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1767

숙경의 경우 (한국근대문학선: 이무영 03)

이무영 | 도디드 | 1,000원 구매
0 0 551 2 0 81 2016-09-29
잘못을 저질렀다고 깨달은 순간 숙경은 현의 뺨을 찰싹 후려갈기고 말았다. 순간의 발작이었다. 아니 착각이었다. 만일에 때린다면 현이 숙경이를 때렸어야 할 것이었다. 선손을 건 것도 숙경이었다. 오늘 현한테 그럴 의사가 없었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숙경이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아니 오늘뿐이 아니라, 현은 그런 생각을 감히 품어본 일이 없는 사람이다. 현이 숙경을 사랑하지 않아서는 아니다. 살뜰히 사랑한다. 숙경이가 만일에 사랑의 대가로서 현이 가지고 있는 일체를 요구했대도 감격해서 바쳤을 현이었다. 이 사랑의 대가란 반드시 숙경의 전부를 의미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시신과의 대화 (한국근대문학선: 이무영 04)

이무영 | 도디드 | 1,200원 구매
0 0 307 2 0 51 2016-09-29
풀이 죽어서 병원 문을 나오던 장 교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꿈이 아닌가 해서다. 간밤 꿈에도 병원 문밖을 나오려니까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어젯밤 꿈처럼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소나기는 아니었지만 눈이 쏟아진대도 망발이 아닐 섣달에 비가 오고 있는 것이다. 순간 장 교수는 간밤 꿈의 연장인 것처럼 느끼어졌다. 그러기를 바라서 일지도 모른다. 사실 꿈이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그는 병원 간판을 다시 한번 돌아다보았다. 역시 틀림없는 김 내과다. 꿈에도 그랬었다. 암이라니, 너무도 뜻밖이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어서였다. 그럴 수가 있으랴, 시체와 삼 년을 산 자기한테 또 하나의 시체가 안겨질 수는 없다 싶었던 것이다.

안달소전 (한국근대문학선: 이무영 05)

이무영 | 도디드 | 800원 구매
0 0 302 2 0 72 2016-09-29
권안달도 이 동네의 다른 열세 집과 같이 단양댁의 논 몇 마지기와 밭 몇뙈기를 얻어부치어 권안달의 말을 본다면 그 덕으로 거미가 입에 줄을 못치고 있는 셈이다. 원래가 크지도 못한 키에다가 양쪽 어깨가 차악 내려앉고 그나마도 상반신에 비해서 하지가 짧은 편이라서 얼핏 보기에는 어딘지 생리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니 자연 얼굴도 큰 편이 못되고 햇볕에 탄 황토색 살빛과 유난히 노란 수염이 그것도 이면치레로 몇가닥 나서 처음 보는 사람한테 무던히 옹졸한 인상을 준다. 만일 그의 눈이 가로 찢어지지만 않았더라도 그 왕방울 같은 두 눈이 초라한 체구와 옹졸한 얼굴이 주는 인상을 어느 정도까지는 보받침을 해주었을는지도 모른다.

연사봉 (한국문학근대선: 이무영 06)

이무영 | 도디드 | 800원 구매
0 0 352 2 0 69 2016-09-29
자동차가 한강 철교에 들어섰을 때가 정각 여덟시 오분 전이었으니까 틀림없는 정각인데 내려보니 학생들은 간데가 없다. 혹시 시계가 쉬지나 않았나 싶어 귀에다 대어보기도 했으나 째깍째깍 영락없이 잘 간다. 그래도 의심할 것은 시계밖에 없는 것이 아무리 지금 대학생들이라 하지마는 명색이 선생이라고 하는 사람을 하이킹 가자고 끌어내어놓고 단 한 녀석도 코빼기를 보이지 않는달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태수는 버스를 기다리는 자기 나이가 되었음직한 중년 사나이를 골라서 자기 시계와 맞추어도 보았으나 여덟시는 정녕코 여덟시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자기 눈을 또 의심해보는 도리밖에 없다. 마흔여섯이라는 나이도 있었거니와 과거에는 중학교 교사를 십 년, 해방 후에는 대학의 생물학 교..

용자소전 (한국근대문학선: 이무영 07)

이무영 | 도디드 | 1,000원 구매
0 0 348 2 0 88 2016-09-29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경구(警句)가 책 속에 씌어 있기나 한 것처럼 초록빛 부사견을 늘인 책장에서 책을 나르기 시작한 후로의 용자는 말이 적어졌다. 원래 말이 적은 아이고 나이보다는 조숙하여서 철학자같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용자라 단 하나뿐인 오랍 동생이면서도 일년 가야 서로 이야기하는 일도 없는 우리 남매였다. 나는 용자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어떠한 취미를 갖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언젠가 나의 책꽂이에서 하이네니 바이런이니 하는 시집이 없어지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는데 그것이 용자가 빼가는 것인 줄을 알고서야 나는 용자가 문학에 취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었다―그러나 웬일인지 그런 후로는 원래 말이 적은 아이기는 하지마는 도통 집안에서도 입을 벌리..

