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1772

푸른 하늘 (한국문학전집 429)

백신애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306 2 0 47 2016-07-28
부산에서 경성으로 가고 오는 기차선로 이름은 경부선이라 하지요. 이 경부선 기차를 타고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구 정거장에서 내려가지고 동쪽으로 나가는 조그마한 기차에 갈아타면 동쪽 바닷가 포항이라는 곳까지 갈 수 있어요. 그리고 경주라고 하는 아주 예전에 신라 임금이 사시던 곳에도 갑니다. 그런데 이 기차선로 이름은 동해중부선이라고 한답니다. 대구서 이 기차를 타고 나면 다음 닿는 곳은 동촌이라는 정거장이고요, 그 다음은 어여쁜 이름을 가진 반야월이라는 정거장입니다. 이제 여러분께 하려는 이야기가 바로 이 반야월 정거장 근처에서 시작됩니다. 여러분이 이 이야기를 다 읽으시고 나서 일부러 만들어 쓴 거짓말 이야기겠지 하고 의심은 하지 마세요. 왜 그러냐 하면..

토혈 (한국문학전집 430)

최서해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319 2 0 45 2016-07-28
이월의 북국에는 아직 봄빛이 오지 않았다. 오늘도 눈이 오려는지 회색 구름은 온 하늘에 그득하였다. 워질령을 스쳐오는 바람은 몹시 차다. 벌써 날이 기울었다. 나는 가까스로 가지고 온 나뭇짐을 진 채로 마루 앞에 펄썩 주저앉았다. 뼈가 저리도록 찬 일기건마는 이마에서 구슬땀이 흐르고 전신은 후끈후끈하다. 이제는 집에 다 왔거니 한즉 나뭇짐 벗을 용기도 나지 않는다. 나는 여태까지 곱게 먹고 곱게 자랐다. 정신상으로는 다소의 고통을 받았다 하더라도 육체의 괴로운 동작은 못 하였다. 그런데 나는 형제도 없고 자매도 없다. 아버지는 내가 아직 강보에 있을 때에 멀리 해외로 가신 것이 우금(于今) 소식이 없다. 그러니 나는 이때까지 어머니 덕으로 길리었다. 어머니..

아내 (한국문학전집 431)

이무영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278 2 0 44 2016-07-28
"그래, 어떻게 됐수? 오늘은 뭬랍디까?" 대문턱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불도 못 땐 냉방에서 화롯전을 끼고 새우잠을 자던 인숙이가 뛰어나와서 이렇게 물을 것을 생각하자 그의 발은 가끔 가다가 우뚝우뚝 멈춰졌다. 날씨는 춥다 못해서 매웠다. 한시를 지난 종로통에는 인적조차 끊겼다. 가끔 쟁반만한 두 눈을 부라리며 기생을 실은 자동차가 기가 나서 거리를 질주할 뿐이다. 상점 문도 다 닫힌 밤의 서울에서 파란불을 켠 카페만이 아가리를 딱 벌리고 지나가는 사람을 집어삼킨다. 그러나 충노만은 동대문 통에서 종로 앞까지 오도록 한 곳도 부르는 집이 없었다. 하얀 에이프런 속에 손을 감춘 여급들이 빼꼼 빼꼼 내어다보고는 깰깰거리기만 한다. 그의 주머니 속은 동전 서 푼만이 짤..

바다의 전설 (한국문학전집 432)

차상찬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279 2 0 26 2016-07-28
우리나라에서도 남쪽 바다 ─ 천리만리 망망한 연파(烟波) 속에 외로이 자리 잡고 있는 섬나라 제주도(濟州道)에는 옛날부터 해녀(海女)가 있기로 유명한 곳이다. 모슬포(摹瑟浦)라는 포구에 사는 고옥랑(高玉娘)이라는 해녀가 어떤 따뜻한 봄날 전복을 따려고 나무잎 같은 쪽배를 저어 제주도의 남쪽 바다에 멀리 떨어져 있는 마라도(摩羅島)란 섬으로 갔었다. 이허도(島)러라 이허도러라 이허이허 이허도러라 이허도가면 나눈물난다 이허말은 마러저가라 서룬 어머니 날배힐적에 어느 바다의 메억을 먹어 바람일적 절(波)일적마다 구을리며 못사라서라 영해(瀛海)바다 가없은 바다 어느 날 온갖이라살이 바닷가의 봄빛을 사랑하는 고옥..

들메 (한국문학전집 433)

이무영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25 2 0 60 2016-07-29
갓 둘레가 깔쪽깔쪽한 오십전짜리 은전 한 푼이 나의 총재산이었다. 이 오십전으로 서울까지의 삼백리 길 노자를 해야 했고, 이 오십전으로 백사지 땅이나 진배없는 서울에서 고학을 해야 했다. 아무리 물가가 싼 시절이라 하지마는 정말 터무니없는 공상이었다. 열세 살 때 일이다. 그때만 해도 집에서는 얼마간의 학비쯤은 보태어줄 수도 있는 형편이기도 했었다. 두 섬지기의 광작이었고 남한테 내어준 땅섬지기로 텃도지 들어오는 것도 약간 있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 보조도 바랄 수 없이 일을 저지르고 집을 떠났었다. 서울공부 가는 것을 방해하는 형을 재떨이로 때리어 머리를 터뜨렸던 것이다. 아버지한테 붙들리기만, 하면 반은 죽는 판이다. 그날 밤을 메밀묵 장사 하는 복순네..

