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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한국근대문학선: 이무영 16)

이무영 | 도디드 | 800원 구매
0 0 331 2 0 72 2016-09-30
“얘들아, 오늘은 좀 어떨 것 같으냐?” 부엌에서 인기척이 나기만 하면 박 과부는 자리 속에서 이렇게 허공을 대고 물어보는 것이 이 봄 이래로 버릇처럼 되어 있다. 어떨 것 같으냐는 것은 물론 날이 좀 끄무레해졌느냐는 뜻이다. 다른 날도 아닌 바로 한식날 시작을 한 객쩍은 비가 이틀이나 줄기차게 쏟아진 이후로는 복이 내일 모레라는데 소나기 한 줄기 않던 것이다. 이러다가는 못자리판에서 이삭이 날 지경이다. 여느 해 같으면 지금 한창 이듬매기다, 피사리다, 매미충이 생겼느니 어쩌니 할 판인데 중답들도 아직 모를 내어볼 염량도 못하고 있다.

모우지도 (한국근대문학선: 이무영 17)

이무영 | 도디드 | 600원 구매
0 0 318 2 0 70 2016-09-30
“아 그래, 저눔에 여편네가 언제까지나 계집애만 끌어안구 앉었을 텐가! 그깐 눔에 계집애 하나 뒈지믄 대수여!” “아따, 계집앤 자식이 아닌가베.” “아, 썩 못 나와! 그놈에 계집앨 갖다가…” 첨지는 고래고래 소리를 친다. 그래도 안차기로 유명한 첨지 처는, “흥, 왜 자식새끼가 깨벌렌 줄 아나. 입때껏 잘 길러가지구 왜 그런 말을 하누.” 첨지 처는 바로 작년 가을 깨밭을 매다가, “이 육시처참을 할 눔!”

청개구리 (한국근대문학선: 이무영 18)

이무영 | 도디드 | 600원 구매
0 0 411 2 0 82 2016-10-02
지겟작대기만큼씩이나 한 구렁이가 득실거리는 지붕을 타고 떠내려가며 ‘사람 살리라’고 고함고함 치다가 잠을 깨고 나니 정말 억수처럼 비가 쏟아진다. 얼마를 오려는지 천둥을 한다 번개를 친다 호들갑을 떨고 야단이다. 첨지는 벌떡 일어나는 길로 문을 열어젖히었다. 어느 때나 되었는지 세상은 괴괴하고 오직 빗소리만이 억척스럽다. “허, 이거 너무 과히 오시는군.” 첨지는 입맛을 쩍쩍 다시며 누웠던 머리맡에서 대와 쌈지를 더듬는다. 담배를 한 모금 빨고는 또 한마디 되풀이한다.

굉장 씨 (한국근대문학선: 이무영 19)

이무영 | 도디드 | 800원 구매
0 0 331 2 0 63 2016-10-02
버젓한 성명을 가졌건만 누가 어째서 지은지도 모르는 별명이 본명보다도 더 유명한 사람이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한둘씩은 으레껏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별명이란 대개 흉허물없는 사이거나 희영수를 할 때나 씌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굉장 씨는 특별한 관계나 필요가 없는 사람은 그의 본명 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정도다. 상·하동 삼백여 호에 굉장으로 통할 뿐만 아니라 삼십리나 떨어져 있는 신읍에서도 구읍(舊邑) 박굉장이라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군수고 서장이고 세무서며 조합, 우편국, 소위 관공서 직원 쳐놓고는 구읍 박굉장 댁에를 안 와본 사람이 없으니까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마는 읍내의 웬만한 상점 치부책에도 그는 박굉장으로 적혀 있다.

나랏님 전 상사리 (한국근대문학선: 이무영 20)

이무영 | 도디드 | 800원 구매
0 0 326 2 0 68 2016-10-02
나랏님 전 상사리 이 사람으로 논지할 지경이면 충청북도 신니면 용동 삼백삼십 번지 삼 호에 사는 김춘성이란 사람이여유 . 나이는 쉰다섯 살이구 요새 시체 국문은 잘 몰라도 옛날 언문은 그럭저럭 뜯어볼 줄도 알구 더러 끼적거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나랏님께 좀 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도 없구 쇠발개발 그린 것을 뜯어보기 어려우실 줄 압니다만 배운 재주가 그뿐이니 할 수 없십니다. 용서해주시유. 말씀할 것이란 다른 게 아니라 이렇십니다.

