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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심 (한국근대문학선: 이무영 08)

이무영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86 2 0 74 2016-09-29
“애 어마, 오늘 소죽엔 콩깍지나 좀 넣고 끓여라.” 하고 주워온 벼이삭을 고르고 있던 오구랑이 할머니가 여물깍지 광 앞으로 삼태기를 가지고 가는 며느리를 보고 광목 짜개는 소리를 친다. 나는 구유에 괴었던 턱을 번쩍 들면서 내가 잘못 듣지나 않았는가 하고 자기의 귀를 의심하였다. 그러고는 나 자신의 귀가 거짓말한 것이 아닌 것을 다지고는 ‘후유’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밀짚 위에 네 굽을 꿇으면서 중얼거리었다. “이런 빌어먹을 놈의 신세가…” 죽에다 깍지나 콩을 넣으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지를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모 (한국근대문학선: 이무영 09)

이무영 | 도디드 | 800원 구매
0 0 702 2 0 70 2016-09-29
유모 제도(?)에 대한 아무런 비판도 없이 나는 유모를 두었다. 아내한테 쪼들리는 것도 쪼들리는 것이려니와 첫째 나 자신이 아이한테 볶여서 못살지경이었다. 어떤 편이냐면 아내는 사대사상(事大思想)의 소유자였다. 아내 자신은 자기는 그렇게 크게 취급하지도 않는 것을 내가 되게 크게 벌여놔서 자기가 사대주의자가 되는 것처럼 푸우푸우 하지마는 입덧이 났을 때부터 벌써 산파 걱정을 하는 것이라든가, 아직 피가 엉기지도 않았을 때건만 아이가 논다고 수선을 피우는 것이라든가, 당신 친구 부인에 혹 산파가 있는지 알아 보라고 아침마다 한마디씩 주장질을 하는 것이라든가, 그것을 나이 어린 탓으로 돌리면 못 돌릴 것도 없기는 하지마는 어쨌든 사대주의자라는 것만은 면할 도리가 없었다.

한국근대문학선: 영서의 기억 (이효석 53)

이효석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449 2 0 27 2016-09-04
작은 글에 서문의 구절조차 붙임이 객쩍은 짓 같으나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나의 고향이 어디인가를 규정하여 보아야겠기에 이 번거로운 짓을 굳이 하려 한다. 고향에 관한 시절의 글의 부탁을 맡을 때마다 나는 언제든지 잠시간은 어느 곳 이야기를 썼으면 좋을까를 생각하고 망설이고 주저한다. 나의 반생을 푸근히 싸주고 생각과 감정을 그 고장의 독특한 성격에 맞도록 눅진히 길러 준 고향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인에게는 고향의 관념이 거개는 희박하고 찾아야 할 진정한 고향을 잃어버리기는 하였다. 세계주의의 세례를 받은 까닭도 있거니와 고향이 모두 너무도 초라한 까닭이다.

한국근대문학선: 그때 그 항구의 밤 (이효석 55)

이효석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283 2 0 14 2016-09-04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언제든지 마음속에 쉽게 떠오르는 그런 선명하고 충동적인 추억은 평생에 극히 적을 듯하다. 지난 생활과 기억이란 잊혀지기 쉬운 것이며 ─ 하기는 커다란 잊음 없이 인생은 살 수 없는 것이나 ─ 기쁨도 괴롬도 봉변도 흥분도 마음속에 오래 묵지는 않는다. 지난날의 일기장이 가끔 한 개의 발견이 되고 새로운 인생의 창조같이 보이고 신선한 흥분을 가져옴은 그런 까닭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지금 공칙히 항구의 일기장이 없다. 추억의 제목으로 곰곰이 가방 속을 들칠 수밖에는 없다. 풀숲의 밤송이같이 보살펴 찾아야만 눈에 뜨인다.

한국근대문학선: 뛰어들 수 없는 거울 속 세계 (이효석 56)

이효석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430 2 0 19 2016-09-04
호화로운 저택의 객실 같기도 하고 만 톤급 기선의 살롱 같기도 한 커다란 사치한 방이나 손님이 아닌 나는 어떻게 하여 그 속에 뛰어 들어갔는지 물론 모른다 괴이한 것은 . 방 한편 벽이 전면 거울로 된 것이다. 거울이면서도 맞은편 벽과 방안을 비취어 내는 법 없이 일면 희고 투명한 거울 ⎯ 그러면서도 사람의 자태만은 비취어 주는 일종 무한의 세계로 통하는 야릇한 문과도 같은 그런 거울이었다. 거울 속에 뚜렷이 솟아 선 자신의 자태를 눈부신 느낌으로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그 넓은 스크린 속에는 돌연히 한 사람의 소녀가 어디선지 나타났다.

