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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문학선: 소하일기 (이효석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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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95 2 0 1 2016-09-02
열 시는 되어서 일어나 사랑문을 여니 손님도 잠이 깬 지 오래던지 침대에서 일어난다. 피곤이 풀리지 못한 모양 같다. 간밤에 들어온 것이 세시를 넘은 때 ─ 이것이 이 며칠 동안의 버릇이어서 기침은 자연 열 시를 넘어 아침 시간의 표준이 대개 오정을 기점으로 하게 되었다. Y는 서울서 온 손님. 며칠 동안의 그를 동무해 주기 위해 K와 C와 나 세 사람이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어제는 박물관을 찾았던 것이 월요일이어서 휴관, 그 길로 뱃놀이를 떠난 것이 밤이 되어서야 거리로 들어오게 되어 또 몇 집 돌아다니는 동안에 오전 세 시를 맞이해 집으로 오는 길에 별안간 종록 같은 소낙비를 만나 아래통을 한바탕 적시고 돌아왔다.

한국근대문학선: 야과찬 (이효석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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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57 2 0 1 2016-09-02
9월 3일 아침 호텔에서 역까지 나가는 길이 몹시 차서 나는 차 속에서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연일 비 기운도 있기는 있었으나 별안간 기온이 내려 냉랭한 기운이 한꺼번에 엄습해 온 것이었다. 일주일이 못 가 외투를 입게 되리라는 말을 들으면서 남행차를 탄 것이었으나 향관에 돌아오니 아직도 날이 더워 낮 동안은 여름 옷으로도 땀이 나는 지경이다. 북위 44도의 하얼빈과 이곳과는 남북의 상거가 머니 절기의 차이인들 심하지 않으랴마는 지금쯤은 그 북방의 변도(邊都)가 완전히 가을철을 잡아들어 얼마나 풍치가 변해졌을까를 상상하면 지난 짧은 여행의 기억이 한층 그리운 것으로 여겨진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옷치장도 바뀌어졌을 것이요, 여인들의 걸음걸이도 달라졌을 것이며, 나뭇..

한국근대문학선: 고도기 (이효석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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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66 2 0 1 2016-09-02
단골로 대놓고 와 주는 굴장수 노인은 벌써 보름이나 전부터 겨울 외투를 입었더니 요새는 어느결엔지 두터운 솜옷으로 변했다. 부엌으로 살며시 돌아와서는 내보이는 굴동이가 여름보다는 선뜻하고 차 보인다. 젓을 담그면 이튿날로 맛이 들던 것이 일주일을 넘어야 입에 맞게 되었다. 솜옷 입은 노인의 굴동이와 함께 가을이 짙었다. 서리 온 뒤의 오랍뜰은 지저분하고 흐린 날이 계속되고 짓밟힌 낙엽이 추접하다. 사무소 앞에서는 묵은 난로의 연통 소제들을 하고 있고 지하실에서는 보일러를 손질하고 검사를 맞는다고 처음으로 불을 땐 것이 경(涇) 4척의 아이디얼식의 가마에 물이 펄펄 끓어 실내가 훈훈하건만 이 3층까지는 아직 증기가 안 온다.

한국근대문학선: 애완 (이효석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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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54 2 0 1 2016-09-02
고도기를 자랑하는 마음과 가령 고양이를 자랑하는 마음과의 사이에는 어떤 차가 있는지는 모른다 . 옛것을 즐겨하게 되는 마음을 그다지 경계하지 않아도 좋은 것은 그것은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 이상의 것이 아니라 ― 도리어 이하의 것임을 안 까닭이다. 수백금의 고물과 한 마리의 얻어 온 고양이와 ― 두 가지가 다 사랑하는 것일 때, 눈앞에서 그 하나를 멸하게 된다면 물론 나는 고물을 버릴 것이다. 고양이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도기를 아낌없이 없애 버릴 것이다. 사실 고양이를 잃어버리느니보다는 만약 그 죽음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도기를 깨뜨려 버렸더면 한다. 고양이를 잃었음은 이 가을의 큰 슬픔이다.

