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해도 아니 뜨고 비도 아니 온다. 날은 바람 한점 없이 숨이 탁탁 막히게 무덥다.
멀리 건너다보이는 마포(麻浦) 앞 한강도 물이 파랗게 잠겨 있는 채 흐르지 아니한다. 강 언저리로 동리 뒤 벌판으로 우거진 숲의 나무들도
풀이 죽어 조용하다. 지구가 끄윽 멈춰 선 것 같다.
내려다보이는 행길로 마포행 전차가 따분하게 움직거리고 기어가는 것이 그래서 스크린 속같이 아득하다.
영주는 방 윗문 바로 마루에 앉아 철 아닌 검정 빨래를 만지고 있다. 빨래에 물을 들이느라고 손에도 시꺼멓게 물이 들었다. 어깨 나간
인조항라적삼이 땀이 배어 등에 가 착 달라붙었다.
채만식(蔡萬植 1902-1950) 소설가. 전북 옥구 출생. 호는 백릉(白菱). 서울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학과를 수학했고 <동아일보>, <조선일보>와 <개벽>사의 기자를 역임했다. 그는 1924년 12월호 <조선문단>에 단편 “세길로”로 추천을 받고 등단. 그러나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1930년대에 접어 들어 <조선지광>, <조광>, <신동아> 등에 단편 소설과 희곡 등을 발표하면서 시작. 1932년부터는 '카프'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나 작품 경향으로 한때 그는 동반자 작가로 불린 바 있다. 그의 작품은 초기에는 동반자적 입장에서 창작하였으나 후기에는 풍자적이고 토속적인 면에서 다루어진 작품이 많다. 대표작으로는 장편 소설에 “탁류”(1937), “태평천하”(1937), 그리고 단편 소설에 “레디메이드 인생”(1934), “치숙”(193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