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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문학선: 옥랑사 (채만식 42)

마침내 그날로 선용(張[장]先用)은 강보의 불명(不名)을 안아다 아내 서씨에게 부탁한 후 표연히 다시 집을 나가 산으로 들어갔다. 진정 이번은 입산(入山)이었다. 노루재(獐峴[장현]) 산막(山幕)에서 멀지 아니한 백학동의 백련암으로 가, 머리 깎고 혜광(惠光)이라는 법명으로 중이 된 것이었다. 그것이 광무(光武) 4년 경자(庚子) — 서기 1900년…… 선용의 나이 서른한 살 적이었다. 이보다 10년을 앞서 고종(高宗) 28년 신묘(辛卯). 섣달 열나흗날 밤 달이 휘영청 밝고 이윽고 깊은 밤이었다. 과실로, 고기로, 생선으로, 그 밖에 여러 가지 제사장 보기한 것을 멱서리에 넣어 멜빵 걸어 지고 양손에 갈라 들기도 하고 선용은 빠른 걸음을 더욱 급히 하면서 곰의고개(熊峴[웅현])를 넘고 있었다. 내일이..
마침내 그날로 선용(張[장]先用)은 강보의 불명(不名)을 안아다 아내 서씨에게 부탁한 후 표연히 다시 집을 나가 산으로 들어갔다. 진정 이번은 입산(入山)이었다. 노루재(獐峴[장현]) 산막(山幕)에서 멀지 아니한 백학동의 백련암으로 가, 머리 깎고 혜광(惠光)이라는 법명으로 중이 된 것이었다.
그것이 광무(光武) 4년 경자(庚子) — 서기 1900년…… 선용의 나이 서른한 살 적이었다.
이보다 10년을 앞서 고종(高宗) 28년 신묘(辛卯). 섣달 열나흗날 밤 달이 휘영청 밝고 이윽고 깊은 밤이었다.
과실로, 고기로, 생선으로, 그 밖에 여러 가지 제사장 보기한 것을 멱서리에 넣어 멜빵 걸어 지고 양손에 갈라 들기도 하고 선용은 빠른 걸음을 더욱 급히 하면서 곰의고개(熊峴[웅현])를 넘고 있었다. 내일이 부친의 제사였고 그 제사장 보기를 하여 가지고 오는 길이었다.
채만식(蔡萬植 1902-1950) 소설가. 전북 옥구 출생. 호는 백릉(白菱). 서울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학과를 수학했고 <동아일보>, <조선일보>와 <개벽>사의 기자를 역임했다. 그는 1924년 12월호 <조선문단>에 단편 “세길로”로 추천을 받고 등단. 그러나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1930년대에 접어 들어 <조선지광>, <조광>, <신동아> 등에 단편 소설과 희곡 등을 발표하면서 시작. 1932년부터는 '카프'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나 작품 경향으로 한때 그는 동반자 작가로 불린 바 있다. 그의 작품은 초기에는 동반자적 입장에서 창작하였으나 후기에는 풍자적이고 토속적인 면에서 다루어진 작품이 많다. 대표작으로는 장편 소설에 “탁류”(1937), “태평천하”(1937), 그리고 단편 소설에 “레디메이드 인생”(1934), “치숙”(193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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