운을 띤 것은 지난 번 장마의 흔적인가. 질펀한 뫼와 들은 부신 햇발을 안아 푸른빛이 다시금 새로워, 그 싱싱하고 선명한 품이 펄펄 뛰는 듯하다.
7월 8일 아츰 경부선에 몸을 실리다. 행리로는 지팽이 하나 손가방 하나. 단출하고 가든하기 훨훨 날아갈 듯, 죽장망혜로 천리강산을 들어간다는 옛노래의 풍정과 심회도 이러하였으리라. 생각하면 여행다운 여행을 해본 지도 정말 오래간만이다. 5년이 되었는가, 10년이 되었는가. 헤어나지 못하던 공무(公務)와 속무(俗務)를 비록 일시나마 떨치고 표연히 떠나는 것만 해도
얼마나 시원하고 즐거운지.
저번 큰물 진 뒤로 빗방울이 오락가락하던 일기조차 오늘만은 훨씬 개이었다. 새맑은 하늘가엔 목단송이 같은 흰 구름이 뭉실뭉실 피어 오른다. 한강물이 잠깐 붉은 기운을 띤 것은 지난 번 장마의 흔적인가. 질펀한 뫼와 들은 부신 햇발을 안아 푸른빛이 다시금 새로워, 그 싱싱하고 선명한 품이 펄펄 뛰는 듯하다.
1920년, 현진건은 양아버지 현보운의 동생 희운(僖運)의 소개로 11월, 문예지 『개벽(開闢)』에 「희생화(犧牲花)」를 개재하면서 처음으로 문단에 이름을 올리는데, 이보다 앞서 현진건은 『개벽』에 번역소설 「행복」(아르치바세프 원작)과 「석죽화」(쿠르트 뮌체르 원작)를 발표하고 있었다. 그의 자전적 성격도 동시에 가진 것으로 알려진 「희생화」는, 그러나 당시 문예평론가 황석우(黃錫禹)로부터 "소설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하등 예술의 형식을 갖추지 못한 무명 산문"[16]이라는 혹평을 받은 작품이었다.

처음 「희생화」를 발표하던 때부터 현진건은 이미 '빙허'라는 아호를 스스로 지어 쓰고 있었는데, 대체로 그가 혼인을 올리던 1915년에서 학교를 자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1916년 사이부터 쓰기 시작한 것으로 자신은 회고하고 있다. 다소 허무주의적 표현이 없지 않지만 '허공(虛空)에 의지한다'는 이 말이 자신의 심경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었고, 고대 중국 송(宋)의 문인 소식(蘇軾)의 《적벽부(赤壁賦)》의 구절 가운데 "넓기도 하구나,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서(浩浩乎! 憑虛御風而)..."란 구절에서 느낀 바가 있어 그대로 '빙허'를 자신의 아호로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1920년 11월에 현진건은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였다.

1921년 1월에 현진건은 다시 『개벽』에 단편소설 「빈처」를 발표하였는데, 이것이 문단의 호평을 받아 11월에는 다시 『개벽』에 단편 「술 권하는 사회」를 발표하였고, 1922년 1월부터 4월까지 『개벽』에 중편소설 「타락자」를 발표하였다. 작품 술 권하는 사회에서 그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알면서도 저항하지 못하는 나약한 지식인상을 풍자하였다.

이 전해부터 휘문고등학교 출신의 젊은 문인인 박종화(朴鍾和) · 나빈(羅彬) · 홍사용(洪思容) · 이상화 · 박영희(朴英熙) 등과 함께 잡지 『백조(白潮)』의 동인이 되어, 『개벽』과 『백조』 두 잡지 사이를 오가며 『백조』 1호지에 수필 「영춘류(迎春柳)」, 2호지에 단편소설 「유린」을 발표하고, 또 기행문 「몽롱한 기억」을 기고하면서, 7월에 『개벽』에 다시 번안소설 「고향」(치리코프 원작)과 「가을의 하룻밤」(고르키 원작)을 각각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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