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1778

감사와 사죄 (한국문학전집 578)

이광수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308 2 0 1 2016-08-17
나는 지금 서른 살이외다. 스물 아홉 번째 생일을 이별의 눈물로 지낸 지가 보름이나 되었으니, 아직도 서양 나이로는 이십 구세 십 오일에 지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서양 나이로 서른 살, 곧 만 삼십이 되려면, 오히려 십 일개월 반, 삼백 오일이나 남았읍니다. 작년 한 그믐날 밤을 나는 감기르 상해 동아 여관 육층 방에서 혼자 새면서 내일부터는 서른 살이다 하여 여러 가지 새로운 결심을 하였읍니다. 공자님은 서른 살에 뜻이 섰다 하셨고,예수께서도 서른 살에 나사렛의 목수의 집을 떠나 요단강의 갈대 밑으로 요한의 세례를 받으러 나오셨으니, 나도 서른 살부터는, 곧 내일부터는 나의 일생의 뜻을 세우고, 사업을 시작해야 하겠다……

사랑 (한국문학전집 579)

이광수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248 2 0 1 2016-08-17
人生[ ]은 苦海[고해]라고 한다. 쓴 바다·고생 바다·고통의 바다·苦悶[고민]의 바다 ·勞苦[노고]의 바다·苦亂[고난]의 바다라는 뜻이다. 어 떤 팔자 좋은 사람에게는 이 人生[인생]이 樂園[낙원]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多數人[다수인]에게는 人生[인생]은 苦海[고해]다. 나는 人生[인생]을 苦海[고해]로 보지 않지 못하는 不幸[불행]한 사람이다. 나는 落地[낙지] 以來[이래]로 일찍 幸運[행운]이라는 것을 보지 못한 不幸兒[불행아]어니와, 지금도 不幸[불행]한 사람이다. 貧窮[빈궁]·不健康[불건강]·世上[세상]의 逼迫[핍박]·事業[사업]의 先敗[실패]·民族的[민족적] 苦悶[고민]·나 自身[자신]의 人格[인격]과 能力[능력]에 對[대]한 不滿足[불만족], 모두 不幸[불행..

손가락 (한국문학전집 580)

이광수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286 2 0 1 2016-08-17
사람이란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을 생각이 나는 법이다. 더우기 나와 같이一生[일생]을 不幸[불행] 속에서 온 사람은 그러하다. 『에라 죽어 버리자. 죽어 버리면 고만일 것을 내가 왜 이 고생을 해!』하고 어떻게 하면 얼른 죽어버릴까 하고 죽을 방법을 생각할 때에는 반드시 무슨 일이 하나 생겨서 도로 살기를 작정하게 되는 법이다. 그 일이란 항용 대수롭지 아니한 법이다. 혹은 말 한 마디에 지나지 못하는 수도, 혹은 손을 한번 만져 주는 것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 죽으려는 사람의 무서운 결심을 변하게 하는 힘을 가질 것이다.

어린 영혼 (한국문학전집 581)

이광수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814 2 0 1 2016-08-17
나는 마침내 어린 누이동생이 있는 곳을 탐지하여 알았다. 어른들이 두고 속여 왔지마는 나는 마침내 알아 낸 것이다. 알아 냈으니 잠시를 지체할 수 도 없다. ── 나는 곧 가 보아야겠다. 거의 일년 동안이나 피차에 있는 곳도 모르고 서로 떠나 있던 그리운 누이동생이 ── 인제 겨우 세 살 잡히는 어린 누이동생 ── 악마와 같은 원수에게 포로가 되어 간 어린 누이동생을 나는 즉시로 찾아보아야만 하겠다.

제성대 (한국문학전집 557)

김동인 | 도디드 | 4,000원 구매
0 0 269 2 0 1 2016-08-14
지금으로부터 약 일천구백칠십 년 전 아시아(亞細亞)의 중심이 되는 지나(支那) 땅에는 여러 왕조(王朝)를 거치어서 전한말엽(前漢末葉)─ 원시적 생활을 벗어나서 인제는 꽤 고등한 문화생활을 경영하고 있는 시절이었다. 그의 영토는 서편으로는 파밀고원(高原)까지 교통로가 뚫리고 동편으로는 벋고 벋어서 지금의 조선반도의 대동강 유역에 해당하는 지대에 낙랑군(樂浪郡)을 두게까지 되었다. 그때에 압록강 상류 고구려현(高句麗縣)에서 고주몽(高朱蒙)이라 하는 청년이 임금으로 삼아 가지고 한 개 새로운 나라가 일어났다. 민족 계통으로는 한(韓)족이었다.

