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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문학선: 앙탈 (채만식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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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81 2 0 25 2016-09-14
와이샤쓰 소매도 뒤집어서 단추를 끼웠다. 가뜩이나 궁한 그에게 검정 세루 양복이 칼라 와이샤쓰를 짜증이 나도록 땟국을 묻혀 주었다. 어젯밤에 요 밑에 깔고 잔 양복바지는 입고 앉아 조반을 먹느라면 구겨질 것이 맘에 걸리기는 하나 주인 노파가 밥상을 가지고 올 터인데 잠방이 바람으로 문을 열고 받아들일 수는 없으므로 섭섭은 하지만 할 수 없이 집어 입었다. 혁대를 매며 내려다보니 줄은 칼날같이 잡혔으나 좀 비집은 데를 검정실로 얽어맨 자리와 구두에 닿아 닳은 자리에 올발이 톱니같이 내어다보였다. 바짓가랑이로 내려가서는 엄지발톱에 닿아 구멍이 난 언더양말이 남에게 보인다면 몹시 창피할 만큼 숭업게 발톱이 내어다보였다.

한국근대문학선: 창백한 얼굴들 (채만식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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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88 2 0 37 2016-09-14
웅성거리는 소리에 엷이 든 늦잠이 깬 K는 머리맡 재털이에서 담배토막을 집어 피웠다. 틉틉한 입안에 비로소 입맛이 든다. 창에는 맑은 햇빛이 가득 쪼인다. 파르스름한 연기가 천정으로 기어 올라 간다. K의 머리속에는 어젯밤 살롱 아리랑의 광경이 술취한 사람의 발길같이 돌아간다. 세상이 갑자기 놀란 듯이 뚜 오정 부는 소리가 들리며 뭇 싸이렌이 뒤미처 따라 분다.

한국근대문학선: 화물자동차 (채만식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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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69 2 0 44 2016-09-14
조선에서 쌀이 많이 나기로 인천과 겨루는 K항구에 자본금 십이만 원의 주식회사로 된 S자동차부가 생기었다. 생기면서 맨처음으로 끔찍한 일을 시작하였으니 K정거장을 출발점으로 한 시내 이십 전 균일 택시의 경영이다. 영업 성적은 백이십% 만점. 그뿐 아니라 K를 중심으로 부근 각지에 통하는 자동차 선로는 기득권은 매수나 경쟁으로 없는 곳은 새로운 선로 개척으로 거의 전부가 S자동차부의 수중으로 들어왔다.

한국근대문학선: 농민의 회계보고 (채만식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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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80 2 0 36 2016-09-14
병문이가 나를 찾아 서울로 온 것이 바로 지난 오월 그믐이다. 눈과 신경과 그리고 사지가 노그라지게 지친 몸으로 회사 ― 인쇄소의 옆문을 무심코 열어 동무들의 틈에 끼여 나오느라니까 “학순이!” 하고 오랫동안 들어보지 못한 전라도 악센트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하고 휘휘 둘러보는데 저편 담 밑에 섰던 웬 헙수룩한 시골사람이 나를 보고 반기며 쫓아온다. 나는 정말 병문이를 선뜻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가 쫓아와서 내 팔을 두 손으로 덥석 붙잡고(그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한국근대문학선: 팔려간 몸 (채만식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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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57 2 0 36 2016-09-15
동산 마루에서 시뻘건 해가 두렷이 솟아오른다. 들 위로 얕게 덮인 아침 안개가 소리없이 사라지고 누른 볏목들이 일제히 읍을 한다. 약오른 풀 끝에 맺은 잔이슬들이 분주히 반짝거린다. 꼴을 먹는 소 목에서는 끊이지 않고 요령이 흔들린다. 쇠고삐를 잡고 앉아 명상에 잠겼던 견우는 걷어올린 맨 다리를 “딱.” 때리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쇠파리가 침을 준 것이다. “아니 오나?” 견우는 혼자 중얼거리면 동리 앞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한다.

