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1767

사냥 (한국문학전집 434)

이태준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376 2 0 57 2016-07-29
심란한 것뿐, 무슨 이렇다할 병이 있어서도 아니요 자기 체질에 저혈(猪血)이 맞으리라는 무슨 근거를 가져서도 아니었다. 손이 바쁘던 때는, 어서 이 잡무에서 헤어나 조용히 쓰고 싶은 것이나 쓰고 읽고 싶은 것이나 읽으리라 염불처럼 외워 왔으나 이제 막상 손을 더 대려야 댈 수가 없게 되고 보니 그것들이 잡무만은 아니었던 듯 와락 그리워지는 그 편집실이요 그 교실들이었다. 사람이 안정한다는 것은 손발이 편안해지는 데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은 한동안 문을 닫고 손발에 틈을 주어 보았다. 미닫이 가까이 앉아 앙상한 앵두나뭇가지에 산새 내리는 것도 내다보았고 가랑잎 구르는 응달진 마당에 싸락눈 뿌리는 소리도 즐겨 보려 하였다. 그러나 하나도 마음에 안정을 가져오지 않을 뿐..

만두 (한국문학전집 435)

최서해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257 2 0 61 2016-07-29
어떤 겨울날 나는 어떤 벌판길을 걸었다. 어둠침침한 하늘에서 뿌리는 눈발은 세찬 바람 에 이리 쏠리고 저리 쏠려서 하늘이 땅인지 땅이 하늘인지 뿌옇게 되어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다. 흩고의적삼을 걸친 내 몸은 오싹오싹 죄어들었다. 손끝과 발끝은 벌써 남의 살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등에 붙은 배를 찬바람이 우우 들이치는 때면 창자가 빳빳이 얼어 버리고 가슴에 방망이를 받은 듯하였다. 나는 여러 번 돌쳐서고 엎드리고 하여 나한테 뿌리는 눈을 퍼하여 가면서 뻐근뻐근한 다리를 놀리었다. 이렇게 악을 쓰고 한참 걸으면 숨이 차고 등에 찬 땀이 추근추근하며 발목에 맥이 풀려서 그냥 눈 위에 주저앉았다. 주저앉아서는 앞뒤로 쏘아드는 바람을 막으려고 나로도 알 수 없이 두 무릎을 ..

미치광이 (한국문학전집 436)

최서해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17 2 0 52 2016-07-29
벌써 4년 전 일입니다. (어떤 자는 말하였다.) 나는 백두산 뒤 청석하라는 조그마한 촌에 살았습니다. 그때 우리 집은 뒤에 절벽이 있고 앞에 맑은 시내가 있는 사이에 외따로 있었습니다. 형제가 없는 나는 늘 우리 집에 있는 농군과 함께 김도 매고 소도 먹이면서 아주 재미있게 지내었습니다. 그리고 사이만 있으면 처가로 갔었습니다. 내가 가면 장모께서는 “사위, 사위” 하시면서 떡도 해 주고 엿도 달여 줍니다. 그리고 장인께서는 낮이면 밖으로 나가시고 밤이면 이웃에 가서 장기나 두시다가 잘 때나 돌아오십니다. 그런 까닭으로 집에서는 아버지의 책망이 두려워서 기를 못 펴던 나는 처가에만 가게 되면 뛰고 소리치고 바로 내 세상이 되지요. 그러므로 나는 처가에 가기를 늘 즐..

5인 동무 (한국문학전집 437)

고한승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03 2 0 69 2016-07-29
아버지를 찾으려고 산 설고 물 설은 대판까지 간 불쌍한 소녀 순희가 의 외로 아버님이 석탄광이 무너져서 치어 죽었다는 눈물겨운 편지를 개성 있 는 창렬이에게 하였으나 창렬이는 그때 그 편지를 받지 못하고 개성에 있지 않았으니 과연 창렬이는 어디를 갔겠습니까? 씩씩한 기운으로 전조선육상경기대회를 마치고 난 창렬이는 완고한 부모 님이 허락은 안 하시나 기어이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5 월 20일! 바로 순희가 편지한 지 사흘 전에 개성을 떠났습니다. 부모님에게 알리지도 않고 허락도 없이 아버님이 일가 집에 갖다주라는 돈 60원을 가지고 떠난 것이었습니다. 아버님 몰래 더욱 심부름할 돈을 넌지시 가지고 도망 나온 것은 잘못인 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마는 장래에 훌..

죽음의 무도 (한국문학전집 438)

고한승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466 2 0 18 2016-07-29
서력 일천사백년 때에 고부렌쓰시가에 멧텔니희라고 하는 무사가 있었다. 그에게는 이다라고 하는 예쁜 딸이 있었는데, 독일 제일가는 청년이 아니면 혼인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다는 아버지의 부하로 있는 젊은 무사 겔할트라는 사람과 사랑해왔다. 이 겔할트란 사람은 전에는 문벌도 상당한 집에 태어난 문무겸전한 청년 으로 아직 세욕에 더럽혀지지 않은 순결한 미남자였다. 두 남녀는 굳게 장 래를 약속하고 사람의 눈을 속여가면서 끊이지 않는 사랑의 시간을 계속하 여왔는데 세상의 비밀이란 영원히 숨기지 못하는 법이라 그들의 사이는 어 느덧 엄격한 아버지가 알아차리게 되었다 생각지 못하던 비밀을 안 아버지는 불같이 성을 냈다.‘저런 무례방종한 놈을 한시바삐 쫓아내지 않으면 안 되겠..