한국근대문학선: 이성간의 우정 (이효석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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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407 2 0 1 2016-09-02
이성 간에는 순수한 우정이 있을 수 없다는 와일드의 말을 한번은 수긍한 적이 있었으나 요새 와서는 반드시 옳다고 만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이성은 언제나 애욕의 대상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우정의 대상이 됨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풋 청년기에는 이성은 온전히 애욕의 권화(權化)로 보이고 욕망의 덩어리로 어리우나 청춘기를 지남을 따라 차차 그런 유물적인 이유를 떠나 때로는 완전히 순결한 마음의 대상으로 비취이게 되는 듯하다. 이런 때 위의 와일드의 말은 반드시 진리가 아니며 여드름 청년의 하소연으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한국근대문학선: 산협의 시 (이효석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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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74 2 0 1 2016-09-02
전원풍경을 그린 천연색 연화를 보고 나오니 시골로 가고 싶은 생각이 부쩍 동해진다 아무 . 때 보아도 좋은 것은 초목과 시냇물의 자태이다. 사람이 반세기를 살아도 한 세기를 산대도 이런 것에는 물릴 날이 없으리라. 초목과 시냇물과 산과 들과 바다와 ― 언제나 친하고 정답게 바라보이는 것이다. 싫증나는 것은 사랑의 모임이지 이런 자연물은 아니다. 지난해에는 대동강에서 철벅거리다가 만주를 다녀오느라고 그리운 산과 바다를 찾지 못했으나 올에는 반드시 일년 동안 묵은 정을 풀어 보려고 마음먹고 있다. 몸도 무던히는 상한 것이요, 완전한 휴양의 한 여름을 가지고 싶은 까닭도 있다.

한국근대문학선: 채롱 (이효석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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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68 2 0 1 2016-09-03
우거진 여름 나무 그림자가 아니라 잎이 떨어지고 가지만이 앙상하게 남은 겨울나무의 그림자라는 것을 사람들은 그다지 생각해 본 적이 없을 듯하다. 우거진 나무 그림자라는 것은 으슥한 낮잠의 터는 되어도 겨울나무 그림자의 외롭고 아름다움은 없다. 겨울나무가 푸른 그림자를 처녀설의 흰막 위에 던지고 있는 그림은 쓸쓸하면서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그림을 나는 겨울에 함경선을 지날 때에 가장 흔히 본다. 과수원이나 혹은 낙엽송림에 눈이 쌓여 아직 밟히지 않은 그 백지 위에 나뭇가지 혹은 수풀의 그림자가 푸른 목판화같이 또렷하게 박혀져 있는 풍경은 아무리 상주어도 오히려 부족하다.

한국근대문학선: 구도 속의 가을 (이효석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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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65 2 0 1 2016-09-03
도회에서는 가을은 신경으로부터 드는 듯하다. 아직도 낮 거리는 무덥고 가로수는 물들지 않았건만 그 어디인지 가을을 느끼게 되는 것은 도회인으로서의 민첩한 신경 때문이다. 하기는 초목이 드문 속에서도 언제부터인지 아침 저녁으로 벌레소리가 요란해졌고 과실점에는 분가루를 쓴 포도가 송이송이 탐스럽기는 하다.

한국근대문학선: 인물있는 가을풍경 (이효석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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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81 2 0 1 2016-09-03
삼십 평 가량의 화단이나 씨 값 품값 합해서 십 원 남짓이 먹인 것이 지금 한창 만발한 것을 바라보면 도저히 십 원쯤으로는 바꿀 수 없음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만족을 금할 수 없다. 아름다운 화단은 하루를 보아도 좋고 한달을 두고 보아도 좋으며, 하루를 보면 하루만큼의 보람이 있다. 단 하루를 보더라도 들인 품은 아까울 것이 없다. 초목과 사는 기쁨 ─ 인간사에 지쳤을 때 돌아올 곳은 여기밖에 없는 듯하다. 한 송이 한 송이의 꽃에는 표정과 동감이 있는 듯하다. 일제히 만발하고 보니 제철 제철의 성격을 가릴 수 없기는 하나 실상인즉 각각 철을 생각하고 심은 것이다.

한국근대문학선: 마치 빈민굴에 사는 심정 (이효석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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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73 2 0 1 2016-09-03
작가로서 창작상으로 보다도 먼저 한 사람의 현대인으로서 현대에 대하여서 과연 얼마나 참다운 매혹을 느낄 수 있을까. 터놓고 말하면 커다란 세계적 빈민굴 속에 처하여 있는 셈이 아닌가. 겉으로 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겹겹의 고난의 빈민굴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옷을 헐벗었을 뿐이랴, 마음도 헐벗고 품격조차 남루한 것이다. 이 누굴(陋窟) 속에서 대체 무슨 매혹을 느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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