우심 (한국근대문학선: 이무영 08)

이무영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72 2 0 74 2016-09-29
“애 어마, 오늘 소죽엔 콩깍지나 좀 넣고 끓여라.” 하고 주워온 벼이삭을 고르고 있던 오구랑이 할머니가 여물깍지 광 앞으로 삼태기를 가지고 가는 며느리를 보고 광목 짜개는 소리를 친다. 나는 구유에 괴었던 턱을 번쩍 들면서 내가 잘못 듣지나 않았는가 하고 자기의 귀를 의심하였다. 그러고는 나 자신의 귀가 거짓말한 것이 아닌 것을 다지고는 ‘후유’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밀짚 위에 네 굽을 꿇으면서 중얼거리었다. “이런 빌어먹을 놈의 신세가…” 죽에다 깍지나 콩을 넣으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지를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모 (한국근대문학선: 이무영 09)

이무영 | 도디드 | 800원 구매
0 0 690 2 0 70 2016-09-29
유모 제도(?)에 대한 아무런 비판도 없이 나는 유모를 두었다. 아내한테 쪼들리는 것도 쪼들리는 것이려니와 첫째 나 자신이 아이한테 볶여서 못살지경이었다. 어떤 편이냐면 아내는 사대사상(事大思想)의 소유자였다. 아내 자신은 자기는 그렇게 크게 취급하지도 않는 것을 내가 되게 크게 벌여놔서 자기가 사대주의자가 되는 것처럼 푸우푸우 하지마는 입덧이 났을 때부터 벌써 산파 걱정을 하는 것이라든가, 아직 피가 엉기지도 않았을 때건만 아이가 논다고 수선을 피우는 것이라든가, 당신 친구 부인에 혹 산파가 있는지 알아 보라고 아침마다 한마디씩 주장질을 하는 것이라든가, 그것을 나이 어린 탓으로 돌리면 못 돌릴 것도 없기는 하지마는 어쨌든 사대주의자라는 것만은 면할 도리가 없었다.

한국근대문학선: 영서의 기억 (이효석 53)

이효석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438 2 0 27 2016-09-04
작은 글에 서문의 구절조차 붙임이 객쩍은 짓 같으나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나의 고향이 어디인가를 규정하여 보아야겠기에 이 번거로운 짓을 굳이 하려 한다. 고향에 관한 시절의 글의 부탁을 맡을 때마다 나는 언제든지 잠시간은 어느 곳 이야기를 썼으면 좋을까를 생각하고 망설이고 주저한다. 나의 반생을 푸근히 싸주고 생각과 감정을 그 고장의 독특한 성격에 맞도록 눅진히 길러 준 고향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인에게는 고향의 관념이 거개는 희박하고 찾아야 할 진정한 고향을 잃어버리기는 하였다. 세계주의의 세례를 받은 까닭도 있거니와 고향이 모두 너무도 초라한 까닭이다.

한국근대문학선: 그때 그 항구의 밤 (이효석 55)

이효석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270 2 0 13 2016-09-04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언제든지 마음속에 쉽게 떠오르는 그런 선명하고 충동적인 추억은 평생에 극히 적을 듯하다. 지난 생활과 기억이란 잊혀지기 쉬운 것이며 ─ 하기는 커다란 잊음 없이 인생은 살 수 없는 것이나 ─ 기쁨도 괴롬도 봉변도 흥분도 마음속에 오래 묵지는 않는다. 지난날의 일기장이 가끔 한 개의 발견이 되고 새로운 인생의 창조같이 보이고 신선한 흥분을 가져옴은 그런 까닭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지금 공칙히 항구의 일기장이 없다. 추억의 제목으로 곰곰이 가방 속을 들칠 수밖에는 없다. 풀숲의 밤송이같이 보살펴 찾아야만 눈에 뜨인다.

한국근대문학선: 뛰어들 수 없는 거울 속 세계 (이효석 56)

이효석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419 2 0 19 2016-09-04
호화로운 저택의 객실 같기도 하고 만 톤급 기선의 살롱 같기도 한 커다란 사치한 방이나 손님이 아닌 나는 어떻게 하여 그 속에 뛰어 들어갔는지 물론 모른다 괴이한 것은 . 방 한편 벽이 전면 거울로 된 것이다. 거울이면서도 맞은편 벽과 방안을 비취어 내는 법 없이 일면 희고 투명한 거울 ⎯ 그러면서도 사람의 자태만은 비취어 주는 일종 무한의 세계로 통하는 야릇한 문과도 같은 그런 거울이었다. 거울 속에 뚜렷이 솟아 선 자신의 자태를 눈부신 느낌으로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그 넓은 스크린 속에는 돌연히 한 사람의 소녀가 어디선지 나타났다.

㈜유페이퍼 대표 이병훈 | 316-86-00520 | 통신판매 2017-서울강남-00994 서울 강남구 학동로2길19, 2층 (논현동,세일빌딩) 02-577-6002 help@upaper.net 개인정보책임 : 이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