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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사봉 (한국문학근대선: 이무영 06)

자동차가 한강 철교에 들어섰을 때가 정각 여덟시 오분 전이었으니까 틀림없는 정각인데 내려보니 학생들은 간데가 없다. 혹시 시계가 쉬지나 않았나 싶어 귀에다 대어보기도 했으나 째깍째깍 영락없이 잘 간다. 그래도 의심할 것은 시계밖에 없는 것이 아무리 지금 대학생들이라 하지마는 명색이 선생이라고 하는 사람을 하이킹 가자고 끌어내어놓고 단 한 녀석도 코빼기를 보이지 않는달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태수는 버스를 기다리는 자기 나이가 되었음직한 중년 사나이를 골라서 자기 시계와 맞추어도 보았으나 여덟시는 정녕코 여덟시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자기 눈을 또 의심해보는 도리밖에 없다. 마흔여섯이라는 나이도 있었거니와 과거에는 중학교 교사를 십 년, 해방 후에는 대학의 생물학 교수로 반생을 훈육 사업에 바쳐오는 동..
자동차가 한강 철교에 들어섰을 때가 정각 여덟시 오분 전이었으니까 틀림없는 정각인데 내려보니 학생들은 간데가 없다. 혹시 시계가 쉬지나 않았나 싶어 귀에다 대어보기도 했으나 째깍째깍 영락없이 잘 간다. 그래도 의심할 것은 시계밖에 없는 것이 아무리 지금 대학생들이라 하지마는 명색이 선생이라고 하는 사람을 하이킹 가자고 끌어내어놓고 단 한 녀석도 코빼기를 보이지 않는달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태수는 버스를 기다리는 자기 나이가 되었음직한 중년 사나이를 골라서 자기 시계와 맞추어도 보았으나 여덟시는 정녕코 여덟시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자기 눈을 또 의심해보는 도리밖에 없다. 마흔여섯이라는 나이도 있었거니와 과거에는 중학교 교사를 십 년, 해방 후에는 대학의 생물학 교수로 반생을 훈육 사업에 바쳐오는 동안에 자기도 모르게 아주 몸에 배어버린 교양이란 놈이 언제나 잘못은 남에
게보다 자기한테 돌려버리는 버릇이 생기어져 있는 것이다.
충청북도 음성 출신. 본명은 용구(龍九). 1920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도중에 중퇴하고,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세이조오중학교[成城中學校]에 다녔다. 이 때 일본 작가 가토[加藤武雄]의 집에서 기숙하면서 4년간 작가 수업을 받았다.

19세 때인 1926년에 장편 「의지(依支) 없는 영혼(靈魂)」을, 그 다음해에 장편 「폐허」를 간행함으로써 소설가로서 조숙한 출발을 하였다. 1929년 귀국하여 소학교 교원, 잡지사와 신문사 기자 등을 전전하면서 많은 소설과 희곡을 발표하였고, 구인회(九人會) 동인, 『조선문학』 주간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반역자」(1931)·「지축을 돌리는 사람들」(1932)·「루바슈카」(1933)·「농부」(1934) 등이 초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작품에는 무정부주의적인 저항의식이 깔려 있는데, 이것은 이무영이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다소간 그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이무영은 오래 전부터 흙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무영이 이것을 실천에 옮긴 것은 1939년으로, 신문사 기자를 그만두고 경기도 군포 근처인 궁촌이라는 곳으로 솔가한 때부터이다. 이때부터 농경과 문필을 병행하면서 본격적으로 농민소설 창작에 전념하기 시작하였다.

「제1과 제1장」(1939)·「흙의 노예」(1940)는 이때 얻은 수작으로 이무영의 대표작인 동시에 우리나라 농민소설의 명작에 해당한다. 이무영은 여기서 농경의 신성함과 농민의 성실한 삶을 예찬하고 있으며, 아울러 당시 농촌의 가난의 참상을 묘사하고 있고, 농촌피폐의 원인을 캐보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조는 온건한 편인데, 이는 당시 당국의 검열을 의식하였기 때문인 듯하다.

이무영의 이러한 생활은 6·25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광복 후에는 「농민」(1950)·「농군」(1953)·「노농」(1954) 등 장편농민소설을 발표하였다. 이들 장편에서는 농민들의 역사적 수난과 항거를 서사적으로 그렸으나 그 뒤 이무영은 다시 시정문학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숙향의 경우」(1955), 「계절의 풍속도」(1958) 등에서 주로 애정 문제를 다루었는데, 여기서 이무영은 보수적인 모럴을 고수하려는 입장을 보였다.

해군 정훈감,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단국대학교 교수,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최고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농민문학의 선구자이자 제일인자로 천재적이기보다는 노력형의 작가였으며, 항상 진실을 중시하고 건실한 문학을 위하여 일관된 노력을 기울였던 성실하고 중후한 작가였다. 특히, 농민소설에 바친 정열과 그 성과는 당연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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