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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문학선: 모색 (채만식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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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78 2 0 31 2016-09-16
이윽고 몸을 조금 움직거려, 그 우습게 궁상스런 포즈를 한 부분을 헤뜨린다. 생각에 골몰했던 참이지만 춥기도 무던히 추웠었다. 절후로 치면 벌써 춘분이니 봄도 거진 완구해 올 무렵이요 하지만, 진달래꽃머리 요 때면 으례껏 하는 버릇으로 기어코 요란떨이를 한바탕 차례를 잡자는 요량인지 연 사흘째나 날이 개질 듯 말 듯 끄물거리면서 새침한 바람끝이 수월찮이 쌀쌀하다. 마침 날씨가 그러한데다가 또 아침 군불 같은 것은 이름도 곧잘 알 줄 모르는 항용 학생 하숙집의 방 명색이고 보니, 섣불리 한겨울의 제철 추위보다도 오히려 견디어나기가 어려웠다.

한국근대문학선: 흥보씨 (채만식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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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468 2 0 37 2016-09-16
한편짝 손에다는 오리쓰메를 한 개, 다른 한편짝 손에다는 두 홉들이 정종을 한 병…… 이렇게 이야기 허두를 내고 보면 첩경 중산모자에, 깃에는 가화를 꽂은 모닝 혹은 프록코트에 기름진 얼굴이 불콰아하여 입에는 이쑤시개를 물고 방금 어떤 공식 축하연으로부터 돌아오고 계신, 모모한 공직자 영감이나 또는 동네의 유지명망가씨 한 분을 소개하는 줄로 선뜻 짐작을 하기가 십상이겠지만, 실상인즉 그런 게 아니라 바로 저 ××심상소학교의 소사(小使) 현서방의 거동인 것입니다.

한국근대문학선: 이런 남매 (채만식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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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98 2 0 32 2016-09-16
하학종 소리가 때앵땡, 아래층에서 울려 올라온다. 사립으로 된 ××학교 육학년 교실이고, 칠판에는 분필로 커다랗게 다섯 자만 “고결한 정신……” 교편을 뒷짐져 들고 교단 위를 오락가락하던 영섭은, 종소리에 바쁘게 교탁 앞에 가 멈춰서면서, 잠깐 그쳤던 말을 다시 이어, 일단 높은 음성으로 “……그러므로 사람이라껏은……” 하고 대강대강 거두잡아 결론을 맺기 시작한다. “어떠한 경우를 당할지라도 그 고결한 정신 즉 높고 깨끗한 정신을 잊어서는 안된단 말야……”

한국근대문학선: 상경반절기 (채만식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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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98 2 0 32 2016-09-16
정거장의 잡담이 우선 가량도 없었다. 신문에도 종종 나고, 들음들음이 들으면 차가 늘 만원이 되어서 누구든 서울까지 두 시간을 꼬바기 서서 갔었네, 어느 날인가는 오십 명이라더냐 칠십 명이라더냐가 표는 사고서도 차에 다 오르지를 못해서 역엣 사람들과 시비가 났었더라네 하여, 막연히 그저 그런가 보다고는 짐작을 했어도 설마 이대도록이야 대단한 줄은 딱이 몰랐었다. 백 명이라니, 훨씬 이백 명도 더 되면 더 되었지 못되질 않아 보인다. 하여간 이십 평은 실한 대합실 안이 꽉 들어차고서도 넘쳐서 개찰구의 목책앞으로, 드나드는 정문 바깥으로 온통 빡빡하다.

한국근대문학선: 순공있는 일요일 (채만식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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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37 2 0 31 2016-09-16
일요일이라서 그쯤만 믿고 열시가 가깝도록 늦잠을 자다가, 어린 놈과 안해의 성화에 견디다 못해 필경 끄들려 일어나다시피 일어나서는 소쇄를 마친 후 마악 조반상을 물린 참이었었다. 다섯 살박이 어린 놈은, 새로 장만한 모자야 구두야 양복 등속을, 죄다 벌써 떨쳐 입고는 물병까지 둘러메고, 문간으로 마당으로 우줄우줄 뛰어다니면서 나더러도 어서 얼른 채비를 차리고 나서라고 재촉을 해쌓는 것이었다. 안해는 또 안해대로 부엌에서, 마지막 내가 물린 밥상을 대강 치우느라고 재빠르게 서두는 모양이더니, 이윽고 행주치마에 손을 씻으면서 나오는데, 입은 연방 벙싯벙싯 다물어지질 않았다.

