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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문학선: 산협의 시 (이효석 40)

이효석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262 2 0 1 2016-09-02
전원풍경을 그린 천연색 연화를 보고 나오니 시골로 가고 싶은 생각이 부쩍 동해진다 아무 . 때 보아도 좋은 것은 초목과 시냇물의 자태이다. 사람이 반세기를 살아도 한 세기를 산대도 이런 것에는 물릴 날이 없으리라. 초목과 시냇물과 산과 들과 바다와 ― 언제나 친하고 정답게 바라보이는 것이다. 싫증나는 것은 사랑의 모임이지 이런 자연물은 아니다. 지난해에는 대동강에서 철벅거리다가 만주를 다녀오느라고 그리운 산과 바다를 찾지 못했으나 올에는 반드시 일년 동안 묵은 정을 풀어 보려고 마음먹고 있다. 몸도 무던히는 상한 것이요, 완전한 휴양의 한 여름을 가지고 싶은 까닭도 있다.

한국근대문학선: 채롱 (이효석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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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59 2 0 1 2016-09-03
우거진 여름 나무 그림자가 아니라 잎이 떨어지고 가지만이 앙상하게 남은 겨울나무의 그림자라는 것을 사람들은 그다지 생각해 본 적이 없을 듯하다. 우거진 나무 그림자라는 것은 으슥한 낮잠의 터는 되어도 겨울나무 그림자의 외롭고 아름다움은 없다. 겨울나무가 푸른 그림자를 처녀설의 흰막 위에 던지고 있는 그림은 쓸쓸하면서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그림을 나는 겨울에 함경선을 지날 때에 가장 흔히 본다. 과수원이나 혹은 낙엽송림에 눈이 쌓여 아직 밟히지 않은 그 백지 위에 나뭇가지 혹은 수풀의 그림자가 푸른 목판화같이 또렷하게 박혀져 있는 풍경은 아무리 상주어도 오히려 부족하다.

한국근대문학선: 구도 속의 가을 (이효석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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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56 2 0 1 2016-09-03
도회에서는 가을은 신경으로부터 드는 듯하다. 아직도 낮 거리는 무덥고 가로수는 물들지 않았건만 그 어디인지 가을을 느끼게 되는 것은 도회인으로서의 민첩한 신경 때문이다. 하기는 초목이 드문 속에서도 언제부터인지 아침 저녁으로 벌레소리가 요란해졌고 과실점에는 분가루를 쓴 포도가 송이송이 탐스럽기는 하다.

한국근대문학선: 인물있는 가을풍경 (이효석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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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68 2 0 1 2016-09-03
삼십 평 가량의 화단이나 씨 값 품값 합해서 십 원 남짓이 먹인 것이 지금 한창 만발한 것을 바라보면 도저히 십 원쯤으로는 바꿀 수 없음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만족을 금할 수 없다. 아름다운 화단은 하루를 보아도 좋고 한달을 두고 보아도 좋으며, 하루를 보면 하루만큼의 보람이 있다. 단 하루를 보더라도 들인 품은 아까울 것이 없다. 초목과 사는 기쁨 ─ 인간사에 지쳤을 때 돌아올 곳은 여기밖에 없는 듯하다. 한 송이 한 송이의 꽃에는 표정과 동감이 있는 듯하다. 일제히 만발하고 보니 제철 제철의 성격을 가릴 수 없기는 하나 실상인즉 각각 철을 생각하고 심은 것이다.

한국근대문학선: 마치 빈민굴에 사는 심정 (이효석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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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62 2 0 1 2016-09-03
작가로서 창작상으로 보다도 먼저 한 사람의 현대인으로서 현대에 대하여서 과연 얼마나 참다운 매혹을 느낄 수 있을까. 터놓고 말하면 커다란 세계적 빈민굴 속에 처하여 있는 셈이 아닌가. 겉으로 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겹겹의 고난의 빈민굴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옷을 헐벗었을 뿐이랴, 마음도 헐벗고 품격조차 남루한 것이다. 이 누굴(陋窟) 속에서 대체 무슨 매혹을 느낄 수 있을까.