사냥 (한국문학전집 434)

이태준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391 2 0 57 2016-07-29
심란한 것뿐, 무슨 이렇다할 병이 있어서도 아니요 자기 체질에 저혈(猪血)이 맞으리라는 무슨 근거를 가져서도 아니었다. 손이 바쁘던 때는, 어서 이 잡무에서 헤어나 조용히 쓰고 싶은 것이나 쓰고 읽고 싶은 것이나 읽으리라 염불처럼 외워 왔으나 이제 막상 손을 더 대려야 댈 수가 없게 되고 보니 그것들이 잡무만은 아니었던 듯 와락 그리워지는 그 편집실이요 그 교실들이었다. 사람이 안정한다는 것은 손발이 편안해지는 데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은 한동안 문을 닫고 손발에 틈을 주어 보았다. 미닫이 가까이 앉아 앙상한 앵두나뭇가지에 산새 내리는 것도 내다보았고 가랑잎 구르는 응달진 마당에 싸락눈 뿌리는 소리도 즐겨 보려 하였다. 그러나 하나도 마음에 안정을 가져오지 않을 뿐..

만두 (한국문학전집 435)

최서해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270 2 0 61 2016-07-29
어떤 겨울날 나는 어떤 벌판길을 걸었다. 어둠침침한 하늘에서 뿌리는 눈발은 세찬 바람 에 이리 쏠리고 저리 쏠려서 하늘이 땅인지 땅이 하늘인지 뿌옇게 되어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다. 흩고의적삼을 걸친 내 몸은 오싹오싹 죄어들었다. 손끝과 발끝은 벌써 남의 살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등에 붙은 배를 찬바람이 우우 들이치는 때면 창자가 빳빳이 얼어 버리고 가슴에 방망이를 받은 듯하였다. 나는 여러 번 돌쳐서고 엎드리고 하여 나한테 뿌리는 눈을 퍼하여 가면서 뻐근뻐근한 다리를 놀리었다. 이렇게 악을 쓰고 한참 걸으면 숨이 차고 등에 찬 땀이 추근추근하며 발목에 맥이 풀려서 그냥 눈 위에 주저앉았다. 주저앉아서는 앞뒤로 쏘아드는 바람을 막으려고 나로도 알 수 없이 두 무릎을 ..

미치광이 (한국문학전집 436)

최서해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30 2 0 53 2016-07-29
벌써 4년 전 일입니다. (어떤 자는 말하였다.) 나는 백두산 뒤 청석하라는 조그마한 촌에 살았습니다. 그때 우리 집은 뒤에 절벽이 있고 앞에 맑은 시내가 있는 사이에 외따로 있었습니다. 형제가 없는 나는 늘 우리 집에 있는 농군과 함께 김도 매고 소도 먹이면서 아주 재미있게 지내었습니다. 그리고 사이만 있으면 처가로 갔었습니다. 내가 가면 장모께서는 “사위, 사위” 하시면서 떡도 해 주고 엿도 달여 줍니다. 그리고 장인께서는 낮이면 밖으로 나가시고 밤이면 이웃에 가서 장기나 두시다가 잘 때나 돌아오십니다. 그런 까닭으로 집에서는 아버지의 책망이 두려워서 기를 못 펴던 나는 처가에만 가게 되면 뛰고 소리치고 바로 내 세상이 되지요. 그러므로 나는 처가에 가기를 늘 즐..

5인 동무 (한국문학전집 437)

고한승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16 2 0 70 2016-07-29
아버지를 찾으려고 산 설고 물 설은 대판까지 간 불쌍한 소녀 순희가 의 외로 아버님이 석탄광이 무너져서 치어 죽었다는 눈물겨운 편지를 개성 있 는 창렬이에게 하였으나 창렬이는 그때 그 편지를 받지 못하고 개성에 있지 않았으니 과연 창렬이는 어디를 갔겠습니까? 씩씩한 기운으로 전조선육상경기대회를 마치고 난 창렬이는 완고한 부모 님이 허락은 안 하시나 기어이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5 월 20일! 바로 순희가 편지한 지 사흘 전에 개성을 떠났습니다. 부모님에게 알리지도 않고 허락도 없이 아버님이 일가 집에 갖다주라는 돈 60원을 가지고 떠난 것이었습니다. 아버님 몰래 더욱 심부름할 돈을 넌지시 가지고 도망 나온 것은 잘못인 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마는 장래에 훌..

죽음의 무도 (한국문학전집 438)

고한승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477 2 0 18 2016-07-29
서력 일천사백년 때에 고부렌쓰시가에 멧텔니희라고 하는 무사가 있었다. 그에게는 이다라고 하는 예쁜 딸이 있었는데, 독일 제일가는 청년이 아니면 혼인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다는 아버지의 부하로 있는 젊은 무사 겔할트라는 사람과 사랑해왔다. 이 겔할트란 사람은 전에는 문벌도 상당한 집에 태어난 문무겸전한 청년 으로 아직 세욕에 더럽혀지지 않은 순결한 미남자였다. 두 남녀는 굳게 장 래를 약속하고 사람의 눈을 속여가면서 끊이지 않는 사랑의 시간을 계속하 여왔는데 세상의 비밀이란 영원히 숨기지 못하는 법이라 그들의 사이는 어 느덧 엄격한 아버지가 알아차리게 되었다 생각지 못하던 비밀을 안 아버지는 불같이 성을 냈다.‘저런 무례방종한 놈을 한시바삐 쫓아내지 않으면 안 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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