내가 본 시인 김소월 군을 논함 (한국문학전집 544)

김동인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343 2 0 1 2016-08-12
나는 소월과 一面識[일면식]도 없다. 2,3 회의 文通[문통]은 있었지만 그 필적조차 기억에 희미하다. 내가 소월의 이름을 처음으로 기억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8,9년 전 잡지<創造[창조]>가 제 5호던가 6호던가쯤 되었을 때였었다. 그때 소월은 자기의 스승 岸曙[안서]를 介[개]하여 <창조>에 시를 한 편 투고하였다. 나는 그 원고를 보았다. 그리고 ‘不用品[불용품]’이라는 赤註[적주]를 달아서 왼편 서랍에 들어뜨렸다. 그때에 사용하던 안서의 원고용지는 좀 유다른 것이었었다. 掛紙[괘지]와 같이 접는 원고용지로서 가운데는‘岸嗜用稿[안기용고]’라고 인쇄하고 세로와 가로글자를 좇아서 1, 2, 3, 4 번호를 매긴 별한 원고용지였었다. 낮은 롤(ロ一ル)지에다 청색으로 찍었..

내가 본 시인 주요한 군을 논함 (한국문학전집 545)

김동인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357 2 0 1 2016-08-12
3년 전에 〈現代評論[현대평론]〉에 ‘소설가의 시인평’이란 제목 아래 金億論[김억론]을 본 일이 있다. 그리고 연하여 조선 현대 시인 전부를 차례로 평하여 보려 하였다. 그러나 김억론을 발표한 뒤에 갑자기 나의 주위의 사정의 변화와 생활 상태의 격변 등으로 3년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 다음에 때때로 계속하여 쓰고 싶은 생각이 없지는 않았으나 참고서의 불비로 이렁저렁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번 三千里社[삼천리사]에서 춘원, 요한, 파인 3인집을 한권 기증받고 책장 속에서 요한의 ‘아름다운 새벽’을 얻어 내어 우연히 요한의 아직껏 발표한 시 전부의 구비된 기회를 타서 이 글을 쓰려 붓을 잡은 것이다.

글동산의 거둠 (한국문학전집 546)

김동인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312 2 0 1 2016-08-12
월평을 맡기는 맡았으되 걱정이 있다. 지금 한다 하는 잡지 문예란에도 현상소설에도 낙선될 만한 작품이 수없다. 그러니 뽑아서 평하자면, 한 달에 한둘 밖에는 평할 만한 작품이 없다. 어찌하노 생각다 못하여 작년 12월과 금년 정월 작품 가운데 내 눈에 뜨인 것은 다― 하기로 하였다. 長春[장춘]군의 「運命[운명]」(〈創造[창조]〉12월)은 조선 문단 성립이래의 가작의 하나이다. 東俊[동준]의 영어 교수의 묘사 같은 것은 참 묘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동준의 출옥 후와 H와 A의 연애 성립과 옥 안엣 번민은 좀더 똑똑히 그릴 필요가 있다.

소설작법 (한국문학전집 547)

김동인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257 2 0 1 2016-08-12
우리는 매일 밥을, 세 번 평균으로 먹는다. 그러나, 누가 우리에게 갑자기 밥 먹는 법을 가르치려 하면, 우리는 그 사람을 미치광이로 볼 것이니, 왜 그러냐 하면, 喰飯法[식반법]이라 하는 것은 따로이 없는 까닭이다. 우리가 밥을 젓가치로 먹든, 숟가락으로 먹든, 양인과 같이 鎗[쟁]과 칼로 먹든, 또는, 나이 어린 애들과 같이 손가락으로 먹든, 아무도 거기 간섭하며, 치안법 위반이라든가 풍속 괴란으로 우리를 법률의 손에 내어 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식자의 버릇과 편익상, 밥을 박죽으로 퍼 먹는다 하여도 또한 괜치 않을 것으로서, 喰飯法則上[식반법칙상] 너는 젓가치로 먹었느니 안 되었다, 나는 숟가락으로 먹었으니 되었다는 등의 헛소리는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소설가의 시인평 (한국문학전집 548)

김동인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286 2 0 1 2016-08-12
오래간만에 만나는 여편네에게 향하여 “전보다 이뻐졌소이다.” 하는 편이 좋은지 “전만 못하게 되었소이다.” 하는 편이 좋은지 그것은 모르겠읍니다. 언젠가 어떤 중년 여자에게 전보다 썩 아름다와졌다고 인사를 드렸다가(간접으로) 욕먹은 일이 있읍니다. 그렇다고 ‘당신의 전의 얼굴은 괜찮았지만 지금 그 얼굴을 가지고 천하를 활보를 하오?’고도 또한 못할 일로서 여자에게 인사할 때는 시대의 전후라는 것은 입밖에 내지 않아얄 일이요 그것을 입밖에 내는 것은 큰 모험이라 할 수가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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