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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문학선: 낙엽을 태우면서 (이효석 30)

이효석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573 2 0 1 2016-09-02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과 같이 뜰의 낙엽을 긁어모으지 않으면 안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언만 . , 낙엽은 어느덧 날으고 떨어져서 또다시 쌓이는 것이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의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 보다. 30여 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언만, 날마다의 시중이 조련치 않다. 벗나무, 능금나무 ─ 제일 귀찮은 것이 벽의 담장이다. 담장이란 여름 한철 벽을 온통 둘러싸고 지붕과 연돌의 붉은 빛만을 남기고 집안을 통째로 초록의 세상으로 변해 줄 때가 아름다운 것이지 잎을 다 떨어트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벽에 메마른 줄기를 그물같이 둘러칠 때쯤에는 벌써 다시 지릅떠볼 값조차 없는 것이다. 귀찮은 것이 그 낙엽이다.

한국근대문학선: 인물시험 (이효석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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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32 2 0 1 2016-09-02
소년시대로 돌아가서 인생의 출발을 고쳐 할 수 있다고 한들 나는 반드시 그 재출발의 길을 원하지 않을 듯싶다. 무수히 거쳐온 뭇 시험의 자취를 생각하면 진저리가 난다. 학교시대의 입학, 학기, 학년, 각 시험을 합하면 아마도 거의 백번에 가까운 수효를 지나왔을 것이요, 중에는 충분한 자신과 자랑을 가지고 겪은 시험도 있기는 있으나 거개가 귀찮고 무거운 것이었다. 물론 그것으로서 인생의 시험이 끝난 것은 아니오, 앞으로도 수많은 시험의 고개가 등대하고 있을 것이나 붓대를 꼼지락거리며 답안지를 어지럽히기에 정신을 쏟거나 구술 시험원 앞에 서서 눈총을 맞는 행사는 평생에 두 번 다시 오지 말기를 원한다.

한국근대문학선: 만습기 (이효석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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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18 2 0 1 2016-09-02
30줄을 겨우 잡아든 주제에 나이를 거들기가 낯간지러운 일이나 늦게 배운 끽연의 습관을 생각할 때, 나는 나이와의 관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30에 겨우 담배를 익혔다는 것이 끽연의 습성으로서는 결코 이른 편이 아니고 만습의 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30과 끽연 ─ 30에 담배 맛을 안 것이다. 그 쓰고 떫고 향기로운 맛을 비로소 안 것이다. 향기롭다고 해도 꽃의 향기도 아니요, 박하의 향기도 아니요, 소년의 향기도 아닌 어른의 향기의 맛을 비로소 알고 어른의 세계에 비로소 들어온 것이라고나 할까.

한국근대문학선: 유경식보 (이효석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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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59 2 0 1 2016-09-02
평양에 온 지 사년이 되나 자별스럽게 기억에 남는 음식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생활의 전반 규모에 그 무슨 전통의 아름다움이 있으려니 해서 몹시 눈은 살피나 종시 그런 것이 찾아지지 않습니다. 거처하는 집의 격식이나 옷맵시나 음식 범절에 도시 그윽한 맛이 적은 듯합니다. 이것은 평양 사람 자신도 인정하는 바로 언제인가 평양의 자랑을 말하는 좌담회에 출석했을 때 들어 보아도 그들 자신으로도 이렇다 하는 음식을 못 들었습니다. 가령 서울과 비교하면 ─ 감히 비교할 바 못되겠지만 ─ 진진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적고 대체로 거칠고 담하고 뻣뻣스럽습니다.

한국근대문학선: 마리아 막달라 (이효석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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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50 2 0 1 2016-09-02
신약을 통독해 가는 동안에 마리아 막달라의 사적에 가장 흥미를 느끼게 된다 마리아 개인도 개인이려니와 . 집안의 상태, 누이 말타와 동생 라사로와의 세 식구의 단란, 마리아와 예수와의 사이 ─ 모두 흥미의 초점이다. 백 천의 인물이 등장하고 동원되는 서중(書中)에서 인간적인 점으로나 애정과 동감을 일으키는 점으로 마리아같이 주의를 끄는 인물이 없다. 집안이 빈한했던 것은 마리아의 신분으로 추측할 수 있으나 말타와 라사로는 각각 무엇을 하고 있었던지 그 기록이 명료치 않음이 섭섭하다. 가령 라사로는 목양자였다든지, 혹은 천막업자였다든지의 전기(典記)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공상을 더욱 만족시켜 주었을까 생각된다.

