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1772

천재 (한국문학전집 461)

윤기정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236 2 0 1 2016-08-01
가물에 비를 기다리는 농군의 마음이란 비할 때 없이 안타깝고 눈물겨운 일이다. 솔개미 그림자만 지지리 탄 땅위로 스칠라 치면 행여나 구름장인가하는 무슨 기적이 아니면 요행수를 바라는 듯한 반갑고도 일면 조마조마한 생각에 끌려 뭇사람은 재빠르게 허공만 헛되이 치여다 본다. 다른 해 같으면 거의 두벌 김이나 나갔을 터인데 금년엔 어찌나 가물던지 초복이 가까워도 제법 모 한포기 꽂아보지 못한 이 근처 마을사람들은 불안에 싸여있다. 생전 비라고는 안 올 듯한 날씨가 거듭할수록 군데군데서 일어나는 물싸움만이 더욱 소란해질 뿐이오. 오늘도 봉례네 집에서는 이른 아침밥이 끝난다음 그의 아버지는 활등같이 굽은 등에다가 가래를 둘러 메고 개울로 나갔고 그의 어머니는 겨우내 눈이라곤 오지..

공사장 (한국문학전집 462)

윤기정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258 2 0 1 2016-08-01
어느해 어름 큰 비가 두 세번 오고 큰 물이 두 세번 가서 허술한 집이 무너지고 집들이 떠나간 뒤에 개천물이 다시 줄어들기를 시작하였다. 나날이 줄어 들어감을 따라 장마지기 전부터 시작하였던 개천공사도 다시 시작되어 많은 노동자가 머리악을 쓰고 덤벼 다투어 가며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개천공사래야 한 두달에 끝이 날 약간 고치는 것만이 아니라 깊이로 말하면 두 세길이나 되고 넓이는 대여섯 간통이나 되는 유착한 천을 그대로 덮어서 개천 응구위로 사람이 다니도록 길을 만드는 큰 공사다. 개천 밑 바닥을 파서 뭉구리 돌맹이를 깔아가며 단단히 다진 뒤에 그 위에다 그대로 양회바닥을 만든다. 그 다음에는 양편에다 굵다란 철사로 얼기설기 얽어놓고 거기다 그대로 양회를 넓혀서 훌..

어머니와 아들 (한국문학전집 463)

윤기정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251 2 0 1 2016-08-01
기차 후미끼리 를 지나  < > 서소문 네거리로 나서니 휘모라치는 매서운 바람이 더한층 살을 애인다. 열한시에 떠나는 막차가 끊겨 마포에서부터 쉬엄쉬엄 걸어왔으니 생각할 나위도 없이 자정이되려면 머지 않았으리라. 더구나 금년에 여덟 살 나는 어린 놈을 이끌고 노리장화로 걸었으니 열두시가 혹시 넘었을는지도 모른다. 좀 비탈진 언덕을 걸어올라 가면서 “다리 아프지 않니?” “아버지는?” “나는 안 아프지만.” “나도 안 아프다” “참 장사로군 그래.” 말이 여덟 살이지 잔망한 품이 숙성한 여섯 살 됨직하다. 동짓달이 생일이라는 한가지 이유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보다도 돌 안 되어 어미의 따뜻한 품안을 떠나고 어린 것의 생명수인 젖을 어미가 가지고 가버렸다는 것이 그를..

거울을 꺼리는 사나이 (한국문학전집 464)

윤기정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318 2 0 49 2016-08-01
용봉이는 며칠 전부터 집에서 돈 오기를 고대고대 하던 것이 오늘에야 간신히 왔다 그 전에는 그렇게 . 신고를 하지 않고 선뜩선뜩 보내 주더니만 이즈막은 노루 꼬리만 한 벌이였으나 그나마 그만 두었다니까 벌이 할 적보다 적게 청구하더라도 여간 힘을 끼는게 아니다. 아마 아버지와 형의 생각에 ‘벌이도 못하는 녀석이 돈만 쓰나’하고 밉쌀스럽게 여기는 모양이다. 다른 때 같으면 돈 올 듯한 날짜가 약간 어그러진대도 그다지 조바심이 나도록 초조해 하지 않았으나 이번만은 전에 없이 돈 오기를 목을 늘여 기다렸던 것이다. 참으로 얼굴이 흉하게 생겨 시골집에 있을 적이나 서울로 올라와서나 추남으로 소문이 자자하게 높은 용봉이가 일금 백원여를 버젓하게자기 집에다 청구해 놓고 날마다 몸이 ..

춘몽곡 (한국문학전집 465)

윤기정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299 2 0 1 2016-08-01
동대문을 등지고 방금 떠나 청량리로 향해 살갗이 닿는 전차 안에는 남녀노소로 초만원을 이루었는데 그 틈틈에는 한 떼의 학생이 섞여있다. 바로 저번 일요일 날은 온종일 끊일 줄 모르고 촉촉이 내린 보슬비로 말미암아 나날이 짙어가던 봄빛을 더한층 재촉해 수삼일 내로 개나리와 진달래꽃을 활짝 피게 하였다. 그래 이제는 제법 봄 기분이 농후해진 더구나 구름한 점 없이 맑게 개인 일요일이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치 어수선한 도회생활에 휘둘리고 들볶이는 뭇 사람은 단 하루라도 흐릿해진 머리와 고단한 몸을 맑은 공기와 그윽한 대자연에 마음껏 씻고 흠씬 위안을 얻으려 함인지? 북적대는 서울서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교외로 나마 아쉬운 대로 몰려 나가는 모양이다. 오정때가 가까워 올수..