한국근대문학선: 모기장 (이효석 57)

이효석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246 2 0 15 2016-09-04
수필의 출제는 득실이 상반일 것 같다. 같은 과제로도 사람에 따라서는 일어천금(一語千金)의 값있는 좋은 이야기를 가진 이도 있을 것이요, 반대로 휴지통에 넣기에 마땅한 변변치 못한 재료밖에는 가지지 못한 이도 있을 것이니까. 「모기장」⎯ 호개(好箇)의 제목임에도 공교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지지 못하였음을 불행으로 여긴다.

한국근대문학선: 6월에야 봄이 오는 북경성의 춘정 (이효석 58)

이효석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63 2 0 16 2016-09-04
북위 42도와 한류의 냉대에서는 봄은 3월부터가 아니라 6월부터 시작된다. 저능한 늦둥이가 훨씬 자라서야 겨우 입을 열고 말을 번지듯이 철 늦은 시절은 6월에 들어서야 비로소 입을 방긋이 열고 부드러운 정서를 표백한다. 3월에는 오히려 눈이 오고, 4월에는 물오른 능금나무 가지가 물오리 발같이 빨갛고, 5월에는 잎새 없는 진달래꽃이 산을 불긋불긋 점찍고, 6월에 들어서서야 처음으로 들은 초록으로 덮이어 민들레 오랑캐꽃 꽃다지도 활짝 피고 능금나무와 앵도나무에 잎이 돋고 장다리꽃이 벌판에 노랗다.

한국근대문학선: 삽화 (채만식 01)

채만식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252 2 0 19 2016-09-14
노상 어리석은 소견일는지 몰라도, 나는 집이라는 걸 두고 생각을 그렇게 하기는 그때나 시방이나 일반이다. 그만큼 집은 매양 나를 성가시게 하고, 마음 번거롭게 하고 하기를 마지않는다. 방구들이 조금 꺼진 자리를, 섣불리 뜯었다. 큰 덤터기를 만났다. 어떻게 된 셈인지, 손바닥만하던 구멍이, 손을 댈수록 자꾸만 커져가는 것이다. 손바닥 하나만 하던 것이 둘만 해지더니, 그 다음 셋만 해지고, 셋만 하더니 다시 넷만 해지고…… 한정이 없으려고 한다. 잘못하다 구들을 온통 다 뜯게 될까보다. 직경 한 자 둘레나 뻥하니 시꺼먼 구멍을 뚫어놓고는 그야말로 속수무책, 검댕 묻은 손을 마주잡고 앉아서, 어찌하잔 말이 나지 않는다. 웬만큼 아무렇게나 막는 시늉을 하자니 번연히 그 언..

한국근대문학선: 과도기 (채만식 02)

채만식 | 도디드 | 3,000원 구매
0 0 283 2 0 16 2016-09-14
이처럼 생각을 하면 할수록 짜증이 나고 그를 따라 자기의 안해가 얄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밤은 이미 훨씬 깊었고 창 밖에서는 거친 바람소리가 자주 들려왔다. 때는 아직 삼월 초생이라 문틈으로 스며들어오는 바람끝이 몹시 싸늘하였다. 방 안은 등불을 꺼버렸으므로 굴속같이 컴컴하여 서로서로의 얼굴도 보이지 아니하였다. 봉우는 찬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느라고 덮었던 이불을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똘똘 말아 덮었다. 한즉, 한참만에 방바닥에서는 따스한 기운이 다시 찬 이불 속으로, 스며올라와 그는 포근한 쾌감을 느꼈다. 이 포근포근한 쾌감에 싸인 그의 육체는 다시 자기의 아내인 이성의 불안스러운 숨소리, 그윽한 살냄새, 더우기 머리털에서 우러나는 기름 냄새의 자극을..

한국근대문학선: 불효자식 (채만식 03)

채만식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429 2 0 25 2016-09-14
대지 위에 벌여놓인 (大地) 모든 물건들을 꿰뚫을 듯이 더운 불볕이 내려쪼이는 삼복 여름 어느 오후였었다. 나는 학교에서 하학을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오다가 마침 주인집으로 들어가는 길 어귀에서 칠복(七福)의 어머니 최씨부인을 문득 만났다. 나는 그이를 보자 곧 ‘칠복의 소식을 듣고 올라온 것이다’고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칠복의 얼굴과 그 다리를 걷어치고 앉아 아편주사를 하던 모양이며, 까치 뱃바닥 같은 흰 손이 다시 서대문 감옥의 우중충한 붉은 담과 그 안에서 누렁 옷 입고 쇠사슬 차고 노역(勞役)을 하고 있을 그의 죽어가는 듯할 형상이며-그에 대한 여러 가지 일을 주마등과 같이 연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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