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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문학선: 모기장 (이효석 57)

이효석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236 2 0 15 2016-09-04
수필의 출제는 득실이 상반일 것 같다. 같은 과제로도 사람에 따라서는 일어천금(一語千金)의 값있는 좋은 이야기를 가진 이도 있을 것이요, 반대로 휴지통에 넣기에 마땅한 변변치 못한 재료밖에는 가지지 못한 이도 있을 것이니까. 「모기장」⎯ 호개(好箇)의 제목임에도 공교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지지 못하였음을 불행으로 여긴다.

한국근대문학선: 6월에야 봄이 오는 북경성의 춘정 (이효석 58)

이효석 | 도디드 | 500원 구매
0 0 350 2 0 16 2016-09-04
북위 42도와 한류의 냉대에서는 봄은 3월부터가 아니라 6월부터 시작된다. 저능한 늦둥이가 훨씬 자라서야 겨우 입을 열고 말을 번지듯이 철 늦은 시절은 6월에 들어서야 비로소 입을 방긋이 열고 부드러운 정서를 표백한다. 3월에는 오히려 눈이 오고, 4월에는 물오른 능금나무 가지가 물오리 발같이 빨갛고, 5월에는 잎새 없는 진달래꽃이 산을 불긋불긋 점찍고, 6월에 들어서서야 처음으로 들은 초록으로 덮이어 민들레 오랑캐꽃 꽃다지도 활짝 피고 능금나무와 앵도나무에 잎이 돋고 장다리꽃이 벌판에 노랗다.

한국근대문학선: 삽화 (채만식 01)

채만식 | 도디드 | 900원 구매
0 0 242 2 0 19 2016-09-14
노상 어리석은 소견일는지 몰라도, 나는 집이라는 걸 두고 생각을 그렇게 하기는 그때나 시방이나 일반이다. 그만큼 집은 매양 나를 성가시게 하고, 마음 번거롭게 하고 하기를 마지않는다. 방구들이 조금 꺼진 자리를, 섣불리 뜯었다. 큰 덤터기를 만났다. 어떻게 된 셈인지, 손바닥만하던 구멍이, 손을 댈수록 자꾸만 커져가는 것이다. 손바닥 하나만 하던 것이 둘만 해지더니, 그 다음 셋만 해지고, 셋만 하더니 다시 넷만 해지고…… 한정이 없으려고 한다. 잘못하다 구들을 온통 다 뜯게 될까보다. 직경 한 자 둘레나 뻥하니 시꺼먼 구멍을 뚫어놓고는 그야말로 속수무책, 검댕 묻은 손을 마주잡고 앉아서, 어찌하잔 말이 나지 않는다. 웬만큼 아무렇게나 막는 시늉을 하자니 번연히 그 언..

한국근대문학선: 과도기 (채만식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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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71 2 0 16 2016-09-14
이처럼 생각을 하면 할수록 짜증이 나고 그를 따라 자기의 안해가 얄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밤은 이미 훨씬 깊었고 창 밖에서는 거친 바람소리가 자주 들려왔다. 때는 아직 삼월 초생이라 문틈으로 스며들어오는 바람끝이 몹시 싸늘하였다. 방 안은 등불을 꺼버렸으므로 굴속같이 컴컴하여 서로서로의 얼굴도 보이지 아니하였다. 봉우는 찬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느라고 덮었던 이불을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똘똘 말아 덮었다. 한즉, 한참만에 방바닥에서는 따스한 기운이 다시 찬 이불 속으로, 스며올라와 그는 포근한 쾌감을 느꼈다. 이 포근포근한 쾌감에 싸인 그의 육체는 다시 자기의 아내인 이성의 불안스러운 숨소리, 그윽한 살냄새, 더우기 머리털에서 우러나는 기름 냄새의 자극을..

한국근대문학선: 불효자식 (채만식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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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419 2 0 25 2016-09-14
대지 위에 벌여놓인 (大地) 모든 물건들을 꿰뚫을 듯이 더운 불볕이 내려쪼이는 삼복 여름 어느 오후였었다. 나는 학교에서 하학을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오다가 마침 주인집으로 들어가는 길 어귀에서 칠복(七福)의 어머니 최씨부인을 문득 만났다. 나는 그이를 보자 곧 ‘칠복의 소식을 듣고 올라온 것이다’고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칠복의 얼굴과 그 다리를 걷어치고 앉아 아편주사를 하던 모양이며, 까치 뱃바닥 같은 흰 손이 다시 서대문 감옥의 우중충한 붉은 담과 그 안에서 누렁 옷 입고 쇠사슬 차고 노역(勞役)을 하고 있을 그의 죽어가는 듯할 형상이며-그에 대한 여러 가지 일을 주마등과 같이 연상하였다.