이십원 (한국문학전집 466)

윤기정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806 2 0 69 2016-08-01
봄이다. 고양이가 양지쪽에서 연해 하품을 하고 늙은이 볕발을 쫓아다니며 허리춤을 훔척거리면서 이 (蝨)사냥을 골몰히 하는 때가 닥쳐왔다. 젊은이들은 공연히 사지가 느른하고 마음이 까닭없이 군성거리는 시절이 찾아왔다. 밖에서는 마치 겨우내 꽝꽝 얼어 붙었던 시냇물이 확- 풀려가지고 콸콸거리며 소리쳐 흐르듯이 뭇사람들의 와글와글하고 떠드는 소리, 몹시 시끄러운데 쨍쨍한 볕이 우유빛 유리창을 들이비쳐 진찰실 안은 유난히 밝다. 이 안에서 삼십이 될락 말락한 젊은 의사 P가 하루 진종일 눈, 코 뜰 새없이 병자들한테 시달리고 나면 저녁때에는 마치 졸경을 치고난 사람처럼 머리가 핑핑 돌아가고 사지가 솜피듯 피는 것 같다. ‘이래서야 사람이 살 수가 있나. 돈도 소중하지만…’ 세..

차부 (한국문학전집 467)

윤기정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88 2 0 64 2016-08-01
갓난이 아버지는 해 저물 무렵에야 점심겸 저녁겸 얼러서 막걸리 한사발에다 국 한 그릇을 받아먹은 것이 시장해 그랬던지 머리가 띵하고 눈이 개개 풀리기 시작해 전신이 착 까부러지고 꼬박꼬박 졸려옴을 견디다 못해서 한칸이라고 해도 넓은 반 칸통밖에 안되는 움파리같은 벽문방 한 귀퉁이에 쓰러져 세상모르고 새우등 잠을 자다가 “인력거!” 하고 부르는 바람에 곤하게 들었던 잠을 소스라쳐 깨었다. 허나 자기 차례는 아니라고 스스로 짐작하였다. 곁에 누웠던 춘보는 눈을 손등으로 비비며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네!” 하고 방문을 왈칵 열며 밖으로 나갔다. 갓난아버지도 겉묻어 일어나 눈을 손등으로 비비고 한편 구석 벽에 오도카니 걸려있는 군데군데 찌그러지고 녹이 슬고 벗겨지고 게..

복덕방 (한국문학전집 426)

이태준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638 2 0 167 2016-07-28
"녹두 빈자떡을 부치는 게로군, 흥……." 한 오륙 년째 안초시는 말끝마다 '젠―장……'이 아니면 '흥!' 하는 코웃음을 잘 붙이었다. "추석이 벌써 낼 모레지! 젠―장……." 안초시는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었다. 기름내가 코에 풍기는 듯 대뜸 입 안에 침이 흥건해지고 전에 괜찮게 지낼 때, 충치니 풍치니 하던 것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아래윗니가 송곳 끝같이 날카로워짐을 느끼었다. 안초시는 그 날카로워진 이를 빈 입인 채 빠드득 소리가 나게 한번 물어 보고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천리같이 트였는데 조각구름들이 여기저기 널리었다. 어떤 구름은 깨끗이 바래 말린 옥양목처럼 흰빛이 눈이 부시다. 안초시는 이내 자기의 때 묻은 적삼 생각이 났다. 소매..

아내의 자는 얼굴 (한국문학전집 427)

최서해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27 2 0 64 2016-07-28
아내의 자는 얼굴 _최서해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으니 추워질 일이다. 더울 때가 되면 덥고 추울 때가 되면 추워지는 것은 자연의 힘이다. 자연의 힘을 누가 막으며 무어라 칭원하랴? 하지만 자연의 그 힘에 대항할 만한 무기가 없는 사람들의 입에서 칭원이 안 나올 수 없는 일이다.’ ‘추워지니 그것을 대항하려면 불이 필요하다. 나뭇바리나 단단히 장만해야 될 것이다. 그것은 방을 데우는 데 필요하지만 찬 눈과 쓰린 바람을 무릅쓰고 거리에 나다니려면 의복도 빠지지 못할 요구 조건의 하나이다. 자켓이나 외투 같은 것은 너무도 고상한 것이니 바라볼 생념도 없지만 튼튼한 무명옷에 솜이나 툭툭히 놓아 입어야 얼어 죽은 귀신을 면할 일이다. ..

패강냉 (한국문학전집 428)

이태준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413 2 0 59 2016-07-28
다락에는 제일강산(第一江山)이라, 부벽루(浮碧樓)라, 빛 낡은 편액(扁額)들이 걸려 있을 뿐, 새 한 마리 앉아 있지 않았다. 고요한 그 속을 들어서기가 그림이나 찢는 것 같아 현(玄)은 축대 아래로만 어정거리며 다락을 우러러본다. 질퍽하게 굵은 기둥들, 힘 내닫는 대로 밀어던진 첨차와 촛가지의 깎음새들, 이조(李朝)의 문물(文物)다운 우직한 순정이 군데군데서 구수하게 풍겨 나온다. 다락에 비겨 대동강은 너무나 차다. 물이 아니라 유리 같은 것이 부벽루에서도 한 뼘처럼 들여다보인다. 푸르기는 하면서도 마름〔水草〕의 포기포기 흐늘거리는 것, 조약돌 사이사이가 미꾸리라도 한 마리 엎디었기만 하면 숨 쉬는 것까지 보일 듯싶다. 물은 흐르나 소리도 없다. 수도국 다리를..

㈜유페이퍼 대표 이병훈 | 316-86-00520 | 통신판매 2017-서울강남-00994 서울 강남구 학동로2길19, 2층 (논현동,세일빌딩) 02-577-6002 help@upaper.kr 개인정보책임 : 이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