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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한국문학전집 420)

장맛비는 그대로 초록 기름인 듯하다. 연 닷새를 거푸 맞고 난 볏모는 떡잎에까지 새파란 물이 들었다. 꽂아놓고는 물을 대지 못해 뿌리도 못 박고 샛노랗게 말라들던 볏모였다. 돌보기조차 싫어 내키지 않던 논틀을 날이 들자 부터는 잊는 법이 없이 저녁마다 한 바퀴씩 돌아 들어오는 것이 주사의 유일한 취미였다. 보면 볼 때마다 다르게 싱싱 자라 오르는 기름진 꾀기였다.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다. 만득으로 둔 아들 명호의 거처에 늘 마음이 떠나보지 못하듯, 연연한 것이 놓이고, 들에 나가면 이지러진 데 없는 볏모를 보아야 마음이 가뜬하다. 명호가 아이들과 싸우는 거시 아닐까? 들고 날 때마다 엇바뀌는 생각이었다. 오늘은 논귀에는 기어이 이상이 있었다.
장맛비는 그대로 초록 기름인 듯하다. 연 닷새를 거푸 맞고 난 볏모는 떡잎에까지 새파란 물이 들었다.

꽂아놓고는 물을 대지 못해 뿌리도 못 박고 샛노랗게 말라들던 볏모였다. 돌보기조차 싫어 내키지 않던 논틀을 날이 들자 부터는 잊는 법이 없이 저녁마다 한 바퀴씩 돌아 들어오는 것이 주사의 유일한 취미였다.

보면 볼 때마다 다르게 싱싱 자라 오르는 기름진 꾀기였다.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다. 만득으로 둔 아들 명호의 거처에 늘 마음이 떠나보지 못하듯, 연연한 것이 놓이고, 들에 나가면 이지러진 데 없는 볏모를 보아야 마음이 가뜬하다. 명호가 아이들과 싸우는 거시 아닐까? 들고 날 때마다 엇바뀌는 생각이었다.

오늘은 논귀에는 기어이 이상이 있었다.
정치나 이념을 자제하고 또한 계몽적이지 않은 순수 문학을 지향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평안북도 선천군 출신이며 본관은 수안(送安)이고 아호(雅號)는 우서(雨西)이다.

그는 평안북도 선천의 대지주 집안에서 아버지 계항교(桂恒敎)의 1남 3녀 중 첫째로 출생하였다. 계용묵 그의 할아버지인 계창전(桂昌琠)은 조선 말기에 참봉을 지냈다. 아울러 계용묵에게는 이복 여동생이 3명 있었다.

삼봉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서울로 상경하여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다녔지만, 할아버지 계창전에 의해 강제로 고향으로 끌려갔다. 성인이 된 뒤 그는 청년기에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았다.

뒤늦게 일본으로 유학, 도요 대학교 철학과를 다니기도 했다.

1920년 《새소리》이라는 소년 잡지에 《글방이 깨어져》라는 습작 소설을 발표하여 소설가로 첫 등단하였고 1925년 《생장》이라는 잡지에 《부처님 검님 봄이 왔네》라는 시를 발표하여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1927년 《상환》을 《조선문단》에 발표하여 본격 소설가 등단하였다. 《최서방》, 《인두지주》 등 현실적이고 경향적인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이후 약 10여년 가까이 절필하였다. 한때 그는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1935년 인간의 애욕과 물욕을 그린 《백치 아다다》를 발표하면서부터 순수문학을 지향하였고 1942년 수필가로도 등단하였다.

비교적 작품을 많이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묘사가 정교하여 단편 소설에서는 압축된 정교미를 잘 보여주었다. 대표작으로 《병풍 속에 그린 닭》,《상아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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