한국근대문학선: 생명의 유희 (채만식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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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60 2 0 22 2016-09-14
늦은 봄 첫여름의 지리한 해가 오정이 훨씬 겹도록 K는 자리에 누운 채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그가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대신 아침에 늦잠을 자는 버릇이 있어서 항용 아홉시나 열시 전에는 일어나지를 아니하지만, 그렇다고 오정이 넘도록 잠을 잔 적은 없었다. (하기야 그는 잠을 잔다는 것보다도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만 았았을 따름이다. 보통때라도 누구나 오정이 지나도록 드러누웠으면 시장기가 들 터인데, 하물며 그 안날 아침부터 꼬박 내리 굶은 그가 일찌기 일어나서 밥을 먹을 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만일 집안에 돈이 되었든지 쌀이 되었든지 생겨서 밥을 지었으면 알뜰한 그의 어머니가 부랴부랴 나와서 일어나라고 재촉을 하였을 터인데, 도무지 그러한 소식도 없고, 안에서도 ..

한국근대문학선: 산적 (채만식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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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90 2 0 50 2016-09-14
종로 행랑 뒷골 어느 선술집이다. 바깥이 컴컴 어둡고 찬 바람끝이 귀때기를 꼬집어떼는 듯이 추운 대신 술청 안은 불이 환하게 밝고 아늑한 게 뜨스하다. 드나드는 문 앞에서 보면 바로 왼편에 남대문만한 솥을 둘이나 건 아궁이가 있고 그 다음으로 술아범이 재판소의 판사 영감처럼 목로 위에 높직이 앉아 연해 술을 치고 그 옆에 가 조금 사이를 두고 안주장이 벌어져 있다 그러고 그리로 . 돌아서 마방간의 말죽 구유 같은(평평하니까 말죽 구유와는 좀 다를까? 선반, 도마가 있고 그 위에 가 식칼, 간장, 초장, 고추장, 소금 무엇무엇 담긴 주발이 죽 놓여 있다. 안주 굽는 화로는 목로에서 마주보이게 놓여 있다.

한국근대문학선: 그뒤로 (채만식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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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65 2 0 36 2016-09-14
아침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출옥한 P는 같이 모여 점심을 먹던 동지들을 작별하고 M과 같이 종로 네거리로 나섰다. 벌써 세 번째나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P에게는 처음 때와 달라 별로 이 ‘출옥한 때의 특이한 감상’같은 것은 첨예하지 아니하였다. 다만 이번 이 사 년─칠 년이었으나 삼 년은 감형이 되었다 ─사 년이라는 비교적 긴 동안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변천된 경성의 면모가 현저하게 그의 눈에 띄었다.

한국근대문학선: 병조와 영복이 (채만식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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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68 2 0 15 2016-09-14
천정에 바투 매어달린 전등은 방 주인 병조와 한가지로 잠잠히 방안을 밝히고 있다. 대청마루에 걸린 낡은 괘종이 뚝떡 뚝떡 하며 달아나는 시간을 한 초씩 한 초씩 놓치지 않고 세었다. 큰방에서는 돌아올 시간이 아직도 먼 아들을 그대로 기다리고 있는 영복 어머니의 기침소리가 이따금 콜록콜록 들려나왔다. 바로 집 뒤에 약현(藥峴)마루를 내노라고 왕자(王者)답게 차지하고 있는 천주교당에서는 벌떼 소리 같은 찬송가 소리가 울려나왔다. 자정이 지나지 아니하면 그칠 줄을 모르는 경성역의 요란한 기차 소리들은 여전히 어수선하게 야단을 내떨었다. 그러나 병조는 잠잠히 앉아 철필대만 놀렸다.

한국근대문학선: 산동이 (채만식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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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70 2 0 31 2016-09-14
사 년 전. 웬만큼 깊어가는 가을 어느날이었었다. 아침부터 구죽죽하게 내리는 비는 가을날의 싸늘한 기운을 한층 더 도와 추레하고 음산한 기분이 사람사람의 마음을 무단히 심란하고 궁금하게 하였다. 백 년을 살아도 철을 모르는 말초신경 시인들은 구슬픈 리듬을, 외로운 어머니는 멀리 간 아들을, 젊은 과부는 오지 못하는 남편을, 세상살이에 어려운 사람은 살림살이를, 그리고 돈이 있고 일이 없는 늙은 호색한(好色漢)은 젊은 계집의 부드럽고 다스한 살을…… 생각나게 하고 그립게 하는 날씨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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