한국근대문학선: 관북의 평야은 황소가슴 같소 (이효석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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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67 2 0 1 2016-09-03
낡은 자전거를 수리시키고 머리를 한 치 가량이나 무지러 버렸습니다. 바다에 다니려는 준비입니다. 벌판 저편으로 빤히 바라다보이는 바다까지는 자전거로 10분 남짓이 달리면 됩니다. 내의 바람에 잠방이를 입고 긴 양말을 신고 마치 가게의 차인꾼 같은 차림으로 사람들의 체면도 불구하고 맨머리바람으로 날마다 바다에 나갑니다.

한국근대문학선: 해초향기품은 청춘의 태풍 (이효석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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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48 2 0 1 2016-09-04
마을의 소재야 늘 같은 것이지만 시절을 따라 약동하는 듯합니다. 두 살밖에 안되는 농장의 유우(乳牛)는 벌써 새끼를 낳고 남는 우유를 집집마다 배달하게 되었습니다. 양의 우리 안에는 식구가 늘었고 계사(鷄舍)에서는 대낮이면 닭이 알을 낳습니다. 물콩이 장하고 호박꽃이 피고 옥수수 수염이 자랐습니다. 갑진(甲辰) 낮에 붕긋거리던 뜰 앞의 백합이 진홍으로 피어나고 산월(産月)을 한달이나 넘은 태모에게는 드디어 한 무게에 가까운 남아가 탄생하였습니다 ─ 이것이 이 시절의 관북 전원풍경입니다.

한국근대문학선: 인물보다 자연이 나를 더 반겨주오 (이효석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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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61 2 0 1 2016-09-04
뜰에 꽃포기를 말끔히 심고 가지와 토마토까지 가꾸어 놓으면서 꽃도 꽃이려니와 열매는 손에 대지도 못한 채 떠날까 말까 망설이다가 별안간 사정도 생기고 하여 불시에 이곳으로 떠나 왔습니다. 서울에는 들지도 못하고 역의 폼을 밟았을 뿐, 8분 동안에 부랴부랴 경의선에서 함경선을 갈아타고 침대 차로 주을까지 택시로 경성까지 스물여섯 시간 동안 일로 직행하여 왔습니다. 일단 와 놓고 보니 오기를 잘했다고 거듭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근대문학선: 나의 수업시대 (이효석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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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10 2 0 2 2016-09-04
일곱 살 전후하여 가정과 사숙에서 소학을 배울 때 여름 한철이면 운문을 읽으며 오언절구를 짓느라고 애를 썼다. 즉경(卽景)의 제목을 가지고 오로지 경물을 묘사할 적당한 문자를 고르기에만 골몰하였으니 시적 감흥이라는 것보다는 식자(植字)에 여념이 없었던 셈이다. 오늘의 문학에 그다지 도움된 바 못되나 그러나 표현의 선택이라는 것을 배웠다면 이 시절의 끼친 공 일는지도 모른다. 열 살 남짓해서 신소설 추월색을 읽게 되었으니 이것이 이야기의 멋을 알고 문학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 처음인 듯하다. 추운 시절이면 머리맡에 병풍을 둘러치고 어머니와 나란히 누워 추월색을 번갈아 가며 되풀이하여 읽었다.

한국근대문학선: 화춘의 장 (이효석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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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97 2 0 1 2016-09-04
오랑캐꽃이 시들고 개나리와 살구꽃이 한창이요, 이어 벚꽃의 만발이 날을 다투고 있다. 모란대 일대는 관화(觀花)의 준비로 아롱기둥에 등을 달고 초롱을 늘이고 초초한 치장으로 화려한 날을 등대하고 있다. 해마다의 관화의 풍속이 풍류스럽다느니 보다 이제는 벌써 일종의 퇴색적 속취(俗臭)가 먼저 눈에 뜨이게 된 것은 사실이나, 그러나 시절의 꽃을 대할 때 즐겨하고 상줌이 사람의 상정인 이상 역시 일맥의 아치를 부정할 수는 없으며 이 습속을 일률로 야속시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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