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운동의 ××××× 즉「----- 예술의 확립」은 우리들이 당면한 가장 중대한 중심적 과제이다.
1930년은 이상에 지적한 중심적 과제를 제기한 점으로 보아 예술운동사상에 특기할 도약적 계기를 지은 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제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1931년을 당한 우리들은 역량을 집중하고 가능성을 이용하여 의식적으로 예술운동을 통제 있게 일보 전진시킬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소설가 겸 평론가, 영화제작자이다. 호는 효봉(曉峰)이며, 효봉산인(曉峰山人)이라는 필명도 사용했다.
한성부 출신으로 보인학교에서 수학했다. 이 학교는 대한제국 군대 해산으로 해산된 군인들이 집결한 보인학회가 1908년에 설립한 애국계몽 계열의 사립 학교이다. 보인학교에 재학하면서 계몽운동에 뜻을 두게 되고, 임화와도 교유하였다.
10대 때부터 소설 습작을 시작하여, 1921년에 《조선일보》에 〈성탄의 추억〉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1922년에는 염군사에 가담하고 1924년에 서울청년회 소속으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창립을 주도했다. 카프 중앙위원과 서기장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