광 (한국문학전집 439)

권환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00 2 0 26 2016-07-29
애소(隘少)하고 침음(沈陰)한 실내 5·6촉밖에 안되는 전등이 높게 걸려있다. 전등 밑에는 소형의 책상 하나 그 위에는 장부같은 몇 권, 또 좌종 시계 하나 있어, 고요한 밤에 혼자 째깍거리고 있다. 방 안구석에 순옥이가 머리 위에 바느질 상자를 두고, 치마 입은 채, 이불도 없이 우제와 같이 잔다. 밖에서는 늦은 가을 바람 부는 소리가 가끔 우루우루 들린다. 덕세가 낡은 양복을 입고, 공포한 얼굴로 숨을 헐떡거리며 무대 좌편에 있는 대문 앞으로 뛰어온다. 덕세 (대문을 당겨보다가, 뚜드리며) 여보. 여보. 순옥 (무답) 덕세 (앞뒤를 도라보며, 황급하게) 여보. 순옥씨. 순옥씨. 문 좀 열어주오. 응. 문 좀 열어주어! 순옥 (무답) 덕세 여보. 순옥씨. 내 ..

다시는 안보겠소 (한국문학전집 422)

이익상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393 2 0 46 2016-07-28
영배(榮培)의 아내가 해산을 마치고, 산파도 아이를 목욕시켜놓은 뒤에 다른 데로 또 해산을 보러 갔다. 집안은 난리를 치른 뒤처럼 허청했다. 영배는 마루에서 부채를 부치고 앉았다. 그 아내는 방에 모기장을 치고 갓난아이를 곁에 누이고 드러누웠다. 해는 떨어지려면 아직도 두 시간이나 남았다. 그러나 모기장을 벌써 친 것은 파리가 너무나 꼬인 까닭에, 그것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영배는 그 안날 아침부터 오늘 낮까지 하루 동안 지낸 일이 꿈결 같았다. 그의 아내가 아이를 밴 뒤로부터 칠팔 개월 동안을 두고, 그는 매일처럼 여자의 해산에 대하여 호기심과 공포심을 아니 품은 적은 없었다. 여러 가지로 상상할 수 있는 데까지 상상해보았다. 자기가 자기를 의식하고, 자기 역시 어..

나는 보아 잘 안다 (한국문학전집 423)

이무영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290 2 0 45 2016-07-28
그가 나를 두고 간 지가 벌써 석 달이 차고 네가 세월의 빠름을 한탄한 것처럼 내가 너를 두고 마을께 공동묘지로 온 지가 오늘째 석 달 사흘이다. 사흘하고도 두 시간, 두 시간하고도 이십분이나 지났구나. 사람처럼 간사한 것이 없다는 것을 요새 와서 새삼스러이 깨닫는다. 내나 네나 우리가 서로 갈라서기만 하면 둘이 다 따라 죽거나 실진을 하리라고 생각한 우리였건마는 이렇게 이별을 한 오늘날에 너는 너대로 나는 또 나대로 살고 있구나.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그리고 목숨도 다함께 가지고 굳게 맹세한 우리건마는 언제 그런 맹세를 했더냐 싶게 너는 너대로 먹고 너대로 입고 너대로 살고 있지 않느냐? 아니 나도 마찬가지다. 네가 먹을 때에는 나도 먹었고, 네가 입을 때는 나도 ..

해후 (한국문학전집 424)

채만식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267 2 0 44 2016-07-28
마지막으로 라디오의 지하선을 비끄러매놓고 나니, 그럭저럭 대강 다 정돈은 된 것 같았다. 책장과 책상과 이불 봇짐에, 트렁크니 행담 등속을 말고도, 양복장이야 사진틀이야 족자야 라디오 세트야, 하숙 홀아비의 세간 치고는 꽤 부푼 세간이었다. 그것을 주섬주섬 뒤범벅으로 떠싣고 와서는, 전대로 다시 챙긴다, 적당히 벌여놓는다 하느라니, 언제나 이사를 할 적이면 그러하듯이, 한동안 매달려서 골몰해야 했다. 잠착하여 시간과 더불어 오래도록 잊었던 담배를 비로소 푸욱신 붙여 물고 맛있이 내뿜으면서, 방 한가운데에 가 우뚝 선 채, 휘휘 한 바퀴 돌아보았다. 칸반이라지만 집 칸살이 커서 웬만한 이칸보다도 나았다. 웃목으로 책장과 양복장을 들여세우고, 머리맡으로 책상을..

가락지 (한국문학전집 425)

이무영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04 2 0 58 2016-07-28
두루마기에‘도리우찌’(鳥打[조타])라고 불리어지던 캡을 쓰고 돈이라야 30원도 못 되는 것을 가지고 일본 유학의 길을 떠났었고 보니 정말 무모한 짓이다. 가면 어떻게든지 되려니 해서였지만 이 ‘어떻게든지’라는 것부터가 실로 비과학적인 이야기다. 그래도 나는 조금도 불안이 없이, 마치 적진을 쳐들어가는 장군처럼 대담했었다. 30전씩이나 하는 ‘벤또’라는 것도 용감하니 턱턱 사먹었고, 캐러멜도 5전짜리가 아니라 10전에 스무개짜리를 샀었다. 30원이라는 큰돈을 처음 쥐어보는 내게는 5전짜리 호떡이 6천개나 되는지라, 일종의 천문학적 숫자처럼 여겨졌던 모양이다. 30여 년 전 내가 열일곱 살 때 이야기다. 왕년의 ‘곰보 피처’가 중학 동창이었던지라, 그 김 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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