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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시평 (한국문학전집 452)

조선프로예술운동이 각 부문 - 문학, 연극, 영화, 미술, 음악 - 의 기술자 등의 예술적 활동이 아니었던 것은 누구나 부인치 못한 명확한 사실이다. 조선에 있어서 과거에 우리들의 예술운동을 엄정한 의미에서 본다면 부르 예술운동이라기보다 프로예술운동이라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살아 나아가는 사회가 유물변증법적으로 발전되는 것과 같이 우리들 예술운동에 있어서도 모든 행동이 어느 때까지 고정되어 있지않고 전체의 운동을 위하여 새로운 계단으로! 진전에 진전을 거듭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선프로예술운동이 각 부문 - 문학, 연극, 영화, 미술, 음악 - 의 기술자 등의 예술적 활동이 아니었던 것은 누구나 부인치 못한 명확한 사실이다. 조선에 있어서 과거에 우리들의 예술운동을 엄정한 의미에서 본다면 부르 예술운동이라기보다 프로예술운동이라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살아 나아가는 사회가 유물변증법적으로 발전되는 것과 같이 우리들 예술운동에 있어서도 모든 행동이 어느 때까지 고정되어 있지않고 전체의 운동을 위하여 새로운 계단으로! 진전에 진전을 거듭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제 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소설가 겸 평론가, 영화제작자이다. 호는 효봉(曉峰)이며, 효봉산인(曉峰山人)이라는 필명도 사용했다.

한성부 출신으로 보인학교에서 수학했다. 이 학교는 대한제국 군대 해산으로 해산된 군인들이 집결한 보인학회가 1908년에 설립한 애국계몽 계열의 사립 학교이다. 보인학교에 재학하면서 계몽운동에 뜻을 두게 되고, 임화와도 교유하였다.

10대 때부터 소설 습작을 시작하여, 1921년에 《조선일보》에 〈성탄의 추억〉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1922년에는 염군사에 가담하고 1924년에 서울청년회 소속으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창립을 주도했다. 카프 중앙위원과 서기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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