한국근대문학선: 소하일기 (이효석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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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86 2 0 1 2016-09-02
열 시는 되어서 일어나 사랑문을 여니 손님도 잠이 깬 지 오래던지 침대에서 일어난다. 피곤이 풀리지 못한 모양 같다. 간밤에 들어온 것이 세시를 넘은 때 ─ 이것이 이 며칠 동안의 버릇이어서 기침은 자연 열 시를 넘어 아침 시간의 표준이 대개 오정을 기점으로 하게 되었다. Y는 서울서 온 손님. 며칠 동안의 그를 동무해 주기 위해 K와 C와 나 세 사람이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어제는 박물관을 찾았던 것이 월요일이어서 휴관, 그 길로 뱃놀이를 떠난 것이 밤이 되어서야 거리로 들어오게 되어 또 몇 집 돌아다니는 동안에 오전 세 시를 맞이해 집으로 오는 길에 별안간 종록 같은 소낙비를 만나 아래통을 한바탕 적시고 돌아왔다.

한국근대문학선: 야과찬 (이효석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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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47 2 0 1 2016-09-02
9월 3일 아침 호텔에서 역까지 나가는 길이 몹시 차서 나는 차 속에서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연일 비 기운도 있기는 있었으나 별안간 기온이 내려 냉랭한 기운이 한꺼번에 엄습해 온 것이었다. 일주일이 못 가 외투를 입게 되리라는 말을 들으면서 남행차를 탄 것이었으나 향관에 돌아오니 아직도 날이 더워 낮 동안은 여름 옷으로도 땀이 나는 지경이다. 북위 44도의 하얼빈과 이곳과는 남북의 상거가 머니 절기의 차이인들 심하지 않으랴마는 지금쯤은 그 북방의 변도(邊都)가 완전히 가을철을 잡아들어 얼마나 풍치가 변해졌을까를 상상하면 지난 짧은 여행의 기억이 한층 그리운 것으로 여겨진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옷치장도 바뀌어졌을 것이요, 여인들의 걸음걸이도 달라졌을 것이며, 나뭇..

한국근대문학선: 고도기 (이효석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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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56 2 0 1 2016-09-02
단골로 대놓고 와 주는 굴장수 노인은 벌써 보름이나 전부터 겨울 외투를 입었더니 요새는 어느결엔지 두터운 솜옷으로 변했다. 부엌으로 살며시 돌아와서는 내보이는 굴동이가 여름보다는 선뜻하고 차 보인다. 젓을 담그면 이튿날로 맛이 들던 것이 일주일을 넘어야 입에 맞게 되었다. 솜옷 입은 노인의 굴동이와 함께 가을이 짙었다. 서리 온 뒤의 오랍뜰은 지저분하고 흐린 날이 계속되고 짓밟힌 낙엽이 추접하다. 사무소 앞에서는 묵은 난로의 연통 소제들을 하고 있고 지하실에서는 보일러를 손질하고 검사를 맞는다고 처음으로 불을 땐 것이 경(涇) 4척의 아이디얼식의 가마에 물이 펄펄 끓어 실내가 훈훈하건만 이 3층까지는 아직 증기가 안 온다.

한국근대문학선: 애완 (이효석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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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45 2 0 1 2016-09-02
고도기를 자랑하는 마음과 가령 고양이를 자랑하는 마음과의 사이에는 어떤 차가 있는지는 모른다 . 옛것을 즐겨하게 되는 마음을 그다지 경계하지 않아도 좋은 것은 그것은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 이상의 것이 아니라 ― 도리어 이하의 것임을 안 까닭이다. 수백금의 고물과 한 마리의 얻어 온 고양이와 ― 두 가지가 다 사랑하는 것일 때, 눈앞에서 그 하나를 멸하게 된다면 물론 나는 고물을 버릴 것이다. 고양이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도기를 아낌없이 없애 버릴 것이다. 사실 고양이를 잃어버리느니보다는 만약 그 죽음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도기를 깨뜨려 버렸더면 한다. 고양이를 잃었음은 이 가을의 큰 슬픔이다.

한국근대문학선: 이성간의 우정 (이효석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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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95 2 0 1 2016-09-02
이성 간에는 순수한 우정이 있을 수 없다는 와일드의 말을 한번은 수긍한 적이 있었으나 요새 와서는 반드시 옳다고 만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이성은 언제나 애욕의 대상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우정의 대상이 됨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풋 청년기에는 이성은 온전히 애욕의 권화(權化)로 보이고 욕망의 덩어리로 어리우나 청춘기를 지남을 따라 차차 그런 유물적인 이유를 떠나 때로는 완전히 순결한 마음의 대상으로 비취이게 되는 듯하다. 이런 때 위의 와일드의 말은 반드시 진리가 아니며 여드름 청년의 하소연으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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