한국근대문학선: 보리방아 (채만식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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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332 2 0 32 2016-09-15
남방의 농촌에는 이런 풍경도 있다. 용희 는 그늘 짙은 (容姬) 뒷마루에 바느질을 차리고 앉아 자지러지게 골몰해서 있다. 샛노란 북포로 아버지의 적삼을 커다랗게 짓고 있는 것이다. 날베가 되어서 여기 말로 하면, 빛은 꾀꼬리같이 고와도 동리가 시끄럽게 버석거린다. 급한 바느질이다. 그러나 거진 다 되어간다. 고의는 벌써 해서 옆에다 개켜놓았고 적삼도 시방 깃을 다는 참이다. 그래도 용희의 손은 바쁘게 놀고 있다. 고운 손결이다. 방아도 찧고 부엌에서 진일도 하지만 마디도 불거지지 아니한 몽실몽실한 손가락들이 끝이 쪽쪽 빠졌다.

한국근대문학선: 언약 (채만식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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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63 2 0 34 2016-09-15
덕쇠는 어머니가 두드리다시피 해서 깨우는 바람에 겨우 일어나 앉아 쥐어뜯듯이 눈을 비빈다. “조깨(조금) 더 잡시다…… 아즉 초저녁일 틴디 멀 그러넌그라우!” 그는 잠에 취한 목소리로 이렇게 두덜거린다. 마당에 편 밀짚방석에서 저녁 숟갈을 놓던 길로 쓰러져 이내 잔 가늠은 않고 워낙 잠이 고단하니까 떼를 쓰는 것이다. “야, 야 초저녁이 다 무엇이냐! 저 달 좀 보아라. 밤이 벌써 이식히였구만…… 어서 정신 채려갖구 논에 좀 나가 보아라. 늬 아부지 지대리겄다.” 어머니는 그래도 타이르듯이 재촉을 한다.

한국근대문학선: 빈 (채만식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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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34 2 0 27 2016-09-15
유모는 몸뚱이며 얼굴이 물크러질 듯 벌겋게 익어가지고 욕실(浴室) 밖으로 나왔다. 오정때가 갓 겨운 참이라 욕실 안에서는 두엇이나가 철썩거리면서 목간을 하고 있고, 옆 남탕에서는 관음 세는 소리가 외지게 넘어와서 저으기 한가롭다. 제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주인 아낙네가 유모가 열고 나오는 문소리에 정신이 들어 싱겁게 웃어보인다. 유모는 수건을 둘러 중동만 가리고 체경 앞에 넌지시 물러서서 거울 속으로 뚜렷이 떠오른 제 몸뚱이를 홈파듯이 바라다보고 있다.

한국근대문학선: 명일 (채만식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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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99 2 0 23 2016-09-15
오늘도 해도 아니 뜨고 비도 아니 온다. 날은 바람 한점 없이 숨이 탁탁 막히게 무덥다. 멀리 건너다보이는 마포(麻浦) 앞 한강도 물이 파랗게 잠겨 있는 채 흐르지 아니한다. 강 언저리로 동리 뒤 벌판으로 우거진 숲의 나무들도 풀이 죽어 조용하다. 지구가 끄윽 멈춰 선 것 같다. 내려다보이는 행길로 마포행 전차가 따분하게 움직거리고 기어가는 것이 그래서 스크린 속같이 아득하다. 영주는 방 윗문 바로 마루에 앉아 철 아닌 검정 빨래를 만지고 있다. 빨래에 물을 들이느라고 손에도 시꺼멓게 물이 들었다. 어깨 나간 인조항라적삼이 땀이 배어 등에 가 착 달라붙었다.

한국근대문학선: 부전딱지 (채만식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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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292 2 0 36 2016-09-15
다 죽어가는 기꾸에를 이곳 S의 병원으로 떠싣고 온 것이 우연한 일 같기도 하나 실상 그렇지도 않다. 밤 한시가 지나 홀을 닫을 시간이 가까워서다. 기꾸에가 독약을 먹고 죽어 간다는 기별을 듣고 달려온 그의 동무며 홀의 지배인은, 병원을 생각할 때에 그들은 다같이 S가 머리에 떠올랐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거기서 제일 가깝고, 그리고 S는 아직도 기꾸에를 못 잊어(하고 있는 듯)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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