한국근대문학선: 젊은 날의 한구절 (채만식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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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41 2 0 22 2016-09-16
꽃은 좋았어도, 그러나 비바람 많고 노 운하 자욱하여 한갓 개운한 맛이 덜하던 4월의 봄 한철은 어느덧 창경원의 그 번화하고도 어수선스러운 야앵분배와 함께 마지막 다 지나고 시방은 5월…… 씻은 듯 닦은 듯 터분하던 것이 말끔하니 죄다 가시고 나서, 저 커다랗게 머리 위에서 너그러이 홍예(虹霓)를 기울인 정갈한 창공이, 아낌없이 내리는 살진 햇살이, 내리는 햇살을 제물에 날을 삼아 결 보드랍게 대기를 비단짜며 있는 올올의 미풍이, 싱싱한 신록이, 이 모두가 한 가지로 맑고 쇄려만 하여, 계절은 바야흐로 새 정신이 들고 느끼느니 두루 상쾌한 그 5월이던 것이다.

한국근대문학선: 근일 (채만식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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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60 2 0 29 2016-09-16
새벽 다섯시까지(어제 밤 여덟시부터 꼬바기) 앉아서 쓴 것이 장수로 넉장, 실 스물일곱 줄을 얻고 말았다. 그 사이, 노싱을 한 봉 반씩 네 차례에 도합 여섯 봉을 먹었다. 간밤에 새로 뜯어논 스무 개 들이 가가아끼 한 곽이 빈탕이 되었다. 재털이가 손을 못 대게 낭자하다. 성냥 한 곽을 아마 죄다 그었나 보다. 하루 평균 치면 네 개피나 다섯 개피가 배급 표준이라는데, 그러니 조선도 성냥 전표 제도가 생겼다가는 큰 야단이 나겠다.

한국근대문학선: 차중에서 (채만식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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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629 2 0 35 2016-09-17
안해를 데리고 모처럼 고향엘 다니러 내려가는 길이었다. 밤 열한시 이십분의 목포행(木浦行) 직통열차는 다른 간선열차와 마찬가지로 언제고 옆구리가 터지도록 만원 이상인 것이 보통인데, 맨 앞칸인 소치도 있겠지만 그렇더라고 승객이 도리어 모자랄 지경으로, 많이 좌석이 남는 것은 자못 이외가 아닐 수 없었다. 군데군데 그래서 벌써, 이인분의 한 걸상을 혼자 차지하고는 편안히 누워, 일찌감치 잠을 청하는 사람도 있고 하여, 실없이 때아닌 원시(原始)(?)풍경을 구경하겠었다.

한국근대문학선: 병이 낫거든 (채만식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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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93 2 0 34 2016-09-17
성하지 못한 몸이라, 업순이는 가을 새벽의 쌀쌀한 바깥 바람기가 소스라치게 싫어, 연해 어깨와 몸을 옴츠린다. 콜록콜록 기침이 나오고. 가방이, 하찮은 것 같더니(그도 원기가 쇠한 탓이겠지만) 들고 걷기에 무척 힘이 부쳤다. 훤하니 빈 공장 마당엔 이편짝 창고 앞으로, 간밤에 짐을 냈는지 펐는지 미처 쓸지 앉은 채 뽀오얗게 된서리가 앉은 새끼 토막이 낭자히 널려 있다. 그 차가운 서릿발이, 가뜩이나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듯 업순이는 얼른 외면을 한다. 외면하는 눈 바로는 저기만치 나란히 선 쌍굴뚝에서 시꺼먼 연기가 뭉클뭉클 소담스럽게 솟아올라, 불현듯 푸근한 공장 안이 생각힌다.

한국근대문학선: 심봉사 (채만식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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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87 2 0 17 2016-09-17
하늘(天上[천상])도 아니요, 땅(地上[지상])도 아니요 한 회색 허공이었다. 회색 옷을 입고, 회색 살빛을 하고, 회색 표정을 한 늙은 양주가 나란히 앉아 있다. 인간세계의 운명을 맡아보는 신(神) 양주였다. 노구(老嫗)가 커다랗게 하품을 한다. 영감이 따라 커다랗게 하품을 한다. “아이, 심심해!” 노구가 그런다. “어이, 심심해!” 영감이 맞장단을 친다. 노구가 말한다. “무어 구경거리 좀 없나!” “요새는 별로……” “하나 좀 꾸며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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