기우제 (한국근대문학선: 이무영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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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61 2 1 66 2016-10-02
너무도 가뭄이 심해서 기우제를 올리기도 했는데 마침 일요일이고 하니 놀러오라는 박 면장의 초청을 받은 배 해군 장교 부처가, 농민 작가니 당신도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권해 왔다. 나도 내 아내를 동반하고 박면 기우제 장소에 이르니 뜻밖에도 논 가운데 있는 우물가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기우제는 대개 산 아니면 천변이 었던지라 까닭을 물었더니 박 면장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안에 나오는 사람의 이름은 박 면장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위에서 와 아래에서 한 자씩 따서 지은 가명이다.

아침 (한국근대문학선: 이무영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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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47 2 0 67 2016-10-02
“아쉰 대루 언문이나 깨쳐둘 것을…” 이틀에 한 번씩 오는 늙은 우체부한테서 편지를 받아든 윤 서방은 뒤늦게야 이런 후회를 해본다. 어쩌다 보니 반절도 못 깨우친 채로 환갑을 바라보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그까짓 언문이 무슨 글값에나 가느냐는 되잖은 생각에 남들이 배울 때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었다. 그러다가 남들이「토끼전」이니「심청전」이니 하는 이야기책을 보고 구수하니 이야기하는 것을 듣다가는 언문글도 아쉬운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때는 이미 머리가 커져서 새삼스러이 언문을 배우기가 열쩍은 생각이 들어서 이래저래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이단자 (한국근대문학선: 이무영 10)

이무영 | 도디드 | 800원 구매
0 0 308 2 0 66 2016-09-29
네로의 포악성에 준은 걷잡을 수 없는 흥분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는 주먹을 쥐었다폈다 하고 있었다. 섰다앉았다 한 것도 몇 번인지 모른다. 일어서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그는 자기 뒤에 수백 명 관중이 앉아 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양쪽 팔꿈받이를 짚고 엉거주춤 선채였었다. 뒤에서 앉으라고 소리를 친다. 그는 그 소리를 듣고야 주저앉던 것이었다. 그러나 잘못했다는 의식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앉으라는 고함소리가 나니까 무섭게 찔금해서 주저앉는 것을 보면 그가 자기의 행동에 대한 판단력이 있었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았다.

산장소화 (한국근대문학선: 이무영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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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76 2 0 74 2016-09-29
일년 가야 귀떨어진 동전 한푼 생산이 없이 곶감 꼬치 빼어먹듯 쏙쏙 빼어먹던 그들이 Y씨의 알선으로 시골로 옮아앉기로 결정하자 마침 얌전한 집이 서울서도 멀지 않은 G역에 났단 말을 듣고는 그날로 집을 보러 갔던 어머니는 입에 침이 마르게 집과 집주인을 함께 추켜세웠다. 물론 탐탁하게 생각지 않으시려니 하고 은근히 걱정하던 그들은 되레 어머니 태도에 적이 놀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울서도 웬만한 집은 거들떠보시지도 않는 어머니에게 아무리 시골집이 묘하기로서니 어머니 눈에 찰 리가 만무했던 까닭이다.

소녀 (한국근대문학선: 이무영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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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62 2 0 61 2016-09-29
어서 겨울이 왔으면 하는 것이 소녀의 기원이었다. 하루에 밤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왔으면 했다. 그래서 어서 이 달이 가고 새달이 오고, 그 새달이 또 가고 했으면 싶었다. 눈이 펑펑 쏟아지고 바람이 앵앵 불어대고 물이 꽝꽝 얼어붙고 했으면 오죽 좋으랴 했다. 그렇다고 소녀가 다른 아이들처럼 썰매를 타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얼음을 지치고 싶어서도 아니다. 맞은편 과장 집 딸처럼 하이얀 털외투가 생겨서 그것을 입어지자고 겨울을 그렇